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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우산 Jan 17. 2016

당황스러울 정도로 솔직한

이석원 이야기 산문집,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이석원.


'언니네 이발관'의 리더로 기억되고 있는 사람이다. 국내 인디음악의 선구자와도 같은 밴드라 그 이름의 무게만으로도 묵직한 밴드, 바로 그 밴드를 만들었고 유지하고 있는 뮤지션. 하지만 5집 앨범을 마지막으로 기나긴 휴지기에 들어갔고,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이 나라 유행의 물결에 휩쓸려 그 존재감이 사라져갈 즈음, 5집 앨범 타이틀과 동명의 에세이 [보통의 존재]가 눈에 띄는 노란색 표지를 하고 서점과 지하철, 까페에서 사람들의 손에 들려있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글을 쓴 사람은 바로 그 언니네 이발관의 뮤지션, 아니 이제는 작가라 불러야 할 만한 위치에 오른 뮤지션이자 작가인 이석원이다. [보통의 존재]가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조용하지만 꾸준히 팔려나간 뒤로(지금도 스테디셀러) 뒤이어 뮤지션들의 에세이, 소설들이 뒤따랐고(이를테면, 루시드폴은 단편집을 냈고 오지은 에세이를 두 번째 냈으며, 그 외 요조, 계피 등등.. 꾸준하다.) 이 또한 뮤지션의 또 다른 비전(창작의 수단이자 동시에 밥벌이 수단이기도 한)을 제시한 그는 인디계의 또 다른 물결을 만들어낸 선구자가 된 셈이다.


 왼쪽부터, 루시드 폴의 단편소설집 / 가을방학 계피의 수필집 / 오지은의 산문집

최근 오지은의 산문집 [익숙한 새벽 세시]를 읽어보았는데 이 책도 명문으로 가득하다. 강추한다.


멀리서 그를 조명해 보면, 그는 뮤지션이자, 작가이자,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 낸 선구자로서 그가 걸어온 발걸음은 참으로 존경스럽고 부러울 만하다. 하지만, 그의 글을 읽어본 사람이면 알리라. 그가 얼마나 여리고 나약하고 소심하고 찌질한지. 그리고 얼마나 섬세하고 예민하며 까칠하고 집요한지. 글을 통해 가까이서 본 그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지만 왠지 안타깝고 애처로운 감정이 들게 만들 정도로, 버겁고 힘겹게 사는 사람이다. 그의 직업도, 성격도, 연애도, 인생도. 모두. 궁금한 사람은 걸작의 에세이 [보통의 존재]를 꼭 읽어보시라. 혹은 언니네 이발관 5집, [가장 보통의 존재]라도 들어보시길.


이석원 에세이 [보통의 존재] / 언니네 이발관 5집 [가장 보통의 존재]


하지만, 조금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를 그렇게 쉽게 비웃지는 못할 것이다. 사실 에세이에서 그가 그렇게나 찌질하고 안타깝게 표현되어 있는 이유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이 냉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자기를 객관적으로 보려 하고, 나아가 자신의 허울을 벗겨 진짜 나의 모습을 정면으로 응시하려 한다. 그리고 이렇게 자기 자신을 바라봐 본 사람이라면 안다. 자신이 얼마나 나약하고 초라한지를. 


으시대는 과장된 과시와 스스로의 어깨를 두드리는 끝없는 자기 합리화라는 포장을 애써 벗겨내고 나면, 그 안에 두려움에 떨며 아이 같이 웅크리고 있는 자신의 실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사실 거기까지 들어가기도 힘은 과정이지만, 그 안의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는다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란 무척이나 부끄럽고 고통스럽고 아픈 과정이지만 정작 아무도 시키지 않고 강요하지 않으며, 해야 할 의무 따위는 없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성장하려면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는 사는 내내 그 어렵고 힘든 과정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견뎌내며 자기를 응시한다. 그렇기에 그런 글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었다. 사실은 그만의 특수한 성격, 특수한 아픔, 특수한 인생인 것 같지만 사실 누구나 가지고 있을, 하지만 외면하고 있을 그런 보통의 모습들이다.


