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마 요시토키 & 야마다 나오코, [목소리의 형태]
올해 개봉했었던 일본 애니메이션 [목소리의 형태]. 오이마 요시토키의 원작을 극장용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이 영화에 대한 다른 어떤 설명보다는, '올해 최고의 영화상'을 주는데 주저가 없을만한 명작이라 해두고 싶다. IPTV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영화라길래 별생각 없이 열어 보았다가,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는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이런 걸 무료로 봐도 되는 걸까.'
우리가 사는 지금의 세상, 무엇이 가장 힘들까. 힘든 것 투성이라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지만, 그중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어려울 일은 '관계'가 아닐까 싶다. 이 영화는 바로 그 관계, 그것도 지금 이 시대에 사라져 가는 '서로 붙잡아 주는' 관계에 대해 다룬다.
친구가 된다는 것, 곁에 있는 사람과 마음을 나눈다는 것, 누군가에게 마음을 연다는 것, 그런 사소하지만 위대한 일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은 지금의 이 한국사회, 아니 인류가 맞닦드린 황량한 현대사회에서는 '말'은 늘어만 가지만 '소통'은 오히려 줄어든다. 이 영화는 그런 우리들의 몰락한 자화상을 충실히 보여주는데 전반부를 모두 할해한다.
인간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이지만, 한편으로는 한없이 연약한 마음을 가진 존재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연약한 마음에 깊이 새겨진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의 마음에 들어가려면 상처란 어쩔 수 없는 거쳐야 하는 하나의 시험과도 같다. 날이 선 칼은 자신을 깎아내는 과정이 필요하고, 아름다운 문신은 피부를 태우는 고통을 거쳐야 한다. 서로 이해할 수 없을 각자의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 우리는, 간단한 대화일 뿐일지라도 언어가 내는 가벼운 상처에서부터, 숨겨도 드러나는 이기적인 마음이 주는 깊은 상처까지, 무엇보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가하는 비난의 아픈 상처까지, 우리는 각자의 마음속에 갇혀 각자의 상처 속에서 살아간다.
그렇지만 인간이란 관계없이 살아갈 수 없고, 외로움은 그 자체로 또한 상처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찾고 만나고 대화하지만, 거기엔 언어와 이기심, 외로움과 두려움 따위의 필터가 끼이게 되고, 그러면 대화와 관계는 온통 상처로 얼룩지고 만다. 결국 가해자이건 피해자이건 상관없이 상처입는 피해자가 된다. 모두가 지는 게임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이 되어버린 오늘날의 관계에선, 대화는 고사하고 친구가 되는 것조차 어렵다. 아니 불가능에 가까워져 버린 것이다. 결국 상처때문에 우리는 차라리 혼자를 선택한다. 하지만 그런 걸 선택이라 할 수 있을까?
이 영화는 인간의 연약한 마음과 관계에서 오는 상처, 자기만의 마음에 갇혀버린 아이들의 고립된 삶을 건조하게 보여준다. 그 고립과 상처의 정체를 직시하지 못한 아이들은 자기도 모를 분노와 두려움, 외로움을 한 웅큼씩 쥐어진 채 무언의 비명을 지르며 살아간다. 아이들은, 아니 우리들은 그 비명을 감추기 위해, '말'을 쏟아낸다. 당연히 그렇게 쏟아낸 말은 상대에게 전달될 리 없다. 마음까지는 고사하고 귀에 가서도 울리지 못한채 허공에서 부서진다.
영화 속 인물 중에는 그 차가운 고립을 벗어나 말을 걸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유일한 사람이 등장한다. 그 인물은, 아이러니하게도 귀가 들리지 않는 한 소녀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녀의 고립과 그녀를 고립시킨, 스스로 고립된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녀는 듣지 못할뿐더러 말 또한 이상하게 한다. 듣지 못했으니 말하는 법도 배우지 못한 것이다. 그렇기에 소통에 가장 그리고 언제나 목마르다. 하지만 말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주변 친구들 또한 소통에 서투르긴 마찬가지다. 아니, 그들은 소통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 고립된 채로 있다. 그리고 그런 고립이 주는 아픔을 분노로 드러낸다. 분노는 상처를 낳고 상처는 다시 더 큰 상처를 낳고 분노는 누적된다. 그리고 부풀어만 가는 그 악순환의 고리는 어느 날, 소리없이 터지고 만다. 그리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는 것이다. 나와 너 사이에 놓인 그 강을.
오늘날, 사람들은 상처 입지 않기 위해 더 이상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리고 닫힌 마음 안에서 스스로 고립과 소외를 자처하며, 그 아픔을 날 선 자존심과 공격적 혐오로 해소하려 든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역시 상처뿐이다. 고립된 인간들, 자아 안에 갇힌 마음들, 상처받지 않기 위한 안간힘이 낳은 또 다른 상처들. 결국,
상처의 가해자는 자기 자신이 된다.
우리는 어쩌다 사랑은커녕 친구조차도 되기 힘든 이런 시대를 살게 되었을까? 결국은 피하고 도망치고 내 안에 숨는 마음의 숨바꼭질을 기나긴 시간 동안 겪고 나서야, 그제야 나에게 돌아와 상대를 마주 대하고 상대의 마음에 문을 두드리고, 비로소 본래의 나를 다시 만나고, 나 자신과 그리고 너와 화해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그 기나긴 길이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럽고 아픈 과정인가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걸어야 함을, 이 영화는 힘겹게, 처절하게, 안간힘을 다해 말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말을 통해, 수화를 통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우리는 오늘날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친구가 되어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