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폴즈(Ben Folds)의 신보, [So There]
신보 앨범을 듣다 보면, 크게는 두 가지로 나뉜다. 귀에 들어오는 음악과 왠지 흘러지나 가는 음악. 하지만 흘러지나 간다고 해서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반복해서 듣다 보면 진가가 드러나는 그런 음악도 있는 법이다. 최근 발매된 루시드 폴의 앨범이 그렇다. 루시드 폴의 음악은 언뜻 들으면 다 그 노래가 그 노래 같아서 지겹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 반복해서 듣다 보면 가사가 들리기 시작하고 노래 하나하나의 차이가 드러나면서 각 앨범마다의 의도와 독특성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직 이번 앨범은 몇 번 듣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최소 10번 이상은 들어야 뭔가 들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반면에, 처음 들어도 단번에 귀에 들어오는 음악도 있다. 음악이 시끄러워서 그렇다는 건 아니다. 시끄러워도 들리지 않고 한 귀로 줄줄 새나 가는 그런 음악도 많다. 하지만 듣는 순간 '이건 뭔가 새로워'하는 느낌이 드는 음악이 있다. 대개 인간이란 새로운 무언가에는 솔깃하고 감각이 저절로 반응하게 마련인 것이다. 하지만 새롭다는 느낌이 반드시 좋은 느낌으로 이어지는 것만도 아니다. 새롭지만 별로 좋지 않을 수도 있고, 혹은 너무 새로워서 생소한 나머지 받아들이기 힘든 경우도 있다. 그런데
뭔가 새롭지만 익숙하기도 해서, 귀가 먼저 반응하는 그래서 소리가 머리와 가슴으로 쏙쏙 들어오는 그런 음악이 있다.
최근에는 밴드 혁오의 앨범이 단연 그랬다. 한국의 음악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새롭고 세련되지만, 듣기 불편하지는 않고 편안하고 익숙한 그런 느낌이랄까. 사실 혁오의 음악은 알고 보면 노르웨이의 포크 듀오 'Kings of Convenience'의 음악을 많이 닮아 있다. 특히 멤버 중 한 명인 얼렌드 오여(Erlend Øye)가 독자적으로 구성한 밴드 'The Whitest Boy Alive'의 음악과 더욱 닮아 있다.(이 밴드는 빠른 버전의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라 보면 되겠다.) 왠지 모를 익숙하고 편안한 느낌은 여기서 오는 것일지도.
이렇게 단번에 귀에 쏙 들어오는 앨범은 사실 많지 않은데, 1년에 2~3건 정도랄까. 그런데 며칠 전 이런 앨범을 극적으로 만났다. 바로 벤 폴즈(Ben Folds)의 신보 [So There]다. 그냥 귀에 쏙 들어오는 정도가 아니라, 번쩍 뜨인다고나 할까? "이게 뭐지?", "뭔가 새로운데?" 하면서 계속 듣게 되는 앨범이었다. (초반부터 클래식 악기와 연주가 퓨전되어 있는데, 알고 보니 6인조 클래식 그룹인 yMusic과 콜라보레이션을 했다네요.)
전문 음악평론가가 아닌 나로서는 이 앨범이 왜 좋은지 설명하기 어려운데, 그냥 느낀 대로 말해 보자면 이렇다. 떠오르는 밴드의 앨범들은 많지만 그들과는 또 다른 느낌의 새로움이랄까. 대개 새로운 사운드를 보여주는 뮤지션들의 등장은 그 시대에 떠오르는 장르나 연주 스타일에 편승하는 경우가 많은데 벤 폴즈의 이번 앨범은 요즘의 시류와는 오히려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이다. 일단 뭔가 아주 많은 여러 가지가 섞여있는데 어색하지 않고 잘 짜여진 느낌이랄까. 언뜻언뜻 들리는, 섞여들어간 음악들의 사운드는 익숙하기도 한데 다시 전체로 빠져나와 들어보면 전혀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다.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비빔밥인데 그냥 원래 먹던 나물 + 고추장만이 아닌, 거기에 허브도 들어가고, 치즈도 들어가고, 아스파라거스에 거위 간도 있는데 재료들이 한대 섞여 결국 찰지게 맛난다고나 할까.
일단 떠올랐던 음악부터 들어보자면, 비틀즈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가 있고, 그리고 영국의 천재 뮤지션 루퍼스 웨인라이트(Rufus Wainwright)도 떠오르고, 차이코프스키 백조의 호수, 한스 짐머의 영화음악, 제스로 툴(Jethro Tull)이나 클라투(KLAATU) 같은 프로그래시브 밴드들... 제스로 툴은 플룻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록 사운드라는 면에서, 클라투는 비틀즈와 클래식 조합의 연장이라는 측면에서...
서로 어울리지 않을 법한 음악들이 개별적으로 떠오르는데, 이상하게도 그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다. 그러니까
내 귀에 들리는 이 음악은 그야말로 우주에서 처음 들어보는 것 같은 새로운 느낌이면서도 듣다 보면 빠져드는 익숙함이 공존하는 것이다.
사실 난 이 뮤지션에 대해서는 얼마 전까지 전혀 몰랐었는데, 음악평론가 배순탁의 글을 통해 이번에 알게 되었다. 음악과 영화에 대한 열정적인 에너지, 취향의 호불호를 명확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평론가다. (너무 객관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평론가는 왠지 거리감이 느껴진다랄까. 가령 이동진 같은), 그런 배순탁 씨가 얼마 전에 브런치를 통해서 본인의 올해 최고의 앨범으로 이것을 들었다.
* 관련 글 >> 배순탁, '그의 멱살을 잡고 묻고 싶다.'
대개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가 좋아하는 음악이나 영화는 나에게도 좋은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주저 없이 들어보았던 게 적중했다. 그냥 듣는 순간 빨려들며 최근 나의 출퇴근 시간을 새로운 세계로 안내하는 가이드가 되어주고 있다. 늙어서 밴드 음악보다는 뭔가 조용하고 차분한 음악을 찾게 되는 요즘의 내게, 해외 팝을 들으며 이런 놀라운 느낌을 가져보는 건 참 오랜만의 경험이다.
누구한테든, 꼭 한번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앨범이다. 정말 새로운 세계, 새로운 우주로 당신을 데려다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