20230722
요즘 미디어들을 둘러보면 어디에나 빠지지 않는 컨텐츠가 먹고 마시는 일이다. 이른바 '먹방'의 시대다.
공중파나 케이블 TV를 보아도, OTT의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유튜브에서 인기 있는 채널도 모두 먹고 마시는 행위를 적극적으로 보여준다. 본격적인 먹방 채널, 먹방 컨텐츠가 아니라 하더라고 떼깔나는 음식을 훓어주거나 맛깔나게 먹고 만족해 하는 얼굴을 클로즈 업하는 장면은 어느 프로그램에서나 감초처럼 빠지지 않고 삽입된다. (심지어 세계사 교양 프로그램에서도 해당 국가의 음식을 보여주는 장면이 필수코스처럼 포함된다)
먹는 걸 보여주고 보는 일이 그 자체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먹방은 우리가 평소 접하는 많은 오락물들 중 하나일 뿐이며, 그것은 스트레스 해소나 대리만족이라는, 혹은 불멍같이 멍 때리고 쉬는 시간이 되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면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나도 유튜브 먹방 채널을 몇 개 구독 중이고, 매일 밤 먹방 몇 편을 둘러보는 일을 낙으로 삼고 있기도 하다.(정말로 얼마나 맛있게들 먹는지... 부러워하며..)
하지만 먹방을 보고 음식을 탐닉하며 군침을 흘리는 일이 너무 자주 반복되면 그것은 어떤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그러니까 그것도 일종의 '중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먹방은 일종의 감각적 쾌락을 자극하고 증폭시키는데 영향을 미치는 자극성 컨텐츠다. 그러니까 어떤 정신적, 이성적 해석과 판단은 전혀 필요 없는, 즉각적으로 몸의 감각들의 반응을 불러일으키면서 물리적 쾌락을 간접적으로 느끼도록 촉진한다. 이를테면 입 안에 침이 고이고 혀의 감각에 신경이 집중된다거나, 소리를 통해서 음식을 먹을 때의 쾌락을 상상하도록 한다거나, 음식의 씹는 식감과 목 넘김의 쾌감을 간접 경험하도록 하는... 모두 감각적 쾌락에 관련된 신경을 활성화시켜 그 쾌락에 집중하도록 하는 메커니즘이다. 그러다 보니 먹방을 해외에서는 'food pornography'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먹는 행위를 보는 것과 성 행위를 보는 것은 감각적 쾌락을 자극하여 상상으로 만족시키는데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그 메커니즘이 비슷하여 비롯된 명칭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런 영상들이 단지 자극성이 높다는 측면때문만이 아니라, 두 유형의 컨텐츠 모두 직접 경험이 아닌 유사 경험이라는 점과 그 때문에 쾌락을 상상하게 한다는 점에서 중독의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유사 경험의 문제는 그야말로 유사, 비슷하지만 진짜는 아니라는 데 있다. 특히나 몸의 감각으로 경험해야 하는 쾌락의 자극을 몸이 경험하지 못하고 상상을 통해 느끼려고 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쾌락이 만족되기가 불가능하고, 그렇기 때문에 보면 볼 수록 자극에 대한 욕망은 더 커지는데 반해 그럴수록 실질적인 만족에는 실패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자극과 만족의 격차는 커져 그로 인한 허기의 느낌은 더욱 강화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중독을 유발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먹방이 그런 실패한 허기를 만족시켜주기 위해 음식의 자극성을 더욱 극대하게 되고, 그러므로 건강한 음식보다는 자극적인 음식(맵고, 짜고, 달고, 바삭하거나 부드러운)을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실제로 내 입이, 혀가, 식도가 직접 체험한 맛의 감각이 아니므로 그 감각을 상상을 통해 채워야 하지만 역시 실제로는 채워지지 않으므로 감각의 허기는 더 간절하고 초조해지기만 한다.(자극적인 음식일 수록 '시청률'과 '좋아요'는 올라가지만, 그건 만족의 표현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허기의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그리고 이러한 과장된 감각의 허기로 인해 다시 컨텐츠를 찾게 되는 되돌이표의 사이클이 반복되면서 '중독'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너무 심각하게 이야기한 것 같지만 사실 심각하게 보자면 실제로 꽤 심각한 현상으로 볼 필요도 있다. 그리고 인간이란 어떤 분야에서든 중독에 빠져들기 쉬운 취약한 욕망의 구조를 갖고 있는 데다, 먹방과 같은 컨텐츠는 단지 음식먹는 기쁨을 대리만족할 뿐이라는, 그래서 위험성이나 중독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오히려 이성의 통제와 문제의 자각을 막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하지만 먹방을 본격적으로 시청해 본 사람들이라면 한번 쯤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봐도봐도 만족스럽지는 않은데 봐도봐도 계속 보고 싶은 그런 기분. 아니, 보고 싶다기 보다는 계속 '보게 되는' 그런 멈출 수 없는 가속력이랄까. 멈추지 못하고 계속 보다가 어느 순간 멈추려 해도 '이거 하나만 더 보고'라는 마음이 들었던 그런 기억 말이다. 특히나 기분이 우울했던 날이나 심심함과 지루함으로 허전한 느낌이 들 때면 더욱 멈추기가 어렵다. 그건 정서적으로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감각으로 채우려는 본능이 발동하기 때문에 그런데, 그렇지만 먹방은 진짜가 아닌 유사 경험이기 때문에 그 허기는 채워지지 않고 오히려 허기의 존재감만 더 키워줄 뿐이다.