누구나 자신에 대한 기대라는 것이 있고 그것이 실제로 오르기 어려운 산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세월이 필요하다. 그 깨달음을 스물다섯에 얻는다면 그건 바보 같은 일일 것이고, 서른이라 한들 속단이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마흔 언저리쯤 되면 반드시 포기하고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온다. 그때가 되면 마지막 몸부림도 쳐보고 온몸으로 거부도 해보지만 결국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확인이다. 자신을 안다는 것. 그 잔인한 일을 말이다. - [보통의 존재] 中


그는 나약해 보이지만, 사실 자기 자신을 냉정하게 들여다보고 반성하는 일을 놓지 않고 끊임없이 해 나가는 사람이기에 그 누구보다도 용감한 사람이다. 마치 아무도 오르라고 강요하지 않았지만 굳이 그 험한 산을 기어코 오르고야 마는 산악인처럼. 그는 강하다. 진정 강한 사람은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그걸 넘기 위해 용기를 내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약해서 강한 사람이다.


자신이 보통의 재능과 운명을 타고난 그야말로 보통의 존재라는 것도 알았고, 세상이 공정하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세월이 갈수록 나를 가려주던 백열등이 수명을 다해가고 있음도 직시하게 된 지금.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나의 남은 날들을 어떻게 살아가게 될 것인가. ... 누구든 위험한 희망을 선택하지 않아도 될 권리와 자유가 있다. 따라서 그는 얼마든지 안락과 정착을 꿈꿀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일찍 자신에게 주어진 불리한 여건에 수긍하거나, 운명을 거역하기 위한 노력을 쉽사리 포기한다면... 하여 보통의 존재는 역시나 보통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게 된다면... 이야기의 결말이 조금 허무하지 않을까. - [보통의 존재] 中


그렇게나 뛰어난 업적을 행해 온 사람이 자신을 '보통의 존재'라 칭하며, 보통의 선택, 보통의 인생을 살지 않기 위하여 발버둥 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란,  존경스럽다기보다는 숙연해진다. 그러니까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는 것이다. 나는 얼마나 주변을 탓하고, 환경을 탓하고, 능력을 탓하며 살아왔던가. 모두 나의 두려움과 용기 없음이 빚어낸 보통의 결과일 뿐일 것을.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고 부끄러움과 숙연함을 가지게 만드는 책이야말로,
또 얼마나 대단한가.


그런 이석원이 또 에세이를 들고 나왔다. 그 사이 소설 한 권을 쓰고 나서 발간된 에세이라 무척이나 궁금했다. [보통의 존재] 이후, 작가의 길을 걷고자 했던 그는 몇 년 전 [실내인간]이라는 그야말로 본격 장편소설을 출간했지만, 반응은 영 시원찮았다.(나도 읽어보았지만, 소설로서는 글쎄... 그래도 나는 아주 재미나게 읽었지만.) 그리고 이번 에세이는 작가로서의 부담과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가 겪게 되는 에피소드(라기 보다는 하나의 소설 같은)를 엮어 이름도 희한한 '이야기 산문집'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내걸고 출간됐다.


이석원의 장편 소설 [실내 인간] / 이야기 산문집 [언제 들어도 좋은 말]


읽어보면 다들 아시겠지만 정말로 에세이라 하기엔 소설 같고 소설이라 하기엔 에세이 같은 글쓰기 형식을 취하고 있다. 소설가로서 글을 써볼까 하며 겪었던 그의 고충(장편을 완성하는데 4년이란 시간이 걸렸다.)을 감안하면, 그리고 공식적으로 등단한 작가도 아닌 마당에 뮤지션이 쓰는 에세이라면 형식이든 장르는 무슨 상관이랴. 하지만 소설이란 형식에 갇히지 않고, 좀 더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쓰인 그의 이번 이야기 산문집은 역시나 꽤 재미났다. 이야기의 흥미 차원에서도 그렇고(어디까지가 픽션이고 어디까지가 논픽션인지 궁금하다.), 글의 통찰과 표현 차원에서도 그렇고 [보통의 존재] 시절의 그를 다시 만난 것 같아 반가웠다. 가령 이런 글이 그렇다.


