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비가 제법 내렸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푸른 하늘이다. 33일째 여행하는 동안 날씨로 인해 일정에 차질을 빚은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운전 중 폭우를 만나 잠시 차를 세워야 하는 경우는 몇 번 있었지만 내릴 시간이 되면 기가 막히게 날씨가 개곤 했다. 신기하게도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느지막이 시카고 시내로 나가 딸아이가 찾아낸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었다. 시내를 오가는 고가철도의 시끄러운 소음에도 노천카페에서 먹는 식사는 무척이나 만족스럽다. 딸아이가 순례단에 합류한 이후, 숙소나 식당과 같은 선택은 고민없이 딸아이 몫이다. 그리고 언제나 훌륭한 선택이다. 천군만마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아내까지 나서서 ‘딸내미 없었으면 어떡할 뻔 했냐’고 얘기할 땐 생각이 좀 복잡해진다. 그동안은 많이 불편했었나?
시카고의 명소인 밀레니엄파크(Millennium Park)를 방문했다. 공원의 야외극장을 가보니 내일 저녁에 무료 콘서트가 열린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우리는 내일 아침 이곳을 떠나니 또 하루 차이로 이벤트를 놓치게 되었다. 공원의 명물이 된 빈(Bean)이라는 콩 모양의 조각품과 영상이 나오는 분수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거리를 걷다가 시카고 시내에 호수 외에 강도 흐르고 있음을 처음 알았다. 강에 접해 있는 아름답고 고색창연한 링글리빌딩(Wringley building) 옆에 ‘Trump’ 라는 글씨가 크게 쓰여있는 통유리 고층 빌딩의 모습은 서울시청 새청사의 낯설고 어색함을 연상시킨다.
강변 계단참을 잘 활용한 애플스토어에 가봤다. 편안하게 앉아서 강변 경치도 구경할 수 있고, 파워플러그가 곳곳에 비치되어 있어서 PC작업도 할 수 있다. 내가 찾던 곳이다.
여성 동지들이 매그니피슨트 마일(Magnificent Mile)이라 불리는 쇼핑거리를 순례하는 동안, 나는 오늘 블로그에 올릴 내용을 미리 작업한다. 블로그의 분량은 몇 페이지 안되지만 그 글을 위해 들어가는 산고의 시간은 꽤 되는데, 오늘 밤에는 좀 여유를 가질 수 있을 듯 하다. 한참을 일에 열중하다 생각해보니, 애플스토어에서 LG노트북과 삼성 갤럭시 폰을 꺼내놓고 계속 이러고 있어도 괜찮은지 약간 뻘쭘해진다.
쇼핑 완료 후, 천군만마의 저녁 일정 선택은 존 행콕센터(John Hancock Center) 96층에 위치한 시그너쳐 라운지였다. 이곳에서 멋진 야경을 배경으로 또 한번의 건배와 저녁식사를 한 후 시카고 일정을 마쳤다. 아내가 인디언 순례가 너무 관광모드로 변해가는 것 같다고 얘기한다. 괜찮다. 원래 계획에 넣었던 순례자들을 위한 휴식 시간이다. 나도, 동지 순례자들도, 휴식이 필요했다.
어제 마무리 못한 테쿰셰(Tecumseh) 얘기로 돌아갈 시간이다. 티피카누 전투 박물관(Tippecanoe Battlefield Museum)은 미국이 북서지역의 인디언 영토를 확보해가는 과정과 테쿰셰, 텐스콰타와(Tenskwatawa) 형제 및 윌리엄 해리슨(William Harrison)에 대해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티피카누 전투의 주요 배경 및 핵심 인물들이다.
이들 형제의 초상화가 여러 점 전시되어 있는데, 테쿰셰의 인물이 제법 번듯하다. 그는 키도 꽤 컸다고 하니 당시 외모로도 매우 출중했을 듯 싶다. 테쿰셰는 여러 인디언 부족간 단결의 필요성을 설파하면서, ‘나뭇가지 한 개는 쉽게 부러지지만 여러 개를 뭉치면 결코 부러지지 않는다’는 비유를 했다고 한다. 다른 곳에서도 들어본 적이 있는 표현인데, 그가 오리지널 창작자인지 궁금하다.
