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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ho Lee Dec 14. 2019

Day36 대평원을 지배했던 수우(Sioux)족의 절망

사우스다코타주 라코타 뮤지엄, 운디드니, 월 드럭 스토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여행 초기 뉴멕시코주의 주니마을을 방문했을  숙소에서 만났던 이브가 운디드니 (Wounded Knee) 다녀왔다며, 정말 슬펐다고 얘기해  적이 있었다(day4).  그런 마음이었는지 이곳에 와보니 이해가 된다. 운디드니의 슬픈 역사를 찾아간 날이었다.

 

오전에 방문한 라코타 뮤지엄(Akta Lakota Museum)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라코타 부족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할  있을 정도로 체계적이고 알찬 내용을 갖추고 있었다.

라코타 부족민들은 원래 농사와 사냥을 하고 살았는데 1700년대에 말이 보급되면서 (16세기에 스페인의 진출과 함께 아메리카 대륙에 도입된 말은, 푸에블로 항거 (day 10) 스페인인들이 쫒겨나면서 인디언들에게 퍼져나가게 되었다), 버팔로 사냥에 주로 의존하는 수렵생활을 하게 된다. 버팔로는 이들의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제공해 주었는데, 전시되어 있는 각종 물품들을 통해 고기, , 가죽, , 힘줄,  등이 어떻게 이용되었는지를 이해할  있다.

 

미국이 북서지역을 정복한 , 캘리포니아에서, 그리고 콜로라도와 몬태나에서 금이 발견된다. 일확천금을 꿈꾸는 수십만 명이 서부로 향하게 되고, 이들의 경로로  개의 마차길이 만들어진다.  중에는 몬태나 지역을 통과하는 보즈먼 트레일 (Bozeman Trail) 있었는데,  길은 라코타족의 영역을 통과하고 있었다. 통행량이 늘어나면서 라코타족과 충돌이 발생하자 미국은 마차 통행을 보호할 목적으로 군대를 파견하여 라코타 지역에 요새를 건설한다.


하지만, 오랜 세월 사냥으로 다져진 라코타족은 강력했고, 피터만(Fetterman) 중령이 이끄는 부대가 라코타족에게 전멸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 이후 미국은 라코타족과의 평화적인 해결책을 강구하게 되고,  결과 1868 라라미요새 조약(Fort Laramie Treaty) 체결된다.

 

라라미조약은 수우족(라코타, 다코타, 나코타족의 연합) 미국간의 국가간 협약의 성격을 띄고 있으며, 현재의 사우스다코타, 네브래스카와 와이오밍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의 수우족 영토를 인정하고, 해당 지역에서 미국의 요새를 철수하는 대신 수우족은 일부 지역에서의 미국인들의  평화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내용이었다.


라코타 박물관의 자료에 따르면, 당시  조약으로 인정된 수우족 영토를 국가로 인정할 경우 스페인의 영토와 유사한 규모로 세계에서 52번째로  나라에 해당한다고 한다.  하지만, 수우족의 영토였던 블랙힐즈(Black Hills)지역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상황이 반전된다.

 

금을 쫒는 개척자들이 몰려들자,  지역에 배치되었던 미군들은 초기에는 라라미조약을 준수하기 위해 이들을 내쫓는다. 하지만 이내 미군의 관리는 소홀해지고, 이주민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어 정착촌을 만들게 되면서 수우족을 자극한다. 조약 위반에 대해 항의하는 수우족에게 미국은 도리어 블랙힐즈 지역을  것을 제안하는데,  지역을 성지로 여기고 있던 수우족은 결코 받아들일  없는 사항이었다.

 

 제안을 거절하자, 결국 미국은 1876년부터 수우족을 블랙힐즈에서 무력으로 쫓아내는 행동을 취하게 된다.  과정에서 리틀빅혼 전투(Little Bighorn Battle) 벌어지고, 수우족 연합군은 커스터(Custer) 장군이 이끄는  7 기병대를 거의 전멸시킨다(우리는 해당 장소를 방문할 예정이다).  사건은 수우족에 대한 미국의 대대적인 보복전을 초래하게 되고, 결국 수우족은 미국에 항복한  기존의 영토를 대부분 빼앗기게 되는 조약에 서명을 하게 된다.

