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평화란 존재하지 않아. 물론 평화가 있긴 하지만, 우리의 마음속에 늘 깃들여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그런 평화란 존재하지 않는 법일세.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평화는 잠시도 마음을 늦추지 않고 끊임없이 싸워서 얻어지는 평화, 나날이 새롭게 쟁취해야만 하는 그런 평화뿐일세. ... 자네는 그저 내가 자네보다 기분에 덜 좌우된다는 것만 보고서 평화롭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하지만 그렇게 보이는 모습도 실은 싸움과 희생을 통해 얻어지는 걸세. 인생을 제대로 사는 사람이라면 다 마찬가지겠지.
- 헤르만 헤세,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헤르만 헤세를 참 좋아하고 그의 작품을 탐독하는 걸, 생의 즐거움의 하나로 삼고 있다. 그의 작품을 읽고 나면 삶의 진실을 엿본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하는데, 내면에 고여있던 물에 돌 하나가 던져저 잔잔했던 수면 위에 파장이 일면서 출렁거리는 듯한 느낌, 혼란스럽지만 그 혼란스러움이 기분나쁘지 않고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줄 것 같은 설레임이 되어 주는, 그런 작가다. 그래서 나 자신이 정체되어 있다거나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 가장 먼저 집어드는 작가이기도 하다. 아니, 그렇지 않아도 책장의 꽂혀있는 그의 책들은 언제나 탐이 난다. 물론, 막상 펼치면 책장을 넘기기가 만만치 않아 힘들어하곤 하지만 말이다.
이번에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집어들었다. 그의 책들 가운데서도, 특히나 읽어보고 싶었던 작품이다. 제목만으로도 벌써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한때 [지(知)와 사랑]으로 번역된 적이 있었고, 그 번안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이성과 감성, 지식과 감각, 앎과 행위의 문제는 학문적으로나, 생활적으로나 언제나 우리들의 영원한 화두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도 어느 편에 손을 들어주고, 어느 편의 우위를 인정해야 할지 헷갈리곤 하는 주제인데, 헤르만 헤세가 이 화두를 전면에 내걸고 쓴 작품이라 하니, 호기심과 기대가 컸다. 그 기대가 너무 커었던 탓에 오히려 첫장을 선뜻 펼쳐보지 못했던 작품이었는데, 이번에 무심코 들어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헤르만 헤세의 대표작은 [데미안]으로 많이 알려져 있고, 나 또한 [데미안]을 무척 좋아하지만, 이 작품을 읽고 나서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그의 대표작으로 꼽고 싶어진다. 헤세 자신도 '영혼의 자서전'으로 이 책을 일컬은 바 있다고 한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여운이 가시지 않을 정도로 영혼에 깊이 새겨지는 작품이다. 좋은 소설이란, 다 읽고 나서 그저 좋은 기분만을 남기지 않는다. 읽는 내내 불편하기도 하고, 반발심도 불러일으키며, 명쾌하지 않은 결말로 읽는 이에게 안정감보다는 혼란스러움을 안겨준다. 그럼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독자로 하여금 삶에 대해 좀더 치열하게 생각하도록 만든다고 할까. 헤르만 헤세는 그런 작가고, 그 자신이 그렇게 살아왔으며, 이 작품 [나르치사와 골드문트]는 그의 그런 치열한 삶의 흔적과 영혼의 방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어쩌면 [데미안]의 성인 버전이라고 해도 좋을지도.
책의 감상을 말하면서 줄거리를 요약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보단 이 소설에 등장하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누구이며, 왜 그 두 사람이 주인공인지를 살펴보는게 소설을 이해하는데 조금 더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인간 영혼의 두 가지 면을 담고 있는 상징적 인물이다. 나르치스는 이성과 지식, 영원한 진리, 질서와 안정의 빛을 담고 있다면, 골드문트는 감정과 감각, 순간의 쾌락, 변화와 투쟁의 그림자를 담고 있다. 빛과 그림자로 묘사했다고 해서 나르치스가 골드문트보다 더 우위에 있는 건 아니다. 그저 그 둘은 다를 뿐이다. 오히려 이 작품에선 골드문트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그렇다고 해서 헤르만 헤세가 골드문트가 상징하는 감각과 쾌락만을 긍정한다고 보는 건 위험한 결론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균형이리라. 이 쟁점이 소설의 주요 화두는 아닌 것 같으니, 일단 패스해 보자) 어쨌든 그 두 인물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영혼의 단면이면서, 서로 반대되지만 서로 보완되기도 하는, 그래서 인간을 지탱시키는 영혼의 두 가지 힘이기도 하다. 다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혹은 어느 한쪽에 더 큰 잠재적 능력을 가진 인간의 유형이 있을 수는 있을 것이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처럼 말이다. 나르치스는 이성으로 영원한 진리를 추구하는 인물이고 학문적 능력 또한 출중하다. 다만 그런 성향과 능력으로 스스로에 대한 오만함에 갇혀 있는 인물이다. 이름이 나르치스라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그리스 신화의 나르시시스트가 생각난다) 그리고 골드문트는 감정과 감각에 몰두하여 순간의 쾌락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인물이고 예술적인 영감과 재능이 출중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 역시 그런 성향때문에 일생을 방황과 허무에 시달린다. (골드문트는 황금 입술이라는 뜻을 가진다)
이제는 다들 알다시피 인생에 답이란 없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모두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인생을 보여주기도 하고, 우리 자신이 이미 나르치스이면서 골드문트의 성향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 다만, 이들처럼 우리 또한 어떤 능력과 어떤 노력을 어느 곳에 기울여 무엇을 쟁취해야 할지 매번 끊임없이 고민하고 싸우며 방황한다. 그리고 얻어지는 것에 기뻐하기도 하지만, 무언가 얻었다는 그 기쁨은 금새 사라져버리고 마는 안타까움에 공허함을 느끼기도 한다. 우리네 인생은 그 자체로 딜레마다. 불완전과 결핍으로 가득차 있다. 하지만 인간은 또한 그렇기 때문에 싸우고, 그렇기 때문에 성장하고, 그래서 아름답다. 자기 나름대로의 완성된 인생을 위해 세상에 맞서 싸우고 나아가고 이뤄내는 인간의 모습을, 이렇게 깊게 의미있게 또한 아름답게 그려낸 소설이 또 있을까 싶다. 그것도 빛과 그림자, 이성과 감성, 앎과 쾌락의 두 가지 측면을 모두 담아내면서...
책을 읽고 나서, 그에 대한 존경심과 함께 나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인생의 지점을 살펴보고 지금까지 살았던 삶의 의미를 되묻고, 그리고 가장 부담스러운 질문,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묻는다. 여전히 혼란스럽고 알 수 없으며 안개는 더욱 짙어만 간다. 하지만, 그로 인해 우리는 또한 깨닫게 된다. 삶의 만족이란 것에 다다르려면 치열해져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얻은 만족은 순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워야 한다는 것을. 인생은 허무하지만 또한 의미있고, 의미있지만 또한 영원하지 않으며, 영원하지 않되 아름답다는 것을. 그런 인생을 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끊임없이 나를 탐구하고 치열하게 나로서 살며 아름다운 나에 도달하는 것 뿐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