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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ho Lee Dec 16. 2019

Day38 전투의 서막, 그들을 생각하면 목이 메인다

리틀빅혼 전투유적지(Little BIg Horn Battlefield)

Save the best for the last. 여행의 묘미는 Serendipity 있는  같다. 예상치 못했던 즐거운 만남들.

 

리틀빅혼 전투 유적지는 이번 여행에서 인디언 관련한 장소로는 마지막 방문지였다. 아직 태평양을 만나는 시애틀까지는  거리가 남아있지만... 리틀빅혼은 인디언 부족이 미군을 상대로 거둔 최대의 승전지이다. 전쟁에서 이길 수는 없었지만, 전투에서의 승리를 통해 인디언들의 기개를 미군에게 보여줄  있었고, 그렇게 이들은 승리의 역사를 남기게   있었다. 우리나라 독립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던 청산리나 봉오동 전투가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다.

 

이번 여행 도중 뉴욕에서 만났던 지인이 리틀빅혼에 들르게 되면 사진이라도   보내달라고 부탁을  적이 있다.  분도 학창시절에 미국의 서부개척과 인디언 이야기에 흠뻑 빠져 지냈고, 매일 인디언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서부 대평원 인디언과 미국 기병대간 전투 이야기의 백미는, 결국 미국 서부개척과 남북전쟁의 전설적인 영웅 커스터(Custer) 장군의  7기병대가 거의 전멸했던 리틀빅혼 전투일  밖에 없다.

리틀빅혼 방문은 솔직히 기대반 걱정반이었다. 이전에 뉴욕주의 뉴타운(Newtown), 오하이오주의 폴른팀버즈 (Fallen Timbers), 인디애나주의 티피카누 (Tippecanoe) 전투지 등을 방문했을 ,  군데에 세워져 있는 안내판에 의존하면서 당시 전투장면을 머릿속으로 상상해야 했는데, 구체적인 정보가 불충분하면 상상하기도 쉽지 않고 생생하지도 않다는 것을 경험했어서 이번 방문도  걱정스럽긴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리틀빅혼 전투가 워낙 유명한 사건이었고, 이곳은 미국 국립공원서비스가 직접 운영하고 있어서   특별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기대감을 안고 평소보다   일찍 아침을 시작했다. 숙소에서 리틀빅혼까지는  시간 거리이다.

우선 방문객센터에서 리틀빅혼 전투를 소개하는 영상물을 시청했다. 미국인들과 인디언들이 서로 조약을 어기고 충돌이 생겨서 결국 미군이 출동하고, 보호구역으로 돌아가라는 지시를 어긴 인디언부족에 대한 공격을 하게 되는데,  선봉인 커스터의  7기병대는 지친 상태에서 무기도 좋지 않고 훈련도 충분치 않은데다 인디언들에 비해 수적으로도 10 1 열세였다는 식으로 설명이 진행된다.   아래라고 생각되는 인디언들에게 정예 미군 기병대가 거의 몰살된 사건에 대해 그렇게   밖에 없었던 이유를 구구절절 늘어놓는 느낌이 든다.

 

제일 맘에 들지 않았던 부분은  전투의 원인이 쌍방 잘못에 있다는 식의 전개이다.  전쟁은 전적으로 미국의 탐욕으로 시작된 전쟁이었고 미국이 스스로 수우(Sioux) 인디언들과 맺었던 조약을 어긴 행위였다.

 

오늘의 Serendipity 영상물 시청 이후에 진행된 레인저(ranger)와의 대화시간부터 시작되었다.

 

연세가  있어 보이는 레인저는 뙤약볕 아래에서 오랜 시간 동안 열정적으로 리틀빅혼 전투에 대해 설명을 한다. 리틀빅혼 전투지는 당시 전투에서  부대가 구체적으로 어떤 움직임을 보였고, 병사 개개인이 어디서 죽었는지가 상세히 기술되어 있는 유일한 전투기념지라고 한다.


