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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우산 Dec 09. 2015

Marketing is Attention War

소비자 행동론에서 디지털 행동론으로 #4

조지 오웰의 <1984>는 사회의 모든 정보를 통제, 감시하는 시스템, 일명 ‘빅 브라더’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는 소설이다. 1949년에 쓰인 이 책은 미래사회에서 전체주의의 유지는 힘이 아닌 정보의 통제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당시로써는 그야말로 상상하기 힘들었던 선견지명이자 통찰을 담고 있다. 그리고 공교롭게 1984년 1월 인류 최초의 PC라 할 수 있는 애플의 '매킨토시'가 출시되었다. PC의 등장은 개인에 의한 정보 생산-유통-소비의 편의성을 혁명적으로 증대하였고 따라서 정보의 개인화, 통제된 정보의 해방이라는 측면에서 하나의 사건이라 할 만했다(결과적으로는 그 반대의 효과를 초래했지만. 다시 한 번 놀라운 조지 오웰이여!). 애플은 매킨토시를 론칭하며 <1984>의 소설 내용을 모티브로 한 광고를 제작하였고 이는 광고 역사에 길이 남을 레전드급 캠페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애플 매킨토시 런칭광고


커뮤니케이션학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PC의 등장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에 버금가는 파급효과를 낳았고 그에 따라 정치, 경제, 문화, 사회의 모든 측면에서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 방식은 변화해 갔다. 이 모든 변화를 가능케한 한 사람, 스티브 잡스는 그 뒤 홀연히 사라졌다가 아시다시피, 어느샌가 애플에 다시 복귀하여 또 하나의 혁명을 이루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 모두가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이라는 우주다. 


인류의 역사를 바꿔놓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와 잡스의 iphone


활자의 등장, PC의 등장에 버금가는 아니 오히려 그 이상의 엄청난 변화를 인간사회에 불러일으키고 있는 이 조그마한 손 안의 전자 기계는 기계라 불리기에는 그 안에 담고 있는 것이 너무도 많아서, 그 안에 담고 있는 세계가 너무도 커서, 우리가 현재 감각하고 있는 ‘Real World’ 외에 또 다른 ‘Another World’라는 의미에서 가히 ‘우주’라 할만하다. 


우리는 실제 우주 외에 또 하나의 우주를 갖게 되었고 이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살고 있는 두 가지의 삶을 ‘비교’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였다. 복잡하고 얽혀 있어 파악하기 힘들었던 실제 우주에 비해, 또 하나의 우주는 알기 쉽고 이해하기 쉬우며 깊은 생각이 필요 없고 클릭 한 번으로 행동의 번거로움을 덜 수 있었다. 게다가 심지어 재미있기까지 해서 사람들은 이 또 하나의 우주에 매력을 느끼며 급격하게 몰입되어 갔다.


이제 스마트폰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기에 두 가지 우주를 전부 감각-인지-사고-행동하기에는 한정된 에너지만을 가지고 있었고, 때문에 에너지를 적절히 분산해서 효율적으로 사용해야만 했다. 안타깝게도(?) 실제 우주는 또 하나의 우주에 비해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었고 결정적으로 별로 재미가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점점 감각-인지-사고-행동하기에 훨씬 수월하고 재미있기까지 한 또 다른 우주에 더 많은 에너지를 할애하기 시작했고, 게다가 손에 쥘 수 있으므로 인해 언제 어디든 접속(Connect)할 수 있다는 기술적 장점을 활용하여 또 다른 우주에 더 많은 시간을 별다른 저항 없이 내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급기야 또 다른 우주가 실제 우주보다 더 큰 시공간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지구라는 넓은 세상보다 더 넓은 손 안의 세상으로 다가온 또 다른 우주의 이름은 바로 ‘디지털(Digital)’이다.


디지털은 손 안의 또 다른 세계, 하나의 우주다.


