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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우산 Dec 19. 2023

조각난 드라마

박인제, 「무빙」

여러 가지 장르가 잘 섞여 한 그릇의 맛깔난 짬뽕으로 거듭나길 기대하며 시작한 드라마의 최후는 참담했다.


청춘성장 드라마로 시작해 휴먼가족 드라마, 애틋하고 낭만적인 로맨스,  가끔씩 코믹, 액션 스릴러, 판타지 히어로에 이어 권력의 비정함을 고발하는 정치 드라마까지... 온갖 장르의 클리셰를 충실히 따랐지만 어 장르도 완성해내지는 못했다. 결국 이 장르도 저 장르도 살리지 못하고, 이 맛은 저 맛을 가리고 저 맛은 이 맛을 덮어, 이 맛과 저 맛이 끊임없이 서로를 방해함으로써 이 맛도 저 맛도 오롯이 드러내지 못하고 제3의 다른 맛을 내지도 못하는 비운의 잡탕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은 역시 장르 혼합의 창작물에 있어 영원한 진리. 호화 캐스팅과 신기한 능력들, 볼거리의 액션과 미스터리한 이야기 전개에도 불구하고 끝내는 하나의 작품으로 승화되지 못하고 인물과 관계, 액션과 로맨스가 모두 각각이 플롯 조각들로 분열되어 서사라는 큰 흐름에 안착되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며 표류한다. 플롯 조각들 마저도 정신없이 과거와 현재, 인물과 인물 사이를 종횡무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비다가 결국엔 퍼즐이 맞춰지는 짜릿함 보다는 흐름을 끊는 산만함과 극적 전개의 고조를 방해하는 불연속으로 몰입을 방해한다. 중후반 이후에 이르러서는 마구 던져 놓은 떡밥들과 갈 곳 잃은 플롯들이 갑작스럽게 액션이라는 그물에 무작위로 회수되면서 그간 가까스로 유지하던 긴장과 스릴마저도 무너뜨리니 인물에 몰입하기도 힘들고 스펙터클의 쫄깃함을 맛보기도 어려운, 속도는 빠르지만 그 작위성으로 지루하게 느껴지는 괴이한 시청 경험을 창출해 낸다.


화려한 캐스팅만이 빛난다


연출은 무엇으로 이 보배들을 꿰어내려 했을까. 도대체 짐작이 되지 않는, 를 꾈만한 실타래의 존재는 애초에 설계되지 않았던 걸까. 혹은 의도했지만 구현이 되지 않은 것인지도. 다만 결과만을 보자면 그저 퀼트럼 장르 이어 붙이기를 시도한 것으로만 보여진다. 어쨌든 그추측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너덜너덜한 만신창이가 된 드라마. 아마도 재미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낳은 참사가 아닐까. 재미있을 만한 요소를 전부 넣으면 재미있을 거라는 욕심에 찬 기대가 불러온 과잉이 아닐까.  마치 온갖 맛있을 만한 재료를 모두 때려넣은 정체불명의 잡탕 요리처럼.


개인적으로는 올해 최고의 망작으로 평가되는데 씨네21에서 드라마 부문 1위에 올려놓았다니, 그런 판단을 한 씨네21에 대한 신뢰도가 흔들릴 정도. 드라마가 종영되는 순간, '애썼다'라는 말과 함께 한숨 절로 나온다. 이 드라마의 홍보문구 처럼, '무빙'은 짬뽕도 잡탕도 될 수 있었지만, 끝내 잡탕이 되고 말았다.


덧 1.


영웅들의 능력이 오히려 삶에 장애가 되고 숨겨야 할 비밀이 된다는 이야기의 초반의 모티브를 좀 더 부각하고 끝까지 살려보았으면 어땠을까. 그런 영웅들의 모습을 통해 주변 시선과 사회적 억압에 억눌려 사는 소시민들의 모습을 은유했다면 어땠을까.(그런 의도였던 걸까) 재미있는 아이디어로 출발한 오락물에 너무 큰 기대를 하는 것인가. 하지만 오락물도 하나의 창작물이 아니던가. 창작물이라면 최소한 어느 정도 하나의 '작품'으로서의 흐름과 완성도를 지향해야 하지 않는가.


완성도보다는 작품의 재미요소를 기계적으로 이어 붙이는 이런 현상은 최근 OTT 중심의 제작 환경에 영향을 받는 듯하다. 그렇지 않다면 영화도 드라마도 하나 같이 이런 현상을 보인다는 건, 게다가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진 작품에서 유독 이런 면이 드러난다는 건, 우연으로 보기엔 너무도 두드러지는 공통된 현상이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덧 2.


이 드라마에서 캐스팅 외에 빛나는 것 한 가지가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음악. 달파란의 음악은 우주적이고 오묘한 사운드로 드라마의 판타지적 색채를 입히고 주인공처럼 마치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듯한 무중력의 느낌으로 관객의 감성을 띄운다. 영상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을 스토리 이상으로 보는 내게 이 드라마는 달파란의 음악만으로도 어떤 다른 드라마와도 차별되는 고유한 색깔을 발한다.




원작: 강풀

연출: 박인제, 박윤서

극본: 강풀

출연: 이정하, 고윤정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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