위가 텐스콰타와 아래가 테쿰셰
테쿰셰는 미국인들의 지속적인 영토 침탈에 대한 항의 차 해리슨을 만난 자리에서, ‘인디언의 영토는 위대한 정령이 인디언에게 허용한 땅으로, 그 어느 부족도 이를 팔 권리가 없으니 미국이 개별 부족들과 맺은 모든 조약과 계약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에 해리슨이 ‘정말로 모든 인디언들을 다스리는 위대한 정령이 있다면, 어째서 인디언들은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가. 일단 말부터 통일해 오라’라 고 조롱조로 대꾸하면서 서로 총과 칼을 겨누는 일촉즉발의 상황도 있었다고 한다.
테쿰셰와 해리슨의 갈등
하지만 기본적으로 테쿰셰는 무력보다는 말의 힘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고, 강한 미국에 맞서기 위한 인디언 부족간의 연대, 그리고 미국에 적대적인 다른 외세와의 동맹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또한 미국인들의 잔혹행위에 대한 보복으로 인디언 과격분자들이 미국인들에 대해 자행하는 잔혹행위를 저지하기도 했다.
테쿰셰가 남쪽지역 부족들을 동맹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자리를 비운 틈을 이용해 해리슨은 대 병력을 이끌고 프로펫츠타운(Prophetstown)으로 진군한다. 미군이 마을 인근에 진을 치자 테쿰셰 동생인 텐스콰타와는 사절단을 보내 협상 준비를 위한 시간을 가질 것을 제안하는데,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양측은 상대방을 서로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인디언측은 위대한 정령의 계시(day 32)를 전하는 텐스콰타와의 지시를 따라 다음날인 1811년 11월 7일 새벽에 미군 진지를 급습하는데, 인디언측의 진정성을 의심했던 해리슨도 부대의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박물관에서는 전광판과 같은 곳에 LED램프를 사용하여 당시 미군의 진지 배치 및 인디언들의 공격 경로를 시간 단위로 보여주며 전투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인디언들은 미군 사령관 해리슨을 죽이면 미군이 패주할 것으로 생각하고, 백마를 탄 해리슨을 주 타겟으로 삼았다고 한다. 하지만 기습 상황에 당황한 해리슨은 자신의 말이 아닌 다른 말을 탔고, 그의 부관이 해리슨의 백마를 탔다가 바로 저격 당해 사망했다는 일화도 소개해준다. 처절한 백병전으로 이어진 이 전투에서 상호간에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결국 미군은 인디언들의 기습을 격퇴해냈다.
기습에 실패한 인디언들은 프로펫츠타운에서 철수해서 북쪽으로 패퇴하고, 한 때 범 인디언부족 국가건설이란 비전의 중심역할을 했던 프로펫츠타운은 미군에 의해 불태워진다. 이 전투에서의 패배는 ‘위대한 정령의 힘으로 미군들의 총알을 피할 수 있다’며 기습공격을 부추긴 텐스콰타와의 영향력에 타격을 주었고, 그는 이후 캐나다로 피신했다가 미국 내의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돌아와서 쓸쓸하게 생을 마친다.
범 인디언부족의 연합투쟁에 남쪽부족들을 합류시키러 떠났던 테쿰셰는 자신의 어머니 출신 부족이기도 하고, 이전에 함께 전투를 치른 인연이 있었던 크리크(Creek)족을 동맹으로 끌어들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다른 부족들로부터는 중립을 통보 받는데 그치고 만다. 파괴된 프로펫츠타운을 목격한 이후, 테쿰셰는 북서지역의 인디언부족 연합군을 이끌며 지속적으로 미국의 북서지역 정착지에 대한 게릴라전을 전개하여 미국을 괴롭히는데, 이는 결국 1812년 전쟁으로 이어진다.
1812년, 미국이 영국에 선전포고를 하게 된 배경으로는 두 가지가 꼽히는데, 그 중 하나는 대서양에서 미국의 상선들이 영국해군에 의해 제어당하면서 통상의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영국이 국경지역의 요새를 통해 인디언들에게 무기와 보급품을 제공함으로써 미국의 북서부 지역 진출을 곤란하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영국에 대한 선전포고와 동시에 디트로이트 요새를 통해 오대호 북쪽 캐나다로 진격하지만, 영국군과 인디언 연합군은 이를 저지하고 도리어 미국의 디트로이트와 디어본(Dearborn) 요새(오늘날의 시카고)를 빼앗는다. 당시 북미지역에서 동원 가능한 병력의 숫자 면에서는 미국이 영국을 압도했지만, 영국은 캐나다 지역의 정착민들과 인디언 연합군의 지원으로 이를 막아낼 수 있었다. 당시 인디언 연합군을 이끌던 테쿰셰는 영국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준장(brigadier general)계급을 부여받고 활약한다.