 

라라미조약으로 인정되었던 수우족의 영토는 몇차례의 강압적 조약으로 대폭 줄어든다

하지만 이러한 조약의 불법성  효력에 대한 수우족의 지속적인 법정투쟁 결과, 1980년에 미국 연방 대법원은 미국이 부당하게 수우족의 땅을 빼앗았다며 원금 1750만불과 이자 1 5백만불을 배상하라는 결정을 내린다. 우리 돈으로 대략 1500억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그러나 수우족은 수령을 거부하고 블랙힐즈 영토를 돌려달라는 투쟁을 진행 중이다. 현재 해당 배상금은 5억불(6천억원) 증가된 상태인데, 아직도 수우족은 이의 수령을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관련 전시물을 읽고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 ‘슬픈 이야기 아니냐 ‘ 슬픈  미국의 학교에서 이런 내용을 가르치지 않기에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이런 역사를 알지도 못한다는 이라고 얘기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원주민이란다. 연세가 있는 여자분이었는데, 파란 눈동자로 인해 처음엔 백인인 줄로 알았다.


수우족이냐고 물으니 자신은 멀리서  럼비(Lumbee) 부족이란다. 노스캐롤라이나의  럼비부족인지 물으니 그렇단다. 럼비부족을 위한 학교로 시작한 펨브룩 (Pembroke) 칼리지(day18) 알고 있다고 말하니 자신이 바로 거기서 공부했다고 한다. 책으로만 보던 럼비부족 원주민을 이곳 사우스다코타에서 만나게  줄이야원주민 부족들의 슬픈 사연들은 자신의 부족 얘기가 아니라도 원주민들에게는 우리보다  슬프게 다가갈 것이다.

 

 분의 푸른 눈동자를 보니 로아노크 식민지의 사라진 정착민들 이야기(day19) 떠오른다. 당시 가설 중의 하나가 사라진 정착민들이 크로아토안(Croatoan) 부족에게로 가서 이들 속에 섞여 살았을 가능성이었고,  근거로 크로아토안 부족의 후손으로 알려진 럼비부족민 중에 눈동자가 파란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는 설명이 있었다. 혹시  경우에 해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보았다.


 알찬 내용의 라코타 뮤지엄은 무료 입장에다가 작은 기념품까지 제공하고 있다. 혹시 운영주체가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니 부족민이 아닌 일반인들로 구성된 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껏 가본 인디언 박물관 중에 가장 알찬 내용이었다고 얘기를  주니 기뻐한다. 감사한 마음에 기부금 함에 성의를 보탰다. 뉴욕주를 여행하며 제대로  이로쿼아 박물관이 없어 안타까웠던 기억(day 28,29) 난다.

 

다음 목적지는 가슴을 먹먹하게 했던 운디드니(Wounded Knee)이다. 수우족은 영토의 대부분을 잃고 보호구역에 갇혀 사냥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미국이 제공하는 보급품에 의존하며 살게 된다. 실의에 빠져있던 이들에게 남쪽 인디언 부족들 사이에서 퍼져나간 고스트댄스(Ghost Dance) 라는 종교가 보급되고 이는 급속하게 수우족 부족민들에게 전파된다.

 

 종교는 워보카(Wovoka)라는 인디언이 창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기본적으로 기독교 교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워보카 자신이 재림한 예수라고 설교하면서, 자신이 가르친 춤을 추면 다시 인디언들이 예전처럼 자유롭게   있게 된다는 내용을 설파했다. 이런 내용은 절망감에 괴로워하던 인디언들에게  인기를 끌게 되고 많은 이들이 함께 모여 고스트댄스를 추게 된다. 이로 인한 인디언들의 소요를 우려한 미국은 고스트댄스 금지령을 내리는 ,  상황에서 고스트댄스가 수우족에게도 보급이  것이다.

 

수우족을 관리하던 미군은,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고스트댄스의 보급을 저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국에 협조적이지 않았던 수우족 주요 추장들을 검거하기 시작하고,  와중에 수우족의 정신적 지주로 인정받던 앉은소(Sitting Bull) 추장이 1890 12 15 살해된다.


