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쏟아지는 세상이다.
난 할 말이 많고 누군가는 내 말을 들어줬으면 하지만, 그런 마음은 상대방도 마찬가지이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니 적당히 말의 총량을 서로 나누어 가지는 일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말의 총량을 모두 독점하려 드는 경우가 반드시 발생하고, 그럴 땐 갈등과 분쟁이 시작된다. 그럼 난 내 몫을 빼앗긴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게 되고 말의 점유를 늘리려는 마음은 부풀려진다. 그러다 보면 상대가 미쳐 말을 끝맺지도 않았는데 중간에 잘라 들어가는 다소 공격적인 대화법을 구사하게 되는 것이다. 내 점유가 작다고 생각되는 마음이 크면 클수록 공격의 빈도는 높아지고 강도는 세진다.
하지만 그런 다급한 마음이 될 때는 어김없이 '실수'가 동반된다. 그러니까 말에는 해도 될 말이 있고 아닌 말이 있으며 그 표현 또한 적당히 선택하고 가려 할 필요가 있는데, 말을 쏟아 놓는데 전력을 하다 보면 그런 걸 섬세하게 따질 여력은 부족해지는 것이다. 혹은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그런 말들도 있다. 이를 테면 누군가에 대한 험담이라던가 내 현실에 대한 과한 신세한탄이라던가, 혹은 내가 아는 것을 다 늘어놓겠다는 그런 TMI까지... 이런 말들은 수도 없이 많다. 더 안 좋은 상황은 말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듣는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하고 그에게 불쾌감을 유발하거나 상처가 되는 말을 하게 되는 경우다. 대개 이런 경우는 말을 하고 나서 '아차' 하게 되지만, 말이란 '엎질러진 물'과 같아서 주워 담는 건 불가능하고 성급히 닦아내 봐도 젖은 얼룩은 잘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니 말을 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어떻게 조심해야 하냐 하면, 말의 양에 집중하기보다는 질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하는 말을 '왜' 시작했으며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같이 하면서 말을 한다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 또한 쉽지만은 않다. 그러니까 우리가 평상시에 하는 말들은 '토론'이나 '상담'같은 게 아니고 대개는 '수다'에 가까운 그저 공감을 주고받기 위한 말들이기 마련이니까. 그러니 우리는 수다를 '떤다'라고 하지 수다를 '말한다'라고 하지는 않는 것이다. 수다를 떨면서까지 그렇게 머릿속으로 내 입장, 상대 입장, 제삼자의 입장을 전부 고려하기란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인생이란 본래 피곤한 것이다. 인간관계는 더더욱 그렇다. 실수란, 그 피곤함의 긴장을 견디지 못하고 내 편한 대로의 태도가 되었을 때 저질러진다. 내가 편하면 편할수록 상대에게는 불편함이 되고 전체 상황은 엉망진창이 되는 것이다. 세상 이치란 게 그렇다. 그러니 인생과 인간관계가 그렇게 피곤할 밖에. 말을 뱉는 건 편하지만 그에 따른 결과를 감당하는 일은 어렵고 복잡하다. 결국은 조금은 피곤해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게 더 피곤해질 나를 보호하는 길이다. 가벼운 일상에서도 말이다. 편한 사람일수록 더더욱 말이다.
그래도 역시 피곤한 건 피곤한 것이다. 말은 하고 싶지만 긴장을 유지하는 일은 피곤하다. 실수를 감당하는 일은 더 피곤하다. 이런 딜레마의 상황을 생각하는 것 자체도 피곤한 일이다. 이럴 때 이 모든 피곤함을 비껴갈 아주 좋은 방법이 있다. 간단하지만 다소 인내가 요구되는 방법인데, 그것은 말의 총량에서 나의 점유를 과감히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말이 아닌 침묵을 택하는 것. 그저 침묵하는 게 힘겨운 경우에는 상대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된다.
듣는 것도 기술이라 들으면 들을수록 듣는 기술은 는다. 그래서 더 자세하게, 더 섬세하게, 더 깊게 들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하다 보면 놀라운 일이 발생하는데, 바로 나를 잘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상대의 말을 많이 들어주는데 상대를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게 아니고 말인가? 물론, 그럴 수도 있겠다. 상대의 입장과 마음을 더 잘 알고 이해하게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말이란 게 요상해서 말에는 사람의 마음과 의지가 고스란히 담기지 않기 마련이다. 잘 담아도 전달하면서 소실되거나 왜곡되기도 한다. 그래서 말을 많이 하면 할수록 소통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오해가 늘어가기도 한다. 말을 한참 많이 나눴던 사람에게 뭔가 도움을 주려 했을 때, 이런 말이 되돌아오는 경우를 많이 겪어봤을 것이다.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말을 많이 나눈다고, 듣는다고 상대를 더 잘 알게 된다는 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오해 중 하나다.
그렇다면 대화를 나누는 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인가? 아니다. 나를 더 잘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 상대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 보면 그 말에 내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내가 어떤 말에 주로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 습관과 경향을 알게 되는데, 그런 습관과 경향이 내가 알던 나와는 다를 경우가 많이 발견된다. 그리고 그런 관찰에는 오해가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다. 말을 매개로 한 관찰이 아니니 말이다. 내가 나를 '직접' 보는 일인 것이다. 그러니 나를 더욱더 잘 알기 위해서라도 말을 들어보는 건 큰 도움이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더 큰 수확을 누릴 수도 있다. 바로 실수를 줄이고 인간관계를 원만히 가져갈 수 있다는 것. 와우, 얼마나 요긴한가! 침묵이라는 것은.
하지만 오늘도 우리는 말의 침묵보다는 총량에 휘둘린다. 그러면서 실수와 오해는 반복되겠지. 하지만 운이 좋으면, 마음이 통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말의 양보다는 질에 집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무래도 침묵보다는 소통이 나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대화를 할 때는 말의 질에 주의를 기울여보자. 상대는 왜, 어떤 마음으로 저런 말을 쏟아내는지, 그리고 나는 지금 하는 말을 왜, 어떤 마음으로 하고 있는지. 그렇게 말의 질에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어쩌다 한 번은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보석 같은 순간을 만나게 되는 행운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말과 말이 양으로 교환되는 공허한 상태가 아니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