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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ho Lee Dec 13. 2019

Day34 패장인 블랙호크 추장, 용맹함의 전설로 남다

일리노이주 블랙호크 사적지(Black Hawk Historic Site)

오늘부터는 본격적으로 서쪽을 향해 이동을 시작한다. 아침에 딸 아이가 힘들게 일어나며 투덜거린다. ‘천군만마’가 ‘천근만근’이 되었다고. 내가 천군만마라고 너무 많은 부담을 주었나 보다.


어제 존 행콕 타워에서 저녁을 마치고 숙소로 가는 길에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갑자기 음악을 틀었다. 그런데 그 음악이 바로 영화 ‘라스트 모히칸’의 주제곡이다. 반가워서 좋아하는 영화냐고 물으니, 아직 못 보았단다. 쩝…. 그런데 오늘 아침 지인분이 유튜브 영상을 보내주셨는데 이 영화음악을 누군가가(인디언일 것으로 추정됨) 길거리에서 연주하는 내용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블랙호크 뮤지엄은 일리노이주 서쪽 끝 미시시피강변의 록아일랜드(Rock Island)라는 곳에 위치해 있다. 마을로 들어서면 블랙호크란 이름이 여러 곳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블랙호크 주립사적지(Black Hawk State Historic Site) 안내판을 따라 뮤지엄을 찾아 가다가 잠시 길을 헤맸다. Watch Tower Lodge라는 간판 밑에 조그맣게 John Hauberg Indian Museum이라고 적혀있어 혹시나 하고 주차장으로 들어가보니, 입구에 블랙호크 추장 동상이 서있다.

박물관 입구의 블랙호크 조각상

박물관은 매우 작은 규모인데, 일리노이 지역에 거주했던 소크(Sauk)족과 메스콰키 (Mesquakie)족의 역사와 생활상, 블랙호크 추장의 이야기, 그리고 이곳에 박물관이 세워진 계기 등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 부족은 원래 캐나다 동북부쪽에 거주하다가 오대호 지역으로 이동했으나, 이곳에 살던 이로쿼아 연맹 부족들에게 쫒겨서 오대호 서쪽 일리노이와 위스콘신주로 이주했다. 1700년대부터 오대호 지역과 미시시피강을 따라 진출한 유럽상인들과의 교역을 통해 이들 부족이 사냥한 모피와 유럽의 각종 도구가 거래되었다.


소크족의 경우 한 곳에 대규모로 마을을 이루고 살았는데, 소키눅(Saukenuk)이라고 불렸던 이곳에는 1백 채가 넘는 롱하우스(long house)가 들어서 있었고, 주민도 5천명가량 되어서 당시 북미지역에서는 최대 도시 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소크족 마을 소키눅 재현모형

오하이오와 인디애나의 인디언 연합세력을 물리친 미국은 일리노이와 위스콘신 지역으로 진출한다. 미국과 소크, 메스콰키 부족의 일부 대표단은 이들 부족영토를 미국으로 양도하는 조약을 체결하지만, 실상 이들은 부족의 정당한 대표가 아니었기에 많은 부족민들은 이 조약의 실효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1812년에 미국과 영국간 전쟁이 발발하자 많은 부족민들이 영국 편을 들어 전쟁에 참여하였고, 이중에는 젊은 전투추장 블랙호크도 있었다. 그는 당시 테쿰셰의 핵심 부하 중 하나로 활약했다고 한다.


1828년에는 미국정착민들이 소크족이 살고 있던 소키눅까지 진출하게 되고, 이듬해 봄 겨울 사냥에서 돌아온 소크족 인디언들은 자신들의 마을이 모두 백인들 차지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후 양측의 갈등이 증폭되자 미국은 군대와 민병대를 동원해서 이들 부족을 강제로 미시시피강 서쪽으로 이주시킨다. 당시 에이브러험 링컨이 장교로서 이 작전에 참여했다고 한다.


블랙호크는 끝까지 자신의 땅을 지키려 했으나 수적 우세에 있는 미군을 당해낼 재간이 없어 일단 강 너머 아이오와 지역으로 이주하는데, 이후 1932년에 자신을 따르는 부족민을 데리고 다시 일리노이 지역으로 돌아온다. 그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고향에 다시 정착하고자 했으나, 미국인들의 공격으로 이후 15주에 걸친 블랙호크 전쟁(Black Hawk War)이 이어진다.


