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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ho Lee Dec 15. 2019

Day37 블랙힐스에 살아남은 전설 크레이지 호스

마운트 러쉬모어와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 기념관

크레이지호스는 수우(Sioux)족 인디언들의 영웅이자 전설이다. 그리고 그는 블랙힐즈(Black Hills)에서 지금도 전설로 살아가고 있다.


숙소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한 아주머니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이런 저런 대화를 주고 받다가 자신이 원주민 인디언이라고 소개한다. 노스다코타에서 이곳에 사는 딸 집을 방문하는 길이라고. 어느 부족인가 물었더니, 세 부족의 피가 섞여 있는데 공식적으로는 아리카라(Arikara) 부족과 만단(Mandan) 부족원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자신의 남편은 라코타족으로, 한 때 자신의 부족과 라코타족은 전쟁을 치른 사이인데 이렇게 둘이 부부로 살고 있으니 신기하단다.이 아주머니도 외관상으로는 어느 민족일지 구별이 잘 되지 않는다.


미국과 같은 다민족 사회에서 사람들이 순수한 혈통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누가 인디언이고 어떤 특정 부족민인가를 규명하는 것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어서, 각 부족 별로 자신들의 부족민들을 호적과 같은 기록을 통해 관리하고 있다. 부족혈통이 어느 정도 되어야 자신들의 부족원으로 인정해주는가는 부족별로 기준이 다른데, 통상적으로 1/4이면 인정하는 경우가 많지만 1/2이상 혹은 1/32이상을 기준으로 하는 부족도 있다고 한다.


사우스다코타주 서쪽에는 블랙힐즈(Black Hills)라고 불리는 산지가 위치해 있는데, 이 지역에 자라는 소나무잎이 짙은색이라 멀리서 보면 검게 보이기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에는 수우(Sioux)족 인디언들이 탄생한 곳으로 여겨지는 Wind Cave를 비롯해 수우족에게 중요한 일곱 장소가 포함되어 있기에, 이들에게 매우 성스러운 곳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금광이 발견된 이후, 미국은 강압적이고 불법적인 방법으로 이곳을 수우족으로부터 빼앗았고, 수우족은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따른 배상금 수령을 거부하고 지금도 땅을 돌려달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day 36).


이처럼 수우족들에게 성스러운 블랙힐즈에, 미국은 자신들의 위대한 대통령 4인의 얼굴을 거대한 암벽에 새겨 넣었다. 그 곳이 러쉬모어산(Mount Rushmore)이다. 우리의 숙소였던 래피드시티(Rapid city)에서 크레이지호스 기념지로 가는 도중에 러쉬모어산이 있기에 먼저 들렀다. 20년 전에 한 번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막상 보니 그 크기가 생각보다 작다는 느낌이 든다. 인디언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곳에 새겨진 4명의 대통령 중 초대 대통령이었던 조지워싱턴은 인디언들에 대한 무자비한 제거작전을 지시(day 29)했던 인물이다.

크레이지호스 기념지는 러쉬모어로부터 차로 30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해 있는데, 수우족의 성지인 블랙힐즈가 백인들의 상징물로 기념되고 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에, 인디언들에게도 훌륭한 영웅이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시작된 프로젝트이다.


수우족의 추장 스탠딩 베어(Standing Bear)가 러쉬모어 조각에 참여한 바 있었던 폴란드계 미국인 조각가 코르착(Korczak)에게 러쉬모어를 능가하는 인디언 영웅의 조각을 부탁하게 된다. 코르착은 블랙힐즈를 둘러싼 인디언들의 슬픈 사연을 듣고 난 후 스탠딩 베어 추장에게 설득되어 그의 평생을 바치게 되는 크레이지 호스 프로젝트에 뛰어들게 된다.


1947년에 착수된 이 프로젝트는 크레이지호스가 말을 타고 손을 앞으로 뻗는 모양의 조각을 만드는 것인데, 72년이 지난 지금 겨우 얼굴 부분만 완성되어 있다. 뻗은 팔을 완성하는 데에만 앞으로도 14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니 전체 조각의 완성은 아마도 내 생애에 보기는 힘들 듯 싶다. 현재 15명의 인원이 산에서 주말을 제외하고 일년 내내 작업을 진행중이란다.


