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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ho Lee Dec 10. 2019

Day32 우리 땅을 돌려다오, 테쿰셰 vs. 해리슨

인디애나주 티피카누 전투지(Tippecanoe Battlefield)

오늘은 인디애나주에서 시카고로 향한다. 사흘 전 뉴욕을 떠나 오하이오주에 들어선 이후부터 창 밖의 경치는 큰 변함이 없다. 끝없이 이어지는 옥수수밭, 가끔씩 나타나는 집들과 나무숲. 지도를 펼쳐놓고 보니 여정상 산지(mountain) 풍경을 보려면 사우스다코타주까지 가야 한다. 1천 마일 이상의 거리이다.

자동차 여행에는 산이 보이는 경치가 가장 좋고, 옥수수밭 평원보다는 애리조나나 뉴멕시코의 황야가 더 나은 것 같다. 애리조나에서는 선인장이라도 간간이 보이고, 뉴멕시코에서는 메사(Mesa – 꼭대기 부분이 평평하게 깎인 산지) 경치라도 있으니 말이다. 인디애나주 차량 번호판에는 미국 성조기 무늬가 자주 보인다. 또한 뒤쪽 창을 성조기로 장식한 차들도 종종 보인다. 자신들의 주를 Heart Land라고 하는데, 미국의 핵심부라는 뜻일까? 이제까지 지나온 지역 중 가장 열렬한 애국심을 보여주는 지방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시카고는 미국에서 뉴욕, LA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도시라고 하는데, 우리 모두 처음 방문이라 들떠 있다. 사실 오래 전에 업무상 출장을 온 적이 있었지만, 당시 시카고에 머물렀던 시간이 하루도 채 안되고 호텔과 사무실에서만 지내서 미시간 호수조차 볼 겨를이 없었다.


시카고로 들어가는 길에 시카고대학(University of Chicago) 안내판이 보여 들러보기로 했다. 그런데 학교 캠퍼스가 커다란 공원 옆에 붙어 있어서 공원인지 학교인지 구분이 쉽지 않다.  


일단, 일반적으로 대학교에서 외부인에 대한 안내가 제공되는 대학 입학처(Admissions Office)를 찾아갔다. 그런데 마침 입학에 관심 있는 학생과 부모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캠퍼스투어(campus tour)가 출발하고 있었다.

아내가 예전 우리 아이들과 캠퍼스투어 하던 추억이 떠올랐는지 한번 따라가 보자 한다. 계획에 없던 학교 가이드투어를 하게 된 셈이다. 진지하게 투어에 참여하고 있는 학생들과 그 부모들을 보면서 그때의 우리 모습이 그려졌다. 시카고대학은 도서관 내부가 무척 아름답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캠퍼스투어 프로그램에는 내부 관람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도서관 내부를 보고 싶은 기대감이 이 투어를 따라나선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했는데.


대학 졸업반에 올라가는 딸아이가 예비 대학생들 사이에 끼어있는 게 어색한지 투덜대서(심지어 딸아이는 본인 학교이름이 큼지막하게 박힌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우리는 중간에 빠져 나왔다. 짧지만 유쾌한 경험이었다.


근처의 스타벅스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건물이 경제학과였다. 시카고 대학은 소위 시카고 학파라는 단어를 탄생시킨 신고전주의 경제이론(시장의 작동원리에 의한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중시하여 정부의 개입보다는 민간부문의 역할을 강조)의 산실이었고,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나 영국의 대처 수상의 경제정책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물 1층에는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과 조지 스티글러(George Stigler) 교수 등 시카고 경제학의 거두들과 시카고 경제학의 업적을 소개하는 기념관이 마련되어 있었다.


비가 흩뿌리기 시작한 시카고 시내로 들어가 미시간 호수 변에 자리잡은 네이비 야드(Navy Yard)라는 곳을 들러봤는데, 아직은 뭔가 정돈이 충분치 않은 느낌이다. 다만 멀찌감치서 시카고 시내 스카이라인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는 되었다.

상점 중의 한 곳은 시카고를 근거지로 하는 프로스포츠 팀들의 기념품을 팔고 있었는데, 이 중에 인디언의 모습이 눈에 띈다.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인디언 관련 그림에는 무조건 눈이 간다. 확인해 보니 시카고의 프로아이스하키리그(NHL) 팀 이름이 블랙호크스 (Blackhawks)였다. ‘검은 매’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일리노이주에서 소크족(Sauk)을 이끌던 추장의 이름이기도 하다. 블랙호크 추장에 대해서는 이틀 후 관련 장소를 방문하면서 더 다루게 될 것이다.

본격적인 시내 구경은 내일로 미루고, 숙소 근처에서 한식당을 검색했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대박! 식당 이름이 ‘대박BBQ’였고 실제 느낌도 ‘대박’이었다. 차이나타운의 중국음식점들 사이에 위치해 있어서 처음엔 그 분위기나 맛이 의심스러웠는데, 홍대 앞의 맛난 삼겹살집에서 식사를 하는 느낌이었다. 월요일 저녁임에도 현지인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다.

오늘은 어제 방문했던 인디애나주의 티피카누 전투지(Tippecanoe Battlefield)에 대해  못다한 이야기를 이어서 하도록 한다. 폴른팀버즈 전투(Fallen Timbers Battle)에서 인디언 연합군이 패하면서 그린빌 조약(Greenville Treaty)이 체결되고, 인디언들은 오하이오 지역 대부분의 영토를 미국에 빼앗긴다. 미국은 이후로도 북서지역의 인디언들에게 지속적으로 영토를 요구했으며, 강압적이거나 기만적인 여러 조약을 통해 미시간, 인디애나, 일리노이, 위스콘신 지역의 땅들을 차지해 간다.


