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26
장마가 1달 내내 이어지고 있다.
기상청에서는 이토록이나 길게 이어지는 장마를 '장마'라고 부를 수 있는지 재검토가 요청된다며 다른 단어를 모색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그 단어의 후보군엔 '우기'가 있다. 우기. 동남아에 가면 느낄 수 있는 그 후덥지근하고 습한 공기,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스콜, 몇 달씩 이어지는 비 소식. 맞다 그런 느낌인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래도 동남아에선 햇볕이 날 때는 쨍하고 뜨거웠는데 올해의 장마, 아니 우기는 그런 쨍한 순간도 없다는 것이다. 그저 내내 비가 오거나 비가 오지 않는 순간에도 날은 흐리고 우중충하다. 정말이지, 마음마저 축축 처지고 우울감이 공기 중에 부유하는 느낌이다.
올해만 특이하게 찾아오는 이례적인 날씨라면 그저 몇 마디 짜증으로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모두들 걱정하듯 이례적인 기후 변화는 더 이상 이례적이지 않다. 그러니까 기상청에서 단어 사용 교체를 검토하겠지. 육지는 물난리로 인명과 재산 피해가 심각한데, 그 보다 무서운 건 앞으로 언제 찾아올지 모를 예측할 수 없는 변화다.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봄가을은 봄가을대로 요즘엔 예측 가능하지 않다. 예년보다 조금 온도가 높고 비나 눈이 더 내리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그중 제일 무서운 존재는 태풍. 섬에 살다 보니 역시 태풍이 가장 무섭다. 그런데 그런 태풍마저도 너무 잦고 파괴적이다. 몇 년 전 태풍 힌남노 때 바람에 꺾여나가는 나무와 전봇대를 본 이후로는 뉴스에서 태풍 소식만 들려와도 오금이 저린다.
인간에 의한 환경의 파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지만, 요즘은 눈에 보일 만큼의 이상이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그저 막연하게 걱정하며 내심 안심하기에는 당장의 문제가 되었다. 멸종해 가는 동식물과 인류의 미래가 걱정되지만, 그런 거시적인 명분이 아니어도 눈앞의 생활과 생계에 위협이 될 지경이라 초조하기까지 하다. 환경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이런저런 책을 읽고 영상을 보며 공부도 해보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맞닦드리는 건 생각보다 더 심각하고 복잡하다는 냉엄한 현실뿐. 이런 현실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니 내가 뭘 한다고 바뀔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은 필요하지만 무력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환경을 되살리기 위해 절박하고 처절한 운동을 펼치고 있을 실천가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정말 무력하다는 그 느낌을 지우기가 어렵다.
하지만 실제로 닥칠지도 모를 그 모든 재난과 붕괴보다 더 무서운 건, 예측불가능성이다. 기후 변화도 각종 재난도 예상되는 범위 안에 있다면 어떤 대책이라도 세워보기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어떤 문제가 터질지 모른다는 그 '예측할 수 없음', 그 랜덤과 우연이라는 거대한 안개 앞에서 인간은 정말이지 무력하고 초라하다. 아니, 차라리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너무나 무시무시한 재앙 앞에 처해 있다면, 아는 게 힘이 될 수조차 없다면, 그냥 모르는 게 약인 걸까.
좀비가 세상을 지배한 전지구적 재난 이후의 아포칼립스를 그리고 있는 드라마 [워킹 데드(Walking Dead)]에서, 어떤 희망도 찾을 수 없는, 온통 죽음으로 가득 찬 세계 앞의 한 인물에게 이미 죽은 동료들의 혼령이 나타나 건네준 대사가 생각난다.
이게 더 나아.
This is be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