미국정부에서 건설자금을 지원할 의향을 여러 차례 비췄지만, 코르착의 유족들이 중심이 된 재단에서는 블랙힐즈와 크레이지호스가 갖고 있는 상징성을 감안할 때, 미국정부의 지원보다는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고 한다. 방문객들의 입장료와 기부금만으로 운영되는 재정적 제약이 크레이지호스 기념물 건설기간을 기약없이 만들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크레이지호스 조각의 완성보다도 이 과정이 더욱 사람들에게 강렬한 이야기를 전달해 주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딸 아이도 러시모어보다 크레이지호스가 더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현재 조각의 모습은 20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인다. 다만, 방문객센터의 규모는 많이 확장된 듯 하다. 크레이지호스 기념지 관련한 영상 상영, 인디언 박물관(크레이지호스와 버팔로 관련 자료가 볼 만하다), 조각가 관련 기념관 등이 들어서 있다. 조각을 진행하면서 발파작업으로 떨어져 나온 돌덩어리들을 한쪽에 쌓아두고 방문객들이 가져갈 수 있도록 해 두었는데, 어떤 아주머니는 한 바구니를 들고 간다. 어디에 쓰려는 것일지 궁금하다.


크레이지호스는 태어났을 때 머리가 곱슬이라 곱슬(Curly) 이라고 불렸는데, 그가 전투에서 공을 세워 인정을 받으면서 그의 아버지는 자신의 이름을 아들에게 물려주었다. 그 이름은 ‘그의 말이 미쳤다(His horse is crazy)’였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전혀 다른 뜻인 ‘크레이지호스 (Crazy horse–미친 말)’로 그를 불렀다. 그는 성인이 되어 치르는 비전수행을 통해 자신은 위대한 정령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것이고, 대신 부족을 위해 큰 공헌과 희생을 해야 하는 운명이라는 비전을 얻게 되고, 이후 그 비전에 걸맞게 활동한다.


그는 적의 총알이 자신을 결코 맞히지 못할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전투에서는 항상 맨 앞에서 용맹하게 활약했다. 특히 그의 특기는 잡힐 듯 하면서도 총알 사이를 빠져 나가며 적군을 유인해서 함정에 빠뜨리는 것이었는데, 피터만 (Fetterman) 대위의 부대가 그의 유인 전술로 인해 전멸을 당하게 된다(day 36). 또한 제7기병대를 거의 몰살시킨 리틀빅혼(Little Bighorn) 전투에서도 큰 활약을 한다.


그는 미국의 거센 압박속에서도 굴복이나 타협없이 투쟁하였지만 (그는 그 어떤 문서나 조약에도 서명한 적이 없다고 한다), 사냥감이 사라지고 부족민들이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하자 어쩔 수 없이 안전을 보장하는 미국의 약속을 믿고 보호구역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보호구역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원래의 약속과 달리 미군이 그를 감옥으로 끌고 가려 하자 저항하는 과정에서 경비병의 칼에 찔려 죽고 만다.


스탠딩 베어와 코르착이 블랙힐즈에 인디언 영웅을 조각하기로 결정하고 적합한 인물의 선정을 요청하자, 인디언 리더들은 불굴의 기개와 용맹함의 상징인 크레이지호스를 그들의 영웅으로 선정했다. 한가지 문제는 크레이지호스가 단 한번도 사진촬영에 응한 적이 없기에 그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는 점이었는데, 리틀빅혼 전투에 크레이지호스와 함께 참전했던 생존자 4인의 증언을 통해 유사한 모습을 찾아냈다고 한다.