이석원 이야기 산문집, [언제 들어도 좋은 말] 中


그리고, 인생을 사는 마음가짐에 대한 충고까지. 그처럼 똑같이,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혼란스럽고 어렵기만 한 인생이라는 숲에서 방황하며 길을 헤매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런 글이란 한 밤중에 만난 불빛처럼 반갑기  그지없고, 힘들 때 어깨 두드려주는 친구의 손길처럼 위로가 된다.


이석원 이야기 산문집, [언제 들어도 좋은 말] 中


책 표지 뒷면에는 소개 되어 있는 이 책에 대한 한 마디는 참으로 이 책을, 이석원의 글을, 이석원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솔직한 그의 글을 통해 우리는 솔직하게 나를 들여다보게 되기도 하고 모두들 그렇구나 하며 위로받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움을 놓지 않는 그로부터 인생에 대한 여러가지 영감과 통찰을 얻는다.


책 뒷면 소개 글


그렇다. 그는 그때처럼 당황스러울 정도의 솔직함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내면을 가감 없이 보여주며 또 우리를 부끄럽게 만드는, 그리고 숨어 있던 나를 자각하게 만드는 글을 들고 다시 찾아왔다. 이야기가 있어 읽는 재미도 어마어마 하니, 누구든 읽어 보면 후회하지 않으리라~




마지막으로, 노벨 문학상을 줘야 한다고 나 혼자 외쳐댔던 5집 [가장 보통의 존재] 중, '가장 보통의 존재'를 가사와 함께 감상해 보자. 이 노래를 미리 들으며 그의 목소리와 그가 쓴 멜로디, 가사를 음미해 보면, 이 책을 읽는 재미가 배가된다는 건 보너스~



당신을 애처로이 떠나보내고

내가 온 별에선 연락이 온지 너무 오래되었지

아무도 찾지 않고 어떤 일도 생기지 않을 것을 바라며

살아온 내가 어느 날 속삭였지 나도 모르게


이런 이런 큰일이다 너를 마음에 둔 게

당신을 애처로이 떠나보내고

그대의 별에선 연락이 온지 너무 오래되었지


너는 내가 흘린 만큼의 눈물

나는 니가 웃은 만큼의 웃음

무슨 서운하긴, 다 길 따라 가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먼저 손 내밀어 주길 나는 바랬지


나에겐 넌 너무나 먼 길

너에게 난 스며든 빛

이곳에서 우린 연락도 없는 곳을  바라보았지


이런 이런 큰일이다 너를 마음에 둔 게

평범한 신분으로 여기 보내져

보통의 존재로 살아온 지도 이젠 오래되었지


그동안 길 따라다니며 만난 많은 사람들

다가와 내게 손 내밀어 주었지 나를 모른 채

나에게 넌 허무한 별빛

너에게 난 잊혀진 길

이곳에서 우린 변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었지


이런 이런 큰일이다 너를 마음에 둔 게

이런 이런 큰일이다 나를 너에게 준 게


나에게 넌 너무나 먼 길

너에게 난 스며든 빛

언제였나 너는 영원히 꿈속으로 떠나버렸지


나는 보통의 존재 어디에나 흔하지

당신의 기억 속에 남겨질 수 없었지

가장 보통의 존재 별로 쓸모는 없지

나를 부르는 소리 들려오지 않았지



※ 가사를 다시 한번 찬찬히 읽고 나니, 이번 이야기 산문집의 이야기는... 어쩌면 이 노래의 가사를 모티브로 한  픽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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