하지만, 블랙호크가 이끄는 인디언들이 초기 전투에서 미군을 상대로 올린 약간의 전과와, 이에 고무된 다른 인디언 부족들이 미국정착민 습격에 가세했던 몇 주간을 제외하고는, 이 전쟁의 대부분은 미군들이 블랙호크와 그 부족민을 가차없이 추격하고 학살하는 내용으로 채워진다.

블랙호크 추장의 초상화

블랙호크 일행은 미시시피강을 넘어 다시 서쪽으로 이주하려 했지만, 강에서는 미군 군함이 이들을 공격했다. 결국 1천명 이상의 부족민이 학살당하고 블랙호크와 그 일행이 사로잡히면서 전쟁이 종료된다. 어떻게 보면, 이 과정은 전쟁이라기 보다는 궁지에 몰린 부족민들을 미군이 학살해 가는 과정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블랙호크 전쟁은 미시시피강 동쪽에서 미국과 인디언이 치른 마지막 전쟁이 되었고, 이제 미국은 미시시피강을 넘어 서쪽으로 본격 진출하기 시작하는데, 이곳은 동부의 인디언들을 강제 이주시켜 두었던 곳이기도 하다(day 13). 블랙호크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잭슨에게 끌려가서도 당당하게 인디언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백인들의 잘못을 꾸짖었다고 한다. 잭슨대통령은 블랙호크를 구경거리로 만들어 미국 주요 도시로 순회시키는데, 신기하게도 이 과정에서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블랙호크의 용맹함과 당당함이 도리어 인기를 끌게 되었다.


체로키(Cherokee) 전차, 아파치(Apache) 헬기, 코만치(Komanche) 헬기, 치눅(Chinook) 헬기 등 미국인들이 사용하는 인디언 이름의 대부분은 인디언 부족명에서 유래한다. 그런데 블랙호크 헬기는 독특하게도 한 개인의 이름을 따오고 있는데, 이러한 그의 인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테쿰셰도 전사하지 않고 포로가 되었더라면 이와 같은 인기를 누리게 되었을까?


블랙호크의 패전 이후 소크족의 키오쿡(Keokuk)추장은 아이오와 지역의 부족 영토도 모두 미국에 매각하고, 미국의 지시에 따라 부족민들을 캔자스, 그리고 다시 오클라호마로 이동시킨다. 그리고 그 자신은 캔자스에서 매우 부유하게 잘 살았다고 한다.


박물관의 전시 내용은 단순한 편인데, 블랙호크의 실제 얼굴의 본을 떠서 만든 두상과 그가 사용했던 도끼 등이 전시되어 있고, 소크, 메스콰키 부족의 여름집(long house)과 겨울집(Wickiup)이 재현되어 있다. 박물관 건립 때 소크족과 메스콰키족 인디언들을 초대했으며 전통적인 방법으로 그들이 직접 건축한 것이라고 한다. 소크족의 도시 소키눅이 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인디언 박물관이 필요하다는 당시 지역 유력인사 존 호버그(John Hauberg)의 요청이 받아들여진 결과이다(원래는 이 지역에 주민들을 위한 공원과 롯지가 조성되었었다).

간단하게 블랙호크 박물관 투어를 마치고 나니 아쉬움이 남아 그의 이름을 딴 블랙호크 역사공원의 트레일을 따라 산책을 나섰다. 트레일 중간 중간 숫자 표식이 있고, 가이드 책자에 이에 대한 설명이 되어 있다. 대부분은 주변 자연에 대한 설명이지만, ‘이 야생과일은 인디언들이 말려서 먹었고’, ‘여기 개울바닥의 진흙은 인디언들이 도기를 만들 때 사용했고’와 같이 가끔씩 인디언 관련 얘기들도 나온다.


일리노이주를 뒤로하고 미시시피강을 건너 아이오와주로 들어선다. Day 14에 루지애나주에서 미시시피주로 이동한지 20일만에 다시 미시시피강을 건너가고 있는 것이다. 숙소가 있는 워털루(Waterloo)로 들어오니 주차된 대부분의 차들의 번호판에 Black Hawk라고 적혀 있어 의아해졌다. 철판구이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던 중 같은 테이블에 마주앉게 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번호판의 ‘Black Hawk’에 대해 물어보니 이곳 카운티 이름이라고 한다. 아이오와주는 차 번호판에 카운티 표시도 함께 쓴단다. 왜 이곳 카운티 이름이 블랙호크일까?


내일은 사우스다코타로 이동한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하는 수우(Sioux)족의 땅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오늘로 우리의 여행거리가 1만 마일을 돌파했다. 많이 운전했다. 차도 고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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