미군의 검거 대상자   명이었던 큰발(Big Foot) 추장은 다른 추장들과 후속 조치를 논의하기 위해 자신의 부족민을 이끌고 파인릿지(Pine Ridge) 보호구역을 찾아가던  미군 부대와 조우한다. 이들은 부족을 포위한  운디드니 지역으로 이끌어 야영하게 한다. 이들을 포위한 부대가 바로 14년전 리틀빅혼 전투에서 이들 부족에게 몰살당했던 7 기병대였기에 부족민들 사이에서는 긴장감과 두려움이 흘렀다.

 

큰발(big foot)추장 휘하의 수우족 일행. 이들 대부분이 운디드니에서 학살당한다

다음날 아침, 미군은 부족민들이 모든 무기를 반납할 것을 요구하고 부족민들이 무기를 반납하던 ,  명이 무기반납을 거부하다가(일설에는 그가 귀머거리였다고 한다) 허공에 총알이 발사되는데,  총성을 계기로 부족민을 포위하고 있던 미군이 부족민들을 향해 무차별 발포를 시작한다. 당시 미군은 4정의 기관총까지 배치하여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학살하는데, 당시 학살된 인원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당시 Big Foot 추장의 일행이 남자 100여명에 여자와 아이들 250 가량으로 알려져 있고, 이들 대부분이 학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운디드니에서 학살당한 원주민들을 구덩이에 몰아넣고 있는 장면

당시 일부 부상당한 여자와 아이들이 인근 마을로 후송되는데, 환자들의 상태를 지켜본 의사들이 ‘이제껏 어느 전장에서도 아녀자들이 이렇게 잔혹하게 공격을 받은 모습을  적이 없다 끔찍해 했다고 한다.

 

학살이 벌어졌던 곳에는 붉은 표지판 양면에 운디드니 학살에 대한 설명이 쓰여있다. 당시 부족민들을 겨냥해 기관총이 배치되고 발사되었던 언덕 위에는 학살된 이들의 묘지가 자그마하니 만들어져 있는데 초라하고 쓸쓸해 보인다. 1890년의 운디드니 학살은 미국 역사에서 미군이 인디언을 대상으로 자행한 마지막 공격으로 기록된다.

(Wall)이라는 마을에 운디드니 뮤지엄이 있다고 해서 들르기로 한다. 같은 사우스다코타주인데도 이동 중에 시간대가 중부시간대(Central Time Zone)에서 산지시간대 (Mountain Time Zone) 바뀌어서 오늘은  시간을 벌어 25시간을   있다. 이렇게 예상 외로 생긴 시간을 이용해서 도중에 배드랜드국립공원(Bad Land National Park) 들르기로 했다. 하루하루 알뜰하게 시간을 쓰고 있는 중이다.

 

초라한 외관과 달리 내용은 알차게 구성된 운디드니 뮤지엄 방문  Wall Drug Store 관광에 나섰다.


어제 얘기했듯이  곳은 수백 마일 떨어진 곳에서부터   마일 간격으로 고속도로변에 Wall Drug Store 간판들을 세워서 지나가는 차량들로 하여금 호기심을 유도하는 곳이다. 20 전쯤 이곳을 여행하면서 황야의 서부개척시대 모습으로 지어진 건물들을 보며 신기해 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 가보니 규모가 너무 커져 있어 예전의  정취가 느껴지지 않았다.

1931년에 젊은 약사가 이곳 Wall이라는 마을에 약국을 열었는데, 마을도 작고 지나가는 차들도 들르지 않아 고민하던 , ‘시원한 얼음물을 공짜로 드립니다라는 광고판을 도로 중간중간에 세우면서, 여행자들이 찾는 유명한 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대규모의 기념품 상점과 식당 등이 들어서 있는데, 가게에서는 지금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얼음물을 공짜로 제공하고 있고, 커피는  잔에 5센트를 받고 있다. 도넛도 값이 저렴한데  맛나다.

 

내일은 래피드시티(Rapid City) 인근에 있는 러쉬모어산 (Mount Rushmore), 수우족 인디언 영웅인 크레이지호스 (Crazy Horse) 기념관 방문  와이오밍주로 이동하여 쉐리단(Sheridan)이란 곳에 묵을 예정이다. 쉐리단은 수우족이 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리틀빅혼 전투지로 가는 경로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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