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행동론에서 디지털 행동론으로 #5
코카콜라는 달고 검은 탄산음료, 콜라를 만드는 회사다. 하지만 단지 콜라를 만드는 회사라고 하기에 코카콜라라는 브랜드가 가진 가치는 그 이상이다. 코카콜라는 인터브랜드에서 매년 발표하는 글로벌 브랜드 순위에서 2000년부터 13년간 연속으로 세계 1위라는 타이틀을 놓지 않았다(최근 1위는 애플로 바뀌었다. 스마트 세상을 만든 브랜드인데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그만큼 코카콜라는 브랜드 관리를 잘하는 회사다. 그래서 코카콜라를 콜라 제조업체라고 말하기보다는 ‘Branding Company’라고 부르는 게 더 맞는 의미일 것이다(실제로 코카콜라는 콜라를 생산하지 않는다. 콜라 원액만을 현지 생산업체에 제공할 뿐이다).
코카콜라는 Branding Company 답게 브랜드 슬로건을 전략적으로 교체, 유지해오고 있다. 브랜드의 에센스를 잃지 않는 범위에서 시대에 맞게 업데이트를 하는데, 최근 교체한 슬로건에는 뭔가 변화가 생겼다. 코카콜라는 ‘Happy’를 핵심 가치로 지향하고 있어 이전 슬로건으로는 ‘Open Happiness’를 사용해 왔는데 최근에는 Happy를 계속 이어가되, 맨 앞에 해시태그를 붙여 ‘#MakeItHappy’로 쓴다. 해시태그의 특성을 살려 띄어쓰기조차 하지 않았다. 프로모션 테마도 아니고 장기적으로 사용하는 브랜드 슬로건에 해시태그를 사용한다는 것은 그만큼 디지털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나아가 디지털 영역에서 브랜드 마케팅을 주도해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또 다른 Branding의 변화로는 얼마 전 패키지의 라벨에 문구를 실어 생산한 상품을 들 수 있다. 여러 가지 문구를 새겨 고를 수 있게 해놓았는데, 가령 ‘사랑해’, ‘잘될 거야’, ‘고마워’, ‘웃어요’, ‘힘내자’ 등 우리가 서로에게 흔히 건넬 수 있는 일상어를 새겨 놓았다. ‘그저 재미난 마케팅 장치이겠구나’ 싶기도 하고, 사람들마다 취향대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최근 유행하는 ‘Mass Customization의 마케팅 기법이겠구나’ 싶기도 하겠지만, 가만히 새겨진 메시지들을 살펴보면 코카콜라를 누군가에게 건네주거나 나누게 하려는 의도라는 걸 알 수 있다. 즉, 친구에게 힘내라는 말 대신 ‘힘내자’는 말이 새겨진 코카콜라를 선물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코카콜라라는 브랜드를 사람들 사이에 서로 공유할 수 있게 하는 장치인 셈이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공유’가 마케팅과 브랜딩의 키워드로 떠올랐을까. 당연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에서 내가 하는 모든 행위는 타인들과의 연결을 전제로 하고 그들의 시선 위에 놓여 있다. 따라서 디지털에서의 행동이란 곧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공유의 과정이다. 아니, 디지털에서 모든 행동의 목적은 사실 공유를 위한 것이다. 디지털에 접속한다는 건 타인과 연결한다는, 타인들과의 연결망에 진입한다는 의미이므로, 어떤 행위든 그들에게 ‘보여짐’을 의미하며 거꾸로 보여지는 것을 의식하며 행위를 선택하게 된다. 즉, 내가 ‘좋아요’ 버튼을 누른다는 것은 단지 좋아한다는 걸 스스로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한다는 걸 타인에게 보여준다는 의미가 더 크다.
‘행위=공유’가 되는 데는 SNS라는 미디어의 역할이 크다. SNS상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는 건 그 이전의 어떤 커뮤니케이션과도 다른 구조를 가진다. TV는 ‘1:MASS’의 커뮤니케이션이고 인터넷은 ‘1:1’의 커뮤니케이션인데 반해, SNS는 ‘MASS:MASS’라는 커뮤니케이션 형식을 취한다. 마치 광장에서 모든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데 그 소리가 각자의 귀에 다 들리는 상황이랄까. 독백의 형식을 취하는 듯 하지만 사실은 대중을 향한 기자회견과도 같고, 친구에게 말을 거는 것 같지만 사실은 친구의 친구들, 친구들의 또 다른 친구들 즉, 역시 대중들을 향해 자신을 알리는 행위다.