해안지역에서는 영국군의 반격으로 워싱턴의 백악관과 의사당이 불타는 등 미국에 타격이 발생하지만, 오대호 지역에서는 테쿰셰와 찰떡 호흡으로 승리를 이끌던 브록(Brock)장군이 전사하면서 영국과 인디언 연합군이 수세에 몰리게 된다. 브록장군의 후임인 프록터(Proctor)장군은 후퇴에 바빴고, 앞장서서 미군의 진격에 맞서던 테쿰셰도 1813년 템즈전투(Battle of the Thames)에서 전사하면서, 그가 꿈꿔왔던 인디언 연합국가의 꿈도 함께 사라지고 만다.
결국 1812년 전쟁은 미국과 영국 상호간에 승패없이 종료되고, 유일한 패자는 인디언연합이 되고 말았다.
역사에 가정을 부여해서, 미국과의 국경지대에 인디언국가를 세워 완충지대로 삼고자 했던 영국의 구상과, 인디언연합 국가건설을 꿈꿔왔던 테쿰셰의 비전이 의도했던 대로 완수되었더라면 어떠했을까 생각해본다. 이는 인디언들이 자신들의 땅을 침탈하는 유럽인을 상대로 벌인 수 많은 항쟁 가운데에서 가장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높았던 시나리오였다. 테쿰셰 사망 이후에는 더 이상 범 인디언부족 연합국가의 비전도 나오지 못했고, 영국 등 외세의 관심과 지원도 받을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테쿰셰와 같은 인디언 병력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1812년 전쟁에서 영국이 미국의 침략을 막아내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테쿰셰는 캐나다가 독립국가로 탄생하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고, 캐나다에서는 그를 기리는 우표와 기념 주화가 발매되었다.
하지만, 그가 활동했던 이곳 미국의 중서부 지방에서는 그에 관한 박물관 하나 찾기 어렵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남북전쟁 때 큰 활약을 한 윌리엄 셔먼장군의 중간 이름이 테쿰셰(William Tecumseh Sherman)라는 것이다. 그의 부친이 테쿰셰의 용맹함에 감동을 받아 아들의 이름에 넣었다고 한다.
티피카누 전투지 박물관 관람 후에 우리는 프로펫츠타운 주립공원(Prophetstown State Park)으로 향했다. 이곳은 지역주민들을 위해 조성된 대규모 공원으로, 농장을 주제로 한 구역, 물놀이 구역, 피크닉 구역, 정착지 개척 이전의 초원 상태로 복원한 구역 등 다양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우리의 관심사는 당시 프로펫츠타운 인디언 마을을 재현한 구역이다. 그런데…..
그 시설물의 수준이 차마 재현한 곳이라고 부르기에 민망할 정도로 볼품없다. 인디언 연합국가의 꿈이 커가던 프로펫츠타운은 인디애나주 초대 주지사였던 해리슨에 의해 파괴되었고, 그 이름을 간직하고 있는 공간은 이렇게 허무하게 방치되고 있다.
해리슨은 북서지역의 개척과 1812년 전쟁승리에 대한 공로로 1841년에 미국의 9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당시 해리슨의 선거구호가 ‘티피카누의 영웅 해리슨’이었다고 하니 티피카누의 승리가 미국인들에게 상당한 의미였음을 알 수 있다. 참고로, 현 미국 부통령인 마이크 펜스(Mike Pence)가 인디애나주의 전 주지사이다.
내일은 서쪽으로 이동하여 블랙호크(Black Hawk) 추장 관련한 유적지를 방문한 뒤, 아이오와주의 워털루(Waterloo)라는 곳에서 묵을 예정이다. 오하이오와 인디애나 지역의 인디언 부족들을 몰아낸 후, 서쪽으로 미국이 향한 곳은 지금의 일리노이, 위스콘신 지역이었고, 이곳은 소크(Sauk)족과 폭스(Fox)족의 영토였다. 그리고 이곳에서 미국에 맞선 이가 바로 블랙호크 추장이다. 우리는 미국의 서부침략 경로를 따라 이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