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홉스는 그의 책 『리바이어던』에서 국가와 정치가 필요한 인간의 조건을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 이후 많은 철학자, 실천가들이 홉스의 이 명제를 부정하기 위해 이론적으로, 실천적으로 그야말로 피나는 노력과 투쟁을 거듭해 왔지만, 이 문장은 아직까지도 살아남아 많은 이들의 귓가를 맴돌며 저주처럼 되뇌어지고 있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인지 사회의 필연적 조건인지 그런 건 누구도 실증할 수는 없을 문제이겠지만, 적어도 인간은 어떤 환경에 직면하게 되면 그런 이기성이 폭발될 수 있는 잠재적 존재라는 점에는 대부분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본래 인간이 어떠한지와는 상관없이, 지금의 한국사회에 이런 거대한 재난이 닥친다면 길을 잃은 성난 군중들이 택하게 될 길은 아마도 이와 유사하지 않을까. 사실은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이 정도는 아닐 거야'라고 의심하기가 더 어렵게 느껴진다. 거꾸로 본다면 이렇게 직접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인간의 비겁하고 이기적인 면모가 어떤 잠재된 에너지로 지금의 한국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타인을 짓밟고 올라서려는 못난 자의 욕망이 '부동산'이라는 상징적인 물적 조건에 투영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아마도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초점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동산과 그것을 둘러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암투와 욕망을 이렇게나 직접적으로, 그리고 그 욕망의 본성을 잘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라니.
영화의 주제의식과 상관없이, 이 영화가 보여주는 웰메이드 드라마로서의 면모는 뛰어나다. 이야기 전개 속에서 인물이 차지하는 위치와 역할, 그리고 사건의 경과를 통해 드러나는 인물의 전모, 화면으로 몰입시키는 스펙터클과 스케일, 관객의 흥미와 긴장을 잡아두기에 적절한 이야기 흐름의 속도와 리듬,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주제 하에 이렇게나 구조적으로 잘 조직되었다. 한 마디로 밸런스가 훌륭한 영화. 그리고 요즘 영화들이 상실하고 있는 서사의 응집력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영화라는 측면에서도 단연 올해(2023) 최고의 한국영화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자기 세계를 가진 감독의 탄생을 알리는 선전포고와도 같은 영화. 그의 미래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