그렇다면, 페이스북에서 ‘좋아요’ 클릭을 통한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한번 들여다보자. 가령, 페이스북에서 A가 이렇게 말한다. “나는 가수 OOO을 진짜 좋아해. 그의 노래 실력은 정말 뛰어나.” 여기서 가수 OOO는 내가 좋아하는 대상이다. 당연하게도 겉으로 표현한 말은 ‘내가 OOO를 좋아한다’는 아주 단순한 사실이 된다(a). 하지만 실제의 소통은 그 이상으로 복잡하다. 즉 ‘좋아요’는 나를 아는 다른 사람이 내가 가수 OOO를 좋아한다는 걸 지켜볼 것이라는 전제가 달린다(b’). 이렇게 되면 ‘좋아요’의 의미는 내가 좋아하는 건 가수 OOO라는 의미도 있지만, 더 나아가 가수 OOO를 좋아하는 나를 다른 사람이 지켜보는 시선을 좋아한다는 의미 또한 포함한다(a”). 이 과정은 A가 가수 OOO를 좋아한다는 말에 B가 ‘좋아요’를 클릭했을 때도 동일하게 발생한다.(b”) 결국 겉으로는 가수 OOO에 대한 나의 기호를 혼자 확인한 것 같지만, 사실은 가수 OOO를 매개로 둘 사이에 취향의 공유가 이루어지는 과정이며, 이는 나의 ‘좋아요’를 볼 수 있는 친구의 친구와도 같은 과정을 거친다.
결국, 디지털에서의 모든 행위는 곧 공유이며 공유되지 않은 행동은 아무런 의미도 없고 더 이상 행동이 아니다. 그런 의미는 브랜드와 소비자 간의 커뮤니케이션 또한 마찬가지다. 아날로그 세상에서 브랜드-소비자 간 커뮤니케이션은 브랜드에 대해서 소비자가 평가하고 판단하는 과정이다. 그 결과로 내가 브랜드를 선호할지 말지, 구매할지 말지가 결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이란 소비자가 좋아할 만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걸 의미했고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위해서 신뢰를 주는 것이 중요했다. 즉, 나는 당신이 믿고 선택할 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설득하고 입증하는 과정이었다.
제품 판매 또한 마찬가지다. 당신의 소중한 돈을 주머니에서 꺼낼 만한 이유가 있다는 확신이 필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구축함에 있어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RTB(Reason to Believe or Buy)’였다. 그래서 RTB는 기업의 마케팅팀이나 광고회사의 전략 구축을 위한 회의와 보고서에 절대 빠지지 않는 단어다. 그리고 ‘RTB가 무엇이냐?’, ‘RTB를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 ‘찾아낸 RTB가 과연 소비자들에게 설득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곤 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디지털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은 설득의 과정이 아니다. 단지 관심이 교환되는 과정이며 관심이 공유되는 과정이다.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공유를 위해 발화(發話)되고 관심을 통해 선택되며, 다시 공유를 통해 확산되는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확산은 곧 판매로 이어진다. 결국은 공유가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커뮤니케이션의 성과를 좌우하게 된다. 공유되지 않은 마케팅 콘텐츠는 마치 아무에게도 시청되지 않은 TV광고와도 같다. RTB가 명확하고 설득적이면 뭐하겠는가. 아무도 보지 못했다면, 아무도 듣지 못했다면, 아무도 느끼지 못했다면 말이다. 그러므로 디지털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하려면 우리 브랜드가, 이번에 생산된 제품이 소비자들에게 신뢰받을 이유를 찾느라 쏟을 노력의 절반은, 아니 그 이상을 떼어서 공유하게 될 이유를 찾는 데 쏟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곧 ‘Reason to Share - RTS’다. 디지털 세상에서 RTB보다 중요한, RTB를 대체해야 할 전략적 개념이다.
예를 들어 보자. 앞서 말했던 디지털 성공 캠페인인 비락 식혜의 경우 ‘탄산도 카페인도 색소도 없는 전통의 맛’이라는 RTB가 디지털에서의 공유와 확산에 어떤 기여를 했는가를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RTB는 마케팅에 없어서는 안 될, 기업 내부 전략의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그것만으로 성과를 내기에 충분한 충분조건일 수는 없다. 결국 관심과 공유라는 울타리를 넘기 위해서는 ‘의리’와 ‘김보성’이라는 콘텐츠로서의 재미 요소, 즉 RTS가 필요하다. 어찌 보면 디지털에서 RTS 없는 RTB란 날지 못하는 새와도 같다. 마케팅 콘텐츠가 날아서 사람들 사이에 ‘twit’ 되려면 날개가 필요하고 그 날개는 바로 RTS다.
※ 본 글은 한국광고총연합회에서 발간하는 [광고계 동향] 2015년 6월호 (Vol.291)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