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폰을 들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문제다. 폰에 전화 이상의 기능을 붙여 놓았다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손가락만으로 작동할 수 있는 편의성은 그것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어느 날, 이놈의 망할 애물단지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다 사용시간을 체크해 주는 앱을 깔아보았다. 이 친절한 앱은 매일 밤 그날 하루의 핸드폰 사용시간을 알려준다. 첫날 친절한 앱씨의 보고서를 받아보고는 "으악!"을 외쳤다. "내가 이렇게나 오랜 시간 동안 이걸 들여다보고 있었다고? 설마?" 하지만 기계의 유일한 장점이지 않은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렇게 핸드폰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매일 밤 보고서를 확인하면서 사용시간을 줄여나가 보았지만 그 효과도 잠시. 이제는 놀란 그 시간이 오히려 익숙해진다. 심지어 평균보다 낮은 날에는 스스로를 칭찬하기까지 한다. 그래봐도 너무 길다. 기계에다 쓰는 시간이 이렇게나 길다니. 어디 길이뿐이겠는가, 얼마나 크고 많은 마음을 쏟았겠는가. 이 망할 놈의 기계에다가. 누군가에게 무엇에게 이렇게 크고 많은 마음을 쏟아본 적이 있는가. 이런 생각을 해보니 갑자기 무서워진다. 내 인생이 손가락 사이로 모래처럼 빠져나가고 있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방법을 바꿔보았다. 그냥 참아보는 것. 핸드폰을 들려고 하면 '앗!' 하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내려놓는다.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데이브레이크의 가사처럼 설레지도 않은 이런 상황은 나를 참 비참하게 만들었다. 기껏해야 기계에게 이렇게나 휘둘리고 있다니. 어떤 때에는 나도 모르게 이것을 들여다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런 나를 자각하며 화들짝 놀라는 일은 내가 이것에 얼마나 습관처럼 매어있었는지를, 얼마나 이것의 노예로 살아왔는지를 알게 해 줬다. 그렇게 나를 자각하고부터는 멍 때리기가 시작되었다.
핸드폰 드는 일을 어느 정도 참게 되면서 또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은 핸드폰을 하지 않으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뭔가 다른 걸 하면 되지 않은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한 번 해보면 알게 된다. 핸드폰을 참는다고 다른 생산적인 걸 할 수 있게 되지는 않는다는 것. 그러니까 핸드폰을 참을 때는 핸드폰을 하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해 참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은 굉장히 힘을 쓰고 있는 일이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힘을 쓰고 있는 상황.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상황. 우스꽝스럽지 않은가.
이런 내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를 알게 되면서 나는 또 마냥 참을 수만은 없었다.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라는 결심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아니 어찌 보면 강제로 찾아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온 힘을 쏟아야 한다니. 차라리 그럴 바엔 그 힘을 다른 무언가를 위해 쏟는 게 낫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생산적인 무엇, 성취감이 있는 무엇, 나를 성장시키는 무엇. 그리고 핸드폰을 하는 대신에 언제 어디서나 즉각적으로,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고, 끊김과 이어짐에 큰 문제가 없는 일, 그런 일이어야 했다. 첫 번째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일은 역시 독서다. 책 또한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으니 대체재로는 훌륭하다. 하지만 이건 내게는 답이 되지 못한다. 서점을 하는 나로서는 독서가 일이고 독서를 하는 중간중간에 쉼을 위해 핸드폰을 하는 것이니 말이다. 책은 핸드폰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많이 읽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일이 있을까.
그래서 시작된 것이 지금의 이것이다. 글쓰기. 그러니까 이 글쓰기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주제와 방향을 정하여 쓰는 글이 아니다. 하루를 정리하는 일기도 아니다. 산문이나 에세이라고 하기엔 그렇게 몰입되고 정제된 글쓰기도 아니다.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냥 글쓰기를 위한 글쓰기인 것이다. 굳이 목적이 있다면 핸드폰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 그러니까 핸드폰 사용방지용 글쓰기. 핸드폰 사용시간을 때우기 위해 쓰는, 일명 '간이 글쓰기'랄까. 좋다. 뭐, 이름이, 장르가 무엇이면 어떠하리.
그렇게 간이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오늘부터 1일차.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핸드폰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이 글을 공개한다. 대개 결심이란 혼자 몰래 하면 무너지기 마련 아닌가. 결심을 공개하면 조금이라도 더 해보려는 마음이 생기겠지, 하는 심정으로.
자, 그래서 오늘부터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