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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우산 Jan 02. 2016

시선의 미학, 사진 그리고 인생

더글라스 케네디(Douglas Kennedy)의 소설, [빅 빅처]


사진은 시선의 미학이다.


사진이라는 예술장르는 창작활동도 감상 활동도 참 용이해서, 한 때 디카 붐이 일었을 때 나 또한 동참한 적이 있었으나 뭐든 쉽게 얻어진 건 내 것이 아니듯 그렇게 맞지 않는 옷처럼 불편한 게 사진이었다. 대체 어떤 사진이 좋은 건지, 어떻게 찍어야 적절한지, 결국 사진을 왜 찍는 건지... 의문은 끝이 없다가 그냥 사진은 나한텐 안 맞는가 보구나 하며  때려치웠던 기억이다. 당시 사진 좀 찍는다는 사람들은 뭔가 멋져 보이고 있어 보이는 사진들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고, '왜 사진을 찍는가'에 대한 고민은 없는 채 그저 특별한 피사체와 고성능의 카메라를 찾아 남들에게 근사하게 보여주는 의미 없는 과정만이 되풀이될 뿐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과정은 참 공허했다.


대포 DSLR을 들고 여행 사진찍기는 한때를 휩쓸었던 유행이었다.

※ 과 후배는 당시 취미삼아 다녔던 출사가 평생의 업이 되었다. 출사 전문 여행가이드를 하고 있다. 다들 애용 바랍니다. 지루박멸연구센타 우쓰라 닷컴 (위 사진)



그런 디카 열풍이 사그라진 뒤 나 또한 눈에 안 띄는 곳에 카메라 가방을 처박아 둔 채 세월은 흘렀고, 이제는 어디 놀러 가서 멋진 풍경을 찍거나 블로그에 올릴 요리 사진 찍는 것이 사진 촬영의 전부가 되었다. 예전에 왕성했던 사진활동의 경험들은 멋진 풍경을 위한 구도를 잡는데, 요리 사진 찍을 때 흔들림을 방지하는 데는 꽤나 유용하게 쓰이고 있지만 여전히 사진 감상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건 모두 멋져 보이려는 헛헛한 욕심에서 비롯된 경험이었기 때문에 그러하리라.


요리 사진 찍는데에는 꽤나 유용한 사진 기술


그러다 언젠가부터 알게 되었다. 사진이 시선의 미학이란 것을. 내가 그걸 깨닫기까지 내 사진활동 경험은 전혀 도움된 바가 없고, 어느 단편소설이 단초가 되었는데 그의 글을 인용하자면 이렇다.


인상파 화가인 드가는 ... 그 그림들의 주인공은 무용수나 매춘부가 아니라 그들의 방심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시선'이었다. 화가의 시선은 냉혹했고 그림 속의 모델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줄을 입에 물고 허공에 매달려 있는 페르난도 서커스단의 라라 양의 모습은 그것을 올려다보는 시선의 존재로 인해 더욱 위태롭게 느껴졌다. 그 그림을 표구점에서 우연히 접했을 때 나는 타인들의 고압적인 시선에 갇힌 한 여자의 운명을 보았다. 그 여자는 타인들의 시선 속에서 올라가지도 내려오지도 못하고 허공에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추락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문 채.


- 김경욱 단편집, [장국영이 죽었다고?] 中


드가, [페르난도 서커스단의 라라] / 김경욱 단편집, [장국영이 죽었다고?]


그리고 또 사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는 이 소설,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픽처]에서도 사진은 시선의 미학으로 묘사된다.


딱히 사진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는 소설이지만, 주인공이 꿈꾸던 직업이 사진가였다는 이유로 사진에 대한 견해가 심심찮게 등장하는 이 소설을 읽으며, 김경욱의 저 글귀가 떠올랐고 이내 사진은 시선의 미학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어떤 사진이 좋은가 아닌가는 사진에 담긴 작가의 시선에 있으며, 그리고 그 시선에 대해 어떤 생각을 작가가 담고 있느냐에 달렸다. 소설 속 주인공이 사진가로서 크게 성공하게 된 사진에 담겨있는 시선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렇다.


