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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삶의 주인공입니까?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

by 빨간우산

삶이라는 무대에 주인공으로 살지 못한다는 건 슬픈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슬픈 일은 그 '슬픔'을 스스로에게 감추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선택이란 이왕이면 엑스트라가 아닌 조연으로라도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다.


자신이 세운 무대에 타인을 올려 세워 그에게 하이라이트를 비추고 그를 위해 조연의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면, 그 하이라이트의 조명을 나눠 받는 순간들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더 빛나는 삶을 위해서는 더 많은 조명을 받는 조연이 되기 위해, 남보다 더 강한 조명을 받는 주연을 찾아 나선다. 그 주연이란 단지 어떤 사람만은 아니다. 그건 부모일 수도, 종교나 신일 수도, 회사나 조직일 수도, 돈일 수도, 명예일 수도 있다. 어쨌든 내가 아닌 그 무엇이라면 어떤 것도 주연이 될 수 있다.(신기한 일이다. 왜 유독 나만 주인공이 될 수 없단 말인가?) 그리곤 그 조연의 삶이 얼마나 빛나 왔는지, 얼마나 빛나고 있는지, 얼마나 빛날 수 있는지, 스스로를 납득시키는데 온갖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런 심리를 우리는 '자기합리화'라 한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이 소설에서 조연의 치밀한 자기합리화의 안간힘을 조명을 비춰 선명하게 보여준다. 가끔은 조명이 너무 선명해서 당황스럽고 너무 화려해서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절박하고 진지하다. 마치 자신의 모든 인생을 건 도박처럼. 리고 조명이 시종일관 계속 비춰지다 보면 어느새 그것이 자기합리화인지도 잊게 된다. 이내 보는 사람마져 같이 진지해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곤 결국, 합리화된 자신이 자신 자체가 되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연에 충실한 역할이라는 두터운 외투를 둘러 입은 그의 '본래' 는 그렇게 가려지다 못해 사라진다. 그의 인생은 조연의 삶에 너무나 빠져버린 나머지 가장 중요한 사실을 잊는다. 그러니까 삶이란 본래 '자신의' 무대였으며 애초에 자신이 '주인공'이었다는 사실 말이다.


2017 노벨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


이 소설은 우리에게 삶에 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당 삶의 주인공입니까?" 그리고 그 질문에 대답하는 일이란, 결코 간단치가 않다. 이 소설의 불편함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달링턴 나리는 나쁜 분이 아니셨어요. 전혀 그런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에게는 생을 마감하면서 당신께서 실수했다고 말씀하실 수 있는 특권이라도 있었지요. 나리는 용기 있는 분이셨어요. 인생에서 어떤 길을 택하셨고 그것이 잘못된 길로 판명되긴 했지만 최소한 그 길을 택했노라는 말씀은 하실 수 있습니다. 나로 말하자면 그런 말조차 할 수가 없어요. 알겠습니까? 나는 '믿었어요.' 나리의 지혜를, 긴 세월 그분을 모셔 오면서 내가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지요. 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말조차 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정녕 무슨 품위가 있단 말인가 하고 나는 자문하지 않을 수 없어요.


- 가즈오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


영화 [남아 있는 나날]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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