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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길

무정부주의자 박열과 후미코의 이야기, [박열]

by 빨간우산

자기의 길을 간다는 건 온통 싸움이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자기 자신을 대신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길은 험난하고 불안하고 가시덤불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쉽사리 헤쳐나가기 어렵다. 그럴 때 우리는 이미 나 있는 길을 찾게 된다. 누군가 닦아놓은 길. 그 길은 안전하고 편하다. 다만 내 길이 아닐 뿐.


국가나, 민족, 종교는 그러한 안전하고 편한 길이 되어 준다. 나 혼자가 아닌, 다 같이 닦아 가는 길이므로. 내 편이 있어 든든하고 덜 불안하지만 나만의 길은 아니므로 때론 원치 않아도 이를 감수해야 할 때도 있다. 대신 대의라는 명분과 공동체라는 가치가 그 길을 가야 할 이유가 되어 준다. 역사의 위대한 인물 중에는 그런 명분과 가치를 쫓는 사람들이 많지만, 때론 오로지 자신만의 자유 의지를 길의 이유로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온전히 자신만의 길이 된다. 그리고 닦여져 있지 않는 길이므로 한 발짝 옮길 때조차 스스로 길을 만들어야 하는 고난한 여정이다. 아무도 같이 동행해 주지 않고 아무도 방향을 알려주지 않는다. 한 걸음 뗄 때마다 매 발자국을 어디에 디딜지 스스로 선택하고 그렇게 걸은 길의 도착지가 어디든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자기의 길은 간다는 건 그런 것이다. 고독하지만 내 것인.


자신의 길을 간다는 건, 길을 만드는 일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과 억압에 맞서 민족의 자주권을 찾고자 했던 독립운동가들이 있었다. 자신의 인생을 걸고 목숨을 담보로 해야 했기에 그 어떤 길보다 위험하고 험했겠지만 주저 없이 걸어간 위대한 사람들이다. 당장의 손에 쥐고 있는 돈 몇 푼에 울고 웃는 우리들이 보기에는 상상하기 조차 어려운 선택이었으리라. 하지만 그 위대한 길에도 여러 갈래가 있었으니, 자유주의, 민족주의, 공산주의 등등의 사상 갈래들이다. 일제강점기는 우리 민족에게 우울하고 불운한 시절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서양의 온갖 사상과 문명이 한꺼번에 물밀듯이 밀려든 시절이기도 했다. 그 당시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은 '평등'이라는 전에 없던 가치를 담고 있던 서구 문명에 매료되었을 것이고, 그 평등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들에 골몰했을 것이다. 갖가지 해방의 사상들이 있었고 지식인들은 그중에 어떤 한 길을 선택해 걸어갔다. 일제로부터의 독립은 그들에게 공통의 당연한 과제였기에 독립투쟁에 나섰겠지만, 그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세상은 달랐다. 그래도 어쨌거나 그 사상들은 견디기 어려웠을 그 힘겨움들을 버티고 이겨내게 해 준 신념의 밑바탕이 되었 주었다. 그런데, 그 사상의 갈래 중에 우리가 잘 모르는 조금은 유별난 길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아나키스트, 즉 '무정부주의'다.


아나키스트의 상징이 되는 깃발


무정부주의란 여러 가지 학술적 관점으로 정의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무정부주의란 어떤 집단, 권력, 사상에도 기대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는 자유 의지다. 그리고 영화 [박열]은 그렇게 자신만의 길을 걸었던 일제 치하의 무정부주의자들의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국가나 민족은 큰 의미가 없다. 그들은 대한제국을 위해, 또는 한민족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체의 권력을 상대로 싸우는 자들이며, 모든 권력으로부터의 해방을 지향한다. 박열이 천황을 테러의 대상으로 삼았던던 이유는, 그들이 일본인의 대표이기 때문이 아니라 권력의 최고 위치에 있는 상징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본과 싸웠다기보다 권력과 싸웠다. 영화 속에 박열과 그의 동지들이 일본 권력층과 일본의 민중들을 구분해서 말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들에게 일본 민중은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권력의 지배하에 놓여있는 동일한 피해자다. 때문에 박열의 애인이었던 가네코 후미코가 일본인인가 아닌가는 그들에 하등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점을 영화는 잘 그려내고 있다. 심지어 그들의 사랑마저도 그러하다. 그들에겐 사랑 또한 각자의 길이다. 서로에게 사랑을 강요하지 않고 서로의 자유를 존중하되, 오로지 자신의 선택이라는 의미에서 사랑을 한다. 그리고 서로에게 바라는 최소한의 기대는 '약속'으로 남겨둘 뿐, 역시 강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서로에 대한 존중이 오히려 그들을 서로 어주는 강한 애정의 연료가 되어준다. 사랑에서 얼마나 '존중'이라는 태도가 중요한지, 그리고 얼마나 서로를 사랑하게 하는 힘이 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랑의 본질은 곧 '존중'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박열과 후미코 (좌:실제, 우:영화)


영화 [박열]은 독립운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사랑과 존중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사랑과 존중이라는 가치가 얼마나 인간에게 중요하고 숭고한 가치인지, 그것을 쫓는 삶이 고될지언정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박열과 후미코라는 한 연인의 삶을 통해 충실하게 보여준다. 이는 역사를 다룸에 있어 중요한 관점이 된다. 이준익 감독은 자칫하면 스토리와 캐릭터, 드라마의 감동에 치중되어 숨겨지고 말지도 모를, 시대의 가치와 인간의 신념의 위대함을 이번에도 잘 들춰내 조명해 준다. [사도]에서도 그러했고, [동주]에서도 그러했듯. 역사란 시대의 정신이 한 인물을 통해 발현되어 나타나는 서사가 아니던가. 이 영화는 독립운동가 박열에 관한 이야기지만 독립운동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한 인간의 위대한 자유의지에 관한 서사이며, 그것이 영화 속 인물과 그들의 투쟁이 그토록 이나 빛을 발하며, 영화 또한 빛을 발하는 이유일 것이다.


영화 속, 박열과 후미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하늘을 보고 짖는
달을 보고 짖는
보잘것없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욕을 할 때
나도 그의 다리에다
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 박열의 詩,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일제강점기 무정부주의자에 관한 영화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5년여 전, [아나키스트]라는 영화가 있었다. 흥행에는 참패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나에게는 아주 깊이 각인되어 있는 영화다. 혼자 찾은 영화관 나를 포함해 5명 남짓밖에 되지 않았었던 기억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화의 막바지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던 기억 때문이기도 하다. 권력과 정치로부터 자유롭고자 했던 순수하고 용감한 몇몇의 청년들이, 결국에는 권력과 정치에 의해 이용당하고 버려지는 가슴 아픈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든 걸 알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위해 불길로 뛰어드는 인간의 숭고함에 감동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간이란 존재는 얼마나 추악하면서도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가.


영화 [아나키스트], 장동건, 정준호, 이범수, 김상중, 김인권 등 출연진이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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