"이 사진들이 왜 좋은지 알아요? 댁이 예술가인 척하지 않았기 때문이오. 서부 사람은 으레 그럴 것이라는 편견을 조금도 개입시키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를 찍었기 때문이오. ... 아, 책으로 내도 좋겠군요. 나라면 책 제목을 [가짜가 아닌 몬태나주의 얼굴들]이라고 붙이겠소."


사진가가 피사체(사건)를 바라볼 때의 시선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관해서는 백날을 토론할 수도 있겠지만 정작 우리가 알아야 할 건, 어떠한 시선이 올바른가 따위가 아니라, 사진은 시선을 반영한다는 것이고 시선이 사진을 만든다는 것이다. 저 유명한 사진가 브레송은 사진가에게 시선이 필요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프랑스의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가는 수동적인 관객이 될 수 없다. 사진가는 사건에 사로잡혀 있을 때만 진정으로 빛날 수 있다.

-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


뭐, 사진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생략하고. 이 소설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결론은 이렇다. 누구에게든 적극 추천하고 싶은 소설. 그러니까 '아니, 이렇게 재밌을 수가!' 혹은 '한번 잡으면 놓을 수가 없어' 뭐 이런 한 줄 평이 가능한 소설이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직장인의 심정을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는 말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것과 그냥 평범하게 평화롭게 사는 게 최고라는 교훈까지, 고루 갖춘 소설이다.


더글라스 케네디, [빅 픽처]


직장인들은 항상 꿈꾼다. 무언가 다른 인생을. 이렇게도 생각한다. 이렇게 살려고 태어난 건 아냐. 라던가.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주인공의 상사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와서 가장 힘든 게 뭔지 아나? 언젠가 죽는다는 걸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는 거야. 변화를 모색하거나 새로운 기회를 찾아 나서거나 다른 생을 꿈꿀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오리란 걸 알면서도 나와는 전혀 관련 없는 양 살아왔다는 거야."


나는 항상 생각해 왔다. 진짜 인생을 살려면 죽음을 내 눈앞에 두고 응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내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회사를 때려치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다 일찍 안 죽으면 어쩌려고.


누구나 인생의 비상을 갈망한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가족이라는 덫에 더 깊이 파묻고 산다. 가볍게 여행하기를 꿈꾸면서도, 무거운 짐을 지고 한 곳에 머무를 수밖에 없을 만큼 많은 걸 축적하고 산다. 다른 사람 탓이 아니다. 순전히 자기 자신 탓이다. 누구나 탈출을 바라지만 의무를 저버리지 못한다.


사람들은 회사와 일상, 가족으로부터의 탈출을 바라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곧 구원은 아니다. 탈출할 수야 있겠지만 탈출에 성공한 그 순간부터 방황이 시작되므로. 자유의 본질이란 그런 것이다.


누구나 자유로운 삶을 꿈꾼다. 그러나 그런 자유, 그 텅 빈 지붕과 마주하게 되면 두려움밖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유란 끝없는 무의 공간을 바라보는 것과 같으니까. 아무것도 없는 영역을.


언제나 인생과 사람을 생각하면 결론은 이렇다. 딜/레/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다. 결국 어디에 더 가치를 두고 사는가의 문제이다. 그래서 '가치관'이란 인생을 사는데, 진짜 인생을 사는데 필수적이다. 가치관이 없는 인생이란, 인생이라기보단 그냥 죽음을 향해 흘려보내는 시간과도 같은 것이다.


프랑스의 시인, 샤를 보들레르


삶은 모든 환자가 자리를 바꾸어야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힌 병원이다. 이 환자는 난방 장치 앞에서 아프고 싶어 하고, 또 저 환자는 창가에 누워 있으면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 (...) 늘 여기가 아닌 곳에서는 잘 살 것 같은 느낌이다.

- 샤를 보들레르 -


인생에 대해 내가 지금까지 본 문장 중 가장 본질적인 통찰을 담고 있는 말이다. 어차피 어딜 가나 무얼 하나 결과적으로 마찬가지라면 ‘이것이다’라는 신념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언젠가 배신을 당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니까,


인생을 보는 데도 '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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