주객은 전도되기 시작했고, 아니 이미 전도되었고, 그에 따라 사람들은 실제 우주와는 다른 또 다른 우주의 환경에 따라 감각-인지-사고-행동하기 시작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듯, 디지털에 접속하면 디지털의 법을 따르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따르게 되는 디지털의 법, 디지털의 Rule은 점점 더 그 영향력을 키워가며 급기야 우리의 행동양식을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우리가 이미 익히 알고 있는 실제 우주에서의 소비 행동양식 - 소비자 행동론과는 다른 디지털에서의 행동양식 - 디지털 행동론이 필요한 이유다. 그래서 이제 디지털 행동의 법칙이라 할 만한(그렇게 주장하고 싶은) 몇 가지 변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Joseph Pine II & James Gilmore는 1999년 <The Experience Economy>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이 책은 마케팅 학계에 엄청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며 ‘체험 마케팅(Experiential Marketing)’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나게 했다. 이후 고객에게 특별한 체험을 제공하기 위한 다양한 마케팅 노력이 수행되어 왔고, 이는 브랜드 구축의 필수적인 방법론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얼마 후, 이보다는 퇴보한 듯한 개념의 경제 패러다임을 제시한 책이 있었으니 바로 Thomas Davenport & John Beck의 <The Attention Economy>다. 이들은 현대 소비자들을 둘러싼 과대한 정보 환경을 꼬집으며 이러한 정보 비만이 관심의 결핍을 낳았다고 말한다. 때문에 체험 같은 적극적인 소비자 행동 이전에 수동적이지만 관심 자체가 매우 중요한 행동의 동기가 되고 희소한 가치이자, 오늘날 비즈니스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인이라고 말한다.


체험 경제학 (좌) / 관심 경제학 (우)


관심'의 경제적 가치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는 이유는 Davenport & Beck이 말했듯, 지금의 정보통신 환경에서 기인한다. 즉 현대사회에서 관심이란 앞서 말했던, 우리가 우주를 감각-인지-사고-행동하는 데 들이는 에너지 중 하나라 할 수 있는데,


디지털에서 특히 관심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또 다른 우주에 사람들이 에너지를 할애하게 되는 동기에서 기인한다.


애초에 디지털에 우리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는 이유는 실제 세상(디지털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아날로그 세상이라 부르자)이 복잡하고 지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복잡한 무언가를 인지, 판단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경향이 강력하게 나타난다. 복잡한 회사생활을 피해 휴가를 떠난 곳에서 무언가 계속 계산하고 평가해야 한다면 이 얼마나 피곤하고 화나는 일이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직장인들은 여름휴가라는 귀중한 시간과 힘겹게 번 돈을 가만히 앉아 놀고먹는 휴양지 리조트에 투자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그곳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라고는 그저 넓은 바다와 파란 하늘, 하얀 모래사장이 전부인데도 말이다.


휴양지에서 인간의 행동은 일상에서보다 훨씬 더 게으를 것이다.


체험 경제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얼마나 무가치한 투자란 말인가. 디지털이란 바로 이 휴양지와도 같은 역할을 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어떤 인지적 노력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그렇다 보니 그 어떤 것이라도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으려는 수동적인 태도를 이미 갖추고 있다.


해변의 선 베드에 누워있는 휴양객은 눈앞에 상어라도 나타나지 않는 한 그저 누워서 목이나  축일뿐이다. 그런 상황에 그의 앞을 지나가는 모자 파는 장사꾼이 아무리 소리를 지른다 한들, 아무리 모자가 멋지다 한들, 그에게 눈길이라도 줄 여력이 있겠는가. 이 때문에 디지털에서 소비자가 무언가에 주는 관심이란 것은 아날로그에서의 관심과는 아주 다르다. 

디지털 세계에서 관심이 지속되는 시간은 금붕어보다도 못하다.


디지털에서 관심이란 소비자가 가진 '자산'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함부로 지불하지 않는, 매우 비싼 자산이다.


따라서 그 관심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매우 매우 매우 어려운 일이고 또한 관심에 들어가기 위한 방법 자체도 아날로그와는 완전히 달라야 한다. 그러니까 동대문 시장에서 장사하듯 소리 지르며 호객행위를 하는 방법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디지털에서의 소비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감각-인지의 에너지를 내어주는데 아주 인색하고 그 에너지를 매우 효율적으로 사용하려 한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서 


디지털에서의 마케팅은 그 비싼 ‘관심’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목적이어야 하고 어찌 보면 그것에 모든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최근 인기 있는 72초 드라마는 젊은 층의 디지털 행동에 최적화된 형식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아날로그 마케팅에서처럼 설득을 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관심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 관심만 잡게 되면, 오히려 일은 술술 풀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일단 관심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 그 관심이 네트워크를 따라 급격히 확산되고 어떠한 설득 과정도 없이 바로 판매로 이어지기도 한다. 최근 디지털에서 회자되어 크게 성공을 거둔 비락식혜의 ‘의리’ 캠페인은 디지털에서 관심의 힘을 말해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엄청나게 관심을 받으며 재기에 성공한 비락식혜




디지털에서의 마케팅은 소비자들의 관심에 들기 위한 전쟁, ‘Attention War’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소비자와의 관심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아날로그와는 다른 무기를 장착해야만 하는데, 그 무기가 바로 ‘공유’다.



※ 본 글은 한국광고총연합회에서 발간하는 [광고계 동향] 2015년 5월호 (Vol.290)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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