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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심연으로의 여행

헤르만 헤세, [황야의 이리]

by 빨간우산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는가? 혹시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온 나를 자신의 전부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닌가?


누구나 알다시피 인생은 단 한 번이다. 그리고 그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우리는 '나'라는 역할을 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나는 얼마나 나 자신에게 솔직한가? 혹시 어떤 무대를 꾸미기 위해 나 자신을 어떤 인물로 연기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게 오랫동안 어떤 인물로 연기해 온 탓에, 그 인물을 나 자신으로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혹은 그 연기된 인물이 나 자신의 발현을 방해하고 있는 건 아닌가? 나는 나를 연기하느라 나를 억압하고 있지는 않은가?


인생이라는 무대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연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이 있고, 관객들이 기대하는 상황과 이야기에 부흥해야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시선에 부흥하고자 좀 더 멋진 연기를 수행하려 안간힘을 다해 노력하곤 한다. 어쩌다 쏟아질지 모를 박수갈채를 염원하며 말이다. 하지만, 그 시선이란 건 나로 하여금 연기를 강제하기에 나를 구속한다. 그리고 구속된 나는, 연기하는 나는, 점점 더 나를 숨기려 든다. 하지만 숨겨진 채 고통받는 나는 그대로 사라져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나이기 때문이다.


035785ab3a7d2be.jpg 인생이라는 무대, 우리는 누구로 살아갈 것인가?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연기를 하며 살아가는 연기자의 숙명을 거역할 순 없지만, 가끔씩 그 연기를 뚫고 불쑥불쑥 내가 뛰쳐나오려 하거나, 어떠한 시선도 주어지지 않은 고요의 한가운데에서 내 안의 낯선 나를 만나는 순간을 맞이할 때도 있다. 혹은 여행을 떠나 길을 헤매다 문득 어떤 감정을 느끼는 나를 발견하거나, 다른 누군가 혹은 외부의 어떤 도움을 통해 구속을 풀고 해방된 나를 발산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어찌 되었든 무대 위의 나는 무대를 떠났을 때 내가 알지 못했던 나를 만나곤 한다. 그것은 기이하고 신비로운 경험이면서 한편으론 낯설고 두려운 경험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린 그 낯선 나에게 화들짝 놀라 다시 무대 위로 도망쳐 오르기도 한다. 구속된 내가 어찌 보면 더 익숙하고 편하기 때문이다. 조명과 시선이 있는 무대 위가 더 화려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서 우린 외롭지 않다. 하지만 우린 다시 나를 연기해야만 하는 숙명과 마주해야만 한다.


지금의 나는 나의 전부인가? 나는 얼마나 나의 전부를 알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얼마나 나의 전부를 다 살아내고 있는가? 인간과 세계의 심연을 끝까지 들여다보고 싶어 했던 헤르만 헤세는 이 작품에서 인생이라는 무대로부터의 과격한 탈출을 시도한다. 그리고 나를 발견하고 나를 경험하고 나를 발산하는, 그 모든 전부의 나를 만나고자 한다. 헤세의 작품 중 가장 대담하다고 평가되는 문제작이지만, 그 때문에 나라는 존재의 심연으로의 여행은 그만큼 넓고 깊다. 그리고 우리는 헤세를 통해, 이 소설을 통해 내가 몰랐던 나의 심연을 탐험해 보는 계기를 만날 수도 있다. 여행을 떠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오로지 나에게 달린 몫이지만 말이다. 그 몫을 감당해야 할 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건, 언제나 인간을 지배하는 감정은 자유나 사랑이 아닌 두려움이었다는 사실이다.




당신은 이제 이 다른 세계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당신이 찾는 것은 당신 자신의 정신 세계라는 것도 아십니다. 당신이 동경하는 저 다른 현실은 오직 당신 자신의 내면에만 있습니다. 나는 당신 속에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당신에게 줄 수 없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열어드릴 수 있는 건 오로지 당신 자신의 영혼의 화랑뿐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드릴 수 있는 건 기회와 자극의 열쇠일 뿐, 그 밖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당신 자신의 세계를 볼 수 있도록 도와드릴 뿐입니다.


- 헤르만 헤세, [황야의 이리]



IMG_20180830_133011_475.jpg
wFrogDoYWj8 (1).jpg 헤르만 헤세 (1877~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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