당시 많은 인디언들은 이러한 조약들의 유효성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의 영토를 계속 지키고자 했는데, 이들 중에 쇼니(Shawnee)족의 테쿰셰(Tecumseh)와 텐스콰타와(Tenskwatawa) 형제가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일찍이 아버지를 백인들의 손에 잃었고, 이후 텐스콰타와는 실의에 빠져 술에 의지해 살아가던 중, 꿈에서 인디언의 위대한 정령의 계시를 받게 된다. 그리고 그 가르침을 주변 인디언들에게 설파하면서 영적 지도자로서 위상이 높아지게 되었다. 그의 가르침은 인디언들이 백인들의 문물을 배격하고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야만 다시 옛날의 영광을 찾고 백인들을 몰아낼 수 있게 된다는 것이었다. 특히 당시 백인사회로부터 유입된 알코올로 인한 문제를 심각하게 지적했다.

티피카누 박물관에 전시된 테쿰셰와 텐스콰타와 초싱화

그의 형인 테쿰셰는 어린 시절부터 전투에 참여하여 뛰어난 공을 세웠을 뿐 아니라, 뛰어난 언변과 구체적 비전의 제시로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는데, 어린 시절 사귄 백인 친구를 통해 미국과 세계사를 공부한 것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당시 그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되는데, 하나는, 인디언 부족원 중 어느 누구도 인디언의 땅을 팔 권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땅이라고 하는 것은 인디언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이지 어느 누구의 배타적인 소유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그린빌 조약에 서명한 인디언 추장들을 비판하였다.


그의 두 번째 주장은, 인디언들이 자신들의 부족의 입장이 아닌 전체 인디언의 입장을 우선시하여 함께 단결하고 연합국가를 건설해서 백인들과 맞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인디언 부족들간의 연합은 과거에도 추진된 적이 있었지만, 범 인디언 부족 연대를 통한 연합국가 건설의 꿈을 설파하고 구체적으로 추진한 것은 테쿰셰가 처음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쇼니족 뿐 아니라 북서 지역의 다른 부족 인디언들도 이들 형제를 따르기 시작했고 남부지역의 인디언들까지도 가르침을 들으러 찾아왔다. 이 형제는 자신들을 따르는 인디언들과 함께 인디애나주 티피카누강과 와바시(Wabash)강이 합류하는 지점 인근에 마을을 건설하는데, 이 마을은 ‘선지자의 마을’이라는 뜻으로 프로펫츠타운(Prophetstown)으로 불렸다.


당시 인디애나 지역은 아직 독립적인 주로 인정을 받지 못한 준주(準州 - territory) 상태였는데, 폴른팀버즈 전투(day 31)에도 참여했던 윌리엄 해리슨(William Harrison)이 정치적 야망을 품고 인디애나 준주의 주지사로 부임한다. 그의 목표는 인디애나의 인디언 영토를 가능한 한 많이 빼앗고, 미국인들을 이주시켜서 성공적인 서부개척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해리슨은 처음에는 테쿰셰의 사상에 깊은 인상을 받고 그를 ‘천재’라고 묘사하기도 했으나, 이내 그를 미국의 서부개척에 위협이 되는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10여년 전에 벌어진 폴른팀버즈 전투에서 이 두 사람은 서로 적으로서 맞섰었는데(당시 전투에서 테쿰셰의 형이 전사한다), 이제는 협상의 상대가 되어 인디애나에서 몇 차례 만남을 가지게 된다.


끊이지 않는 백인들의 인디언 토지 약탈행위에 대해 항의를 하고자 해리슨을 찾아간 테쿰셰는, 인디언 추장뿐 아니라 어느 부족원도 인디언의 영토를 파는 행위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니 인디언 부족을 상대로 토지매수 협상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그린빌 조약 이전의 상태로 되돌릴 것을 요구했다. 어떤 때는 이들 양측이 서로 총과 칼을 겨누는 일촉즉발의 순간이 있을 정도로 상호 긴장감이 팽팽했다고 한다.


이러한 긴장감 속에서 테쿰셰는, 소위 문명화된 5개 부족(day 13)이라고 불리는 크리크(Creek), 체로키 (Cherokee), 촉토(Choctaw), 치카소 (Chickasaw)족 등을 자신이 구상하는 통합 인디언 국가건설로 끌어들이기 위해 남부지방으로 떠나게 된다. 그리고 해리슨은 이러한 테쿰셰의 행동이 추후 큰 위협이 될 것을 우려하여 그가 없는 동안 그의 근거지인 프로펫츠타운을 치기로 결심한다.


때는 1811년 11월.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할 때였다. 해리슨은 1천명의 병력을 이끌고 프로펫츠타운 티피카누 강가에 진을 친다. 테쿰셰는 남쪽으로 떠나면서,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미국과의 무력충돌을 자제하라고 추종자들에게 당부를 하고 간 상황이었지만, 동생인 텐스콰타와는 자신이 위대한 정령의 응답을 받았다며, 적들의 총알이 전사들의 몸을 피해갈 것이라고 설득하면서 미군에 대한 기습 공격을 제안한다.

해당 전투가 발생한 유적지에는 윌리엄 해리슨의 동상이 건립되어 있고, 티피카누 카운티 역사협회에서 운영하는 박물관이 운영 중이다. 박물관의 규모는 작지만, 당시 전투의 배경 및 진행 상황과 그 결과에 대한 종합적인 정보와 자료를 충실히 제공해 주고 있었다.

티피카누 전투에 대한 이야기는 내일 마저 하려 한다. 내일은 시카고 시내를 구경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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