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 감독이 영화를 잘 만든다는 것은 이제 온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수 있는 법이고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사람에게도 결함과 단점은 있기 마련이다. 이런 얘기를 굳이 하는 이유는, 이미 짐작했겠지만 류승완의 12번째 영화 <밀수>는 아무래도 그런 쪽 - 원숭이가 가진 나무 타기의 결점이 드러난 - 에 가까운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시작되자마자 첫 신부터 이번 영화의 무기를 야심차게 보여준다. 그것은 수중 촬영. 우선은 바닷속 풍경의 유려함과 해녀들의 아름다운 유영을 보여주는 영상미를 맛보기로 하지만, 우리는 벌써부터 알 수 있다. 이 바닷속에서 곧 액션이 펼쳐질 것이라는. 이 영화에서 수중 촬영과 액션은 <모가디슈>에서의 카체이싱처럼 영화의 재미와 볼거리를 선사하는 선물보따리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영화 속 선물은 선물 그 자체로서만 화려하다. 영화 <밀수>는 <짝패>처럼 본격 액션 장르를 지향하고 있지 않다는 면에서, <모가디슈>나 <부당거래>처럼 어떤 사회적 고발이나 인간성의 내면에 무게를 두지 않는다는 면에서, 이전 영화들이 차지하는 어떤 확실한 위치를 점유하는 데 실패하고 애매모호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굳이 위치를 지워주자면 <짝패>의 액션과 <베를린>의 첩보가 가미된 배신과 믿음의 스펙터클을 지향하는 첩보 활극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으나, 영화의 두 축이 되는 인물(춘자-김혜수, 진숙-염정아)의 갈등과 연대의 드라마가 관객의 동의와 감정이입을 끌어내는데 역부족이라는 데서 역시나 서사적 몰입에 한계를 드러낸다. 그렇다면 재미를 이끌어 내는 원천 재료인 속고 속이는 첩보의 스릴이 책임지고 영화를 짊어질 수 있어야 했겠지만 이 역시도 역부족이라는 느낌을 지우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류승완은 류승완이어서 경쾌한 속도감과 호쾌한 액션, 볼거리를 던져 주는 직설적인 화법이 보는 이에게 평균 이상의 만족감을 선사해 준다. 하지만 또한 류승완은 류승완이어서 기대를 하게 되는 건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영화가 종료되면 그의 작품 목록에서 평균작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끝내 여운으로 남는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왜 청룡영화상은 이 영화에 '작품상'을 쥐어주었는가. 재작년에도 류승완이지 않았나. (물론 다시 주지 말아야 한다는 법칙은 없지만) 게다가 <다음 소희>도 있고, 무엇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있지 않은가. 언제부터인가 작품성을 평가하는 신뢰할 수 있는 기관, 수상 이벤트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작품성과 대중성은 어찌 보면 무관한 속성 아닌가. 대중성을 무시할 필요까지야 없겠지만, 그렇다고 작품을 평가하는 데 있어 대중성에 이토록 휘둘려서야 되겠는가. 아무리 영화산업이 어렵다고 한다 해도.. 한국 영화계에 류승완 감독의 존재가 얼마나 든든하고 믿음직한 버팀목이 되는지 알고 있다면 납득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그래도 '작품상'은 '공로상'이 아니지 않은가...
덧 1.
이 영화를 보는 재미의 백미는 개인적으론 배우 박정민의 연기에 있지 않나 싶다. 그의 연기는 갈수록 능글맞아지고 능숙해진다. 가끔은 징그러울 정도로.
덧 2.
조인성은 이런 역할을 하기에는 너무 선해 보이지 않은가. 심성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인지, 혹은 연기로 가려지지 않는 것인지. 독하고 잔인한 깡패 두목이지만 왠지 잘해주고 감싸줄 것만 같은 기대감을 계속 불러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