실제로 이곳 공원  전투지 곳곳에는 하얀 비석들이 세워져 있는데, 각각의 비석이  병사들이 전사한 위치를 표시한다. 물론 이는 전적으로 미군들의 경우에 해당하고 인디언 전사들의 경우에는 별도의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시  전투에서 미군은 263명이 전사했고, 인디언 전사자의 수는 100명을 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어제도 잠시 언급했지만, 몬태나 지역에서 금광이 발견된 이후 많은 정착민들이 금을 찾아 나서는데,  경로는 보즈만 트레일(Bozeman Trail)이었다.  트레일은 수우족의 땅을 지나고 있었는데, 백인들의 통로가 수우족 인디언들의 사냥터와 겹치면서 충돌이 발생한다. 미국은 보즈만 트레일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곳에 요새를 세우지만, 수우족의 공세에 요새를 지탱하는 것이 힘들어지고,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 유인전술에 말려든 피터만(Fetterman) 대위의 부대가 전멸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피터만 대위 부대의 전투 장면 그림

당시 미국은 남북전쟁으로 이미 재정이 어려운 상황이라 보즈만 트레일을 인디언들의 공격으로부터 지켜낼 만큼의 군대를 동원하기 힘들었고, 더구나 샌드크릭 학살사건(day 11) 알려지면서 워싱턴 정가에도 군사적인 옵션에 대해 회의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수우족의 영토를 공식적으로 인정해주고, 대신 미국인의 안전한 통행을 보장받는 내용의 라라미조약(Fort Laramie Treaty) 1868년에 체결된다(day 36). 

 

레인저는 여기에 당시 미국이 처한 상황을 한가지  추가해서 설명한다. 당시 미국은 경기불황으로 실업률이 25% 이르렀고, 금본위제 금융시스템 체제하에서 경기부양책으로 달러를  찍어내기 위해서는 금이 필요했다고 한다. 이런 배경에서 미국 정부는 수우족의 영토로 약속했던 블랙힐즈 지역으로 대규모 탐사대를 보낸다. 수천 명의 탐사대를 이끈 대장이 바로 인디언전투  남북전쟁의 영웅 커스터였다.

 

그리고 이들이 금을 발견하는데, 당시 탐사대에 동행했던 기자들이 이를 대서특필하면서(풀뿌리만 들춰도 금이 나오는 , 블랙힐즈!) 당시 생활이 어려웠던 많은 정착민들이 금광으로 그렇게 몰려든 것이란다. 실업문제를 해결하는  미국 정부로서  과제였기에 조약을 무시하고 인디언 땅을 빼앗아서라도 이들에게 일자리와  곳을 만들어줄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미국은 라라미조약을 통해 수우족 영토에 미국인들이 들어가는 것을 막기로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수우족에게 블랙힐즈 지역을 팔도록 종용하고, 수우족이 이에 응하지 않자, 오히려 무단 침입자인 미국인들의 보호를 명분으로 수우족에게 제한된 지역의 보호구역 내로 이동하라는 최후 통첩을 한다.


 부분을 설명하면서 레인저가 잠시 말을 잇지 못한다. 혹시 그가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감정이 북받친 것은 아닐까 궁금했었는데, 나중에 그에게 얘기를 들어보니 정말 그랬단다.  의외였다. 백인 미국인이  장면에서 수우족 상황에 감정이입하여 목이 메일 수도 있다니. 객관적 진실의 힘인  같다.

미국의 최후통첩에 대비책을 강구하기 위해 수우족과 쉐이엔(Cheyenne), 아라파호(Arapaho)족이 리틀빅혼 강변으로 모여들게 되고, 1876 6 크룩(Crook) 장군이 이끄는 대부대는 고분고분하지 않은 인디언들을 제거하기 위해 이들이 사냥을 하고 있던 곳으로 진군한다.

 

미국 인디언을 찾아가는 오래고  특별한 미국여행’ 실질적인 마지막 방문지 리틀빅혼 전투유적지에 대한 이야기가 Serendipity 인해  많은 편이다. 앞으로 며칠에 나누어 소개하고자 한다.

 

오늘의 Serendipity 대해 잠깐 소개하자면, 설명을 진행했던 레인저 (Tom) 다른 방문객들과 함께  열정적인 대화들, 그리고 톰을 통해 소개받고 방문했던 크로우(Crow) 부족의 축제현장 등이다. 우리가족이 파크레인저의 페이스북에 등장하게 되고, 미국인으로부터 식민지배의 잘못 등에 대한 인정을 거부하는 일본을 비난하는 얘기를 듣게 되고, 계속 하루 차이로 어긋나던 이벤트가 마침내  맞아 떨어져 인디언들의 축제 현장에 함께 하게  날이다. , 그리고 38일만에 발생한 사고도 있었다.

 

내일은 옐로스톤 국립공원 방문이다. 시애틀 도착 예정일은 사흘 후인 8 2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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