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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ho Lee Dec 13. 2019

Day35 블랙호크와 테쿰셰를 다시 생각해보다

장거리 이동(아이오와, 미네소타, 사우스다코타), Sioux Falls

장거리 운전에 있어 가장 큰 적은 졸음이다. 딸 아이가 여행에 합류한 이후 아빠의 졸음을 쫓기 위해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상황에 맞추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틀어주고, 요즘 유행하는 노래와 가수도 알려준다. 차 안은 조용한 발라드 음악이 흐르는 분위기 좋은 카페가 되기도 하고, 어느 순간 몸을 흔들며 큰소리로 함께 따라 부르는 콘서트장이 되기도 한다. 졸 틈이 없다.


운전 중 어제 주제였던 블랙호크(Black Hawk)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어떻게 보면, 블랙호크는 바뀐 세상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부족들이 원래부터 살던 땅에 그대로 살겠다는 고집을 부린 나머지, 많은 부족민들을 고통스런 상황으로 몰게 된 셈인데, 그게 과연 바람직한 것이었을까?’ 딸 아이의 질문에 나도 공감이 된다. 당시 소크(Sauk)족이 처했던 상황으로 보면, 미국인들이 차지한 일리노이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다시 예전처럼 터를 잡고 사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현실을 인정한 상태에서 최선의 대안을 찾는 것이 더 바람직했을 수 있다.


물론, 블랙호크도 미군들에게 쫓기는 상황이 되어서는 다시 미시시피 강 너머 아이오와로 돌아가고자 했으나, 이 때는 이미 미국이 블랙호크 일행을 모두 처치하기로 마음먹은 뒤였기에 때가 늦었다. 결국 그를 따랐던 수많은 부족민들은 비참한 최후를 맞고 말았으니 안타깝다. 아마도 당시 블랙호크는 미국과 전쟁을 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그저 평화로운 방법으로 부족민들을 이끌고 시위를 하려 했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온 이들을 침략자로 대했고, 이에 대한 저항은 학살을 불러왔다.


그렇다고 모든 인디언들의 항전이 무의미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테쿰셰(Tecumseh)가 품었던 인디언부족 연합국가의 건설이라는 꿈은, 당시 미국과 전쟁을 치르고 있던 영국의 적극적인 지원을 기대한다면 충분히 시도해볼만한, 그리고 그래야만 했던 비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방문하게 될 수우(Sioux)족의 항쟁도 당연히 싸울 수 밖에 없고 싸워야 했던 전쟁이었다.


오늘은 아이오와주에서 미네소타주를 가로질러 사우스다코타주의 오아코마 (Oacoma)라는 곳까지 약 450마일을 이동한 날이다. 이렇게 장거리를 이동하는 경우에는 굳이 인디언 관련 장소가 아니라도 중간에 하나쯤 방문할 곳을 찾아 장시간 승차로 인한 피로를 풀려고 한다. 중간 방문지 선택은 ‘천군만마’의 몫인데, 수우폴즈(Sioux Falls)로 결정되었다.


수우폴즈는 사우스다코타주의 최대도시(인구 17.6만)라고 하는데, 도시의 외관은 나즈막한 빌딩들이 모여있는 아담하고 수수한 모습이다. 이곳에는 Falls Park라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붉은빛 바위들 위로 급류가 힘차게 흘러내리고 있는 풍경이 참 아름답다. Sioux quartzite(석영암)이라고 불리는 이 바위는 강도가 매우 단단해서 거의 다이아몬드급이라고 한다. 동력원으로 활용 가능한 폭포와 건축자재로 사용 가능한 바위로 인해 수우폴즈는 산업의 중심지로 성장했었다고 한다.

공원의 폭포 옆으로 돌로 지어진 건물 유적이 있는데, 이 폭포를 동력원으로 사용했던 7층짜리 거대한 제분소 건물의 잔해이다. 1881년에 완공된 이 제분소는 당시 돈으로 50만불이라는 거액이 투자되었다고 한다. 안내판에는 이 투자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당시 이 지역의 유력 사업가가 제분소 건설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 뉴욕의 은행가를 초대하는데, 미리 강 상류에 댐을 만들어 물을 가두었다가 은행가가 방문할 즈음에 물을 흘려 보냈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어쨌거나, 투자를 끌어들이는데 성공했고 제분소도 지어졌는데, 폭포의 실제 수량이 기대한 만큼 나오지 않았고, 이 거대한 제분소를 돌릴 만큼의 밀도 수급되지 않아 2년만에 파산했다고 한다. 투자를 하기 전에 꼼꼼한 실사는 이래서 중요하다.

사우스다코타로 접어들면서 경치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지난 며칠간 따분하게 이어지던 옥수수밭과 나무숲 풍경이 초원으로 대체되기 시작하고 방목되고 있는 소들이 보인다.


아내가 이제야 서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며, ‘경치가 왠지 편안해지는 게 고향에 온 느낌인데, 왜 이럴까?’라고 한다. ‘아마도 전생에 여기 살았었나 보지.’ ‘그럼 카우보이의 아내였겠네.’ ‘그건 여기 언제 살았었는가에 달렸지. 200년보다 더 오래전이면 수우족 전사의 아내였을거야.’ 나름 진지한(?) 대화가 이어졌다. 우리 아이들이 아직 어렸던 20년전 여름에 사우스다코타를 여행했던 기억이 아련히 남아 있었는지도..


미주리 강변의 오아코마(Oacoma)에 있는 오늘 숙소 주변에는 몇 개의 낡은 서부풍 단층 건물만 덩그러니 있고, 오토바이를 몰고 온 거친 카우보이 스타일의 사람들도 가끔씩 보여 아내와 딸이 처음엔 약간 긴장한다.. 하지만 저녁식사를 하러 나가면서 보이는 노을 지는 풍광과 서부 개척시대 건물의 묘한 조화가 어느새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몇 개 안 되는 식당 중 그래도 가장 나아 보이는 곳에서의 친절한 종업원의 서비스와 익살스런 식당의 인테리어는 맛이 겁나 없는 음식도 용서하게 한다.

미주리 강변의 석양


내일은 숙소 인근 챔벌레인(Chamberlain)이란 곳에 있는 라코타 뮤지엄을 방문해 보고, 월(Wall)이라는 곳을 거쳐 사우스다코타주 두 번째 도시인 래피드시티(Rapid City)에 묵을 예정이다. 월은 드럭스토어(Drug store–약국)로 유명한데, 그 안내판이 무려 300마일 이전 지점부터 나타난다. 간판에는 아직도 커피 한잔에 5센트라는 문구가 나온다. 특이한 상술로 대박을 터뜨린 이곳 얘기는 내일 이어질 것이다.


이 지역의 인디언부족 명칭이 좀 혼동되어 아내에게 확인을 부탁했더니 친절하게 찾아주었다. 내일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일단 간단히 정리를 좀 해보면, 수우족이라는 명칭은 미국 중북부 지역에 거주하던 여러 부족을 통칭하는 것인데, 대표적으로 동쪽으로 산티다코타(Santee Dakota)족과 양크톤다코타(Yankton Dakota)족, 그리고 서쪽으로는 티톤(Teton)족, 오글랄라(OglaLa)족, 브륄레(Brule)족 등으로 이루어진 라코타(Lakota)족이 있었다. 우리는 오늘 다코타족이 살던 지역을 지나서 라코타족이 살던 지역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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