방문객센터에서는 코르착이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초기 모습이 담긴 영상을 상영하는데, 혼자 이 외딴 곳에 와 텐트에서 생활하면서 산으로 가는 길을 만들고 발파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코르착은 10명의 자식을 두었는데, 이들이 성장하면서 곁에서 아버지를 도와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 그는 정부의 지원 없이는 자신의 생애에 이 프로젝트는 결코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1982년에 죽는 순간까지 묵묵히 작업을 진행했다. 전설을 조각하며 또 하나의 전설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1948년부터 2018년까지의 크레이지호스 조각물 진전상황

방문객 센터에서는 하루에 네 차례 원주민 공연이 진행된다. 라코타부족 부부와 두 딸이 진행하는데, 이들 부부가 말을 참 잘한다. 라코타부족의 역사와 블랙힐즈가 이들 부족에게 주는 의미를 전달하고 인디언 전통무용을 보여준다. 인디언 역사에 대한 부분은 잘못 접근하면 미국인들을 가해자로 만들 수 있는데, 이 부부는 대다수 관객이 미국인임을 감안하여 미국인들에 대한 비난보다는 라코타부족이 겪은 어려움에 초점을 맞춘다. 또한 제1,2차 세계대전에 암호병으로 참전하여 미국을 위해 희생한 얘기로 마무리함으로써 미국 관객들의 박수를 유도해낸다.

이들이 설명한 바에 따르면 자신들은 수우족이라 불리는 것보다 ‘라코타’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한단다. 그 이유는 라코타는 인디언말로 ‘연결’, ‘연대’(alliance)라는 뜻인 반면, 수우는 자신들에게 적대적이었던 부족들이 부르던 말을 프랑스인들이 사용하게 된 것으로, 그 의미는 ‘뱀(snake) 혹은 적(enemy)’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새로운 걸 하나 알게 되었다. 이들의 이야기와 공연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크레이지호스 기념지 방문이 더욱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방문객센터에서 조각이 진행중인 산까지의 거리는 약 1마일 정도인데 버스 투어에 참가하면 산 아래까지 이동해서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관찰할 수 있다. 가이드를 겸하고 있는 기사가 조각상 손가락 하나의 길이가 30피트(9미터)에 달하고, 전체 예정된 조각상의 규모는 23층 빌딩 높이로 세계 최대 규모의 석조조각 프로젝트라고 설명한다.

투어 후, 와이오밍주로 이동하는데 경치가 바뀌기 시작한다 사우스다코타만해도 초원과 경작지가 섞여있는 경치였는데, 이제는 대부분이 벌판이다. 강수량이 많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한참을 달려도 마을이 보이지 않지만, 난 왠지 인적이 뜸한 황량한 경치를 보면 맘이 설렌다. 사람과 건물, 산과 나무 등으로 항상 빽빽히 둘러싸인 곳에서 살아왔기 때문일까? 텅 빈 공백은 내게 여유와 편안함, 그리고 맘껏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 같다.

 

저녁쯤 숙소 가까이 도착해 슈퍼에 들렀는데 날씨가 꽤 쌀쌀하다. 섭씨 14도. 원래 이렇게 추운가 물으니, 그렇지 않단다. 여름엔 더운 곳인데 이번 여름은 이상하게 춥단다. 한국과 유럽으로 모든 열기가 몰려간 탓일까?

 

숙소가 있는 쉐리단(Sheridan)이란 곳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차 타고 오는 길에 들판에 자유롭게 방목되고 있는 수많은 소들을 보면서 오늘 저녁 메뉴는 스테이크로 정했었다. 역시나 우리의 천군만마가 이 시골에서도 기막힌 식당을 찾아낸다.


쉐리든은 와이오밍주에서 인구가 6번째로 많은 도시인데도 1만 8천명이 채 안 된다. 와이오밍은 미국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주이고, 또한 공화당 지지율이 가장 높은 주라고 딸아이가 검색 결과를 알려준다. 그렇게 보면 왠지 아주 외딴 시골 느낌일 것 같은데, 쉐리단 시내는 매우 깨끗하고 정돈된 도시이다. 오가는 사람들도 전혀 시골사람 분위기를 풍기지 않는다.


내일 행선지는 리틀빅혼 전투지이다. 그리고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초입에 있는 몬태나주 가디너(Gardiner)라는 곳에서 숙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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