나 또한 그런 중독의 징후를 느낀 적이 있었고 어느 날 정신을 번쩍 차리고는 스스로를 통제하기 시작했던 기억이 있다. '이러다가는 계속 이것만 보고 앉아있겠네' 하는 위협감과 더불어, 보고 난 후에 더 과하게 밀려드는 허기와 공허감 때문이었다. 그래서 구독하는 채널 몇 개를 취소하고 시간을 제한해 놓고 보는 것으로 스스로를 엄격히 통제하기 시작했다. 중독의 문 앞에서 돌아선 스스로가 대견했지만 아찔하기도 했다. 그리곤 이런 생각이 머리를 맴돈다. '아, 역시 인간이란 참 나약하구나. 정신줄을 놓으면 어디에라도 이렇게 훅- 빠져들어 나를 잃어버리게 되는구나!'
이런 허기의 중독은 비단 먹방에만 해당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담배나 술도 결국은 채워지지 않는 그런 허기를 채워보려는 안간힘의 몸짓이 아닐까. 극단적으로는 마약이 있을테고. (최근 마약 투여가 증가하는 건, 허기를 채워 만족에 이르기 힘들어진 지금 사회의 압박을 반영하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그런 중독 물질이 아니더라도 우린 '취미'라고 부르지만 중독에 가까운 행위들에 집착하곤 하는데, 무언가를 끊임없이 수집하거나, 아이돌이나 연예인에게 자신의 감정을 과하게 투영한다거나, 혹은 먹방처럼 자극적인 영상을 찾아 밤을 세워 본다던가 하는.. 하지만 또한 이 모든 것을 '중독'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건강한 취미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고 삶을 사는 즐거움 중 하나로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과연 중독과 취미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결국 자기 통제감에 있을 것이다. 내가 언제고 그 행위를 중단할 수 있을 정도로 깨어있는, 그러니까 내가 나를 통제할 수 있는 주체적인 상태, 쾌감에 수동적으로 빨려드는 것이 아닌 내가 언제 어디서 어느 정도 누릴 것인지를 적극적으로 선택해서 결정할 수 있는 그런 상태. 그렇지 못하고 나의 행위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중독의 시작일 것이다. 어떤 무언가에 빠져 있는 모습에서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드러나지 않는 나의 내재적 관점에서 본다면 완전히 다른 두 상태는 질적으로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지점이 취미와 중독을 가르는 경계가 아닐까.
나는 오늘도 먹방을 본다. 내가 좋아하는 3~4개 채널의 영상을 딱 30분만 본다.(절대로 폰으로 시청하지 않는다. 반드시 책상에 앉아 노트북으로 시청한다. 그런 환경은 자기 통제감을 잃지 않을 가능성을 높여준다) 하지만 실패하는 날도 있다. 어느 날은 '딱 하나만 더'라고 스스로를 유혹하며 계속 클릭을 하다가 새벽을 맞이할 때도 있다. 자기 통제감을 놓친, 나를 잃은 상태다. 그런 경우에는 졸려서 어찌어찌 멈춘다 해도 기분이 아주 안 좋은 상태에서 잠이 들고 다음 날은 아주 피곤한 상태로 늦잠에 빠진다. 그렇게 조심을 하고 스스로를 부여잡으려고 노력해도 가끔은 나를 잡는 그 줄을 놓치고 만다. 나를 유혹하는 자극이 너무도 많은 지금의 사회를 탓해보지만, 그건 결국 변명일 뿐이다. 나를 놓게 하는 건 유튜브나 폰이 아니라 결국 나 스스로인 것이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허기에 잡아먹혀 나를 잃고 어떤 만족도 이르지 못하는 헛헛한 쳇바퀴의 중독 속에 갇히고 만다. 그러니, 잘 기억해야 한다. 그런 인간의 취약성을.
아, 인간이란 얼마나 취약하고 세상은 얼마나 자극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