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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ho Lee Dec 18. 2019

Day39 리틀빅혼강의 대첩 - 제7 기병대 참패하다

옐로스톤 국립공원 & 리틀빅혼 전투 두 번째 이야기

이제부터는 계획 없이 편하게 관광하면서 보내자고 했는데, 오늘 하루가 그간 인디언 여행을 하며 지내온 여정보다  고되게 마무리되고 있다. 딸아이가 이번 여름 인턴 하던 때보다  힘들단다. 한번 여행을 시작하면  늦게야 하루 일정을 끝내는 것이 우리 가족의 전형적 여행 패턴이다. 오늘도 역시  10 넘어 호텔에 체크인 한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20 전에 RV(Recreational Vehicle-캠핑카) 이용하여 여행  적이 있어서  군데 유명한 장소들 위주로 둘러보면서 하루를 보내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이곳은 자연 경치도 대단하지만, 도처에 있는 다양한 야생동물들을 자연 속에서 그대로 관찰할  있다는 것이  매력이다.

 

들판을 평화롭게 거닐던 버팔로 무리와 산등성이에서 어슬렁거리던 곰의 모습이 기억 속에 인상적으로 남아있어서, 안내센터에 야생동물들을    있는 장소를 물어 보았다. 버팔로의 경우에는 라마밸리(Lamar Valley) 헤이든밸리(Hayden Valley) 쪽에 많은데 오전(6-9)이나 저녁(6-9) 시간에  많이 출현한다고 한다. 이미 오전 10시가 넘었으니 운에 맡길 밖에.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트레일 하이킹에 관해 물었는데,  퇴치용 스프레이를  지참하라는 말에 일단 유보한다.

 

버팔로 100마리, , 그리고 엘크. 우리가 오늘 내로 찾기로  동물들인데, 결과적으로 모두 성공했다.  시간임에도 동물들은 이곳 저곳에서 출현했다. 맘모스 스프링 (Mammoth Springs), 옐로스톤 그랜드캐년(Grand Canyon of the Yellowstone), 웨스트썸(West Thumb) 등을 둘러보고, 옐로스톤의 상징과도 같은 올드페이스풀(Old Faithful) 도착하니 해가 지고 있다.

옐로스톤은 정말 여러모로 어마어마한 공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형형색색의 온천샘, 분출하는 용천수, 높은 , 깊은 계곡과  폭포, 거대한 호수,  많은 동물들. 다만 관광객 수에 비해 공원 내의 편의시설이 충분치 못한 것이  아쉽다.

어제에 이어 리틀빅혼 전투지 얘기로 돌아가자.

 

몬태나 지역의 인디언들을 토벌하기 위한 크룩 장군의 부대는  개의 축으로 나뉘어 진출했다. 남쪽으로부터는 크룩 장군이 직접 본대를 이끌고 진격했고, 테리(Terry) 장군과 커스터는 동쪽에서, 깁슨(Gibson) 대령은 서쪽에서 리틀빅혼 인근에 있을 인디언 부족들을 찾아 나섰다.  작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축으로 진행하는 부대간의 원활한 협조가 필수적인데, 당시 이들 부대는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상호교신이 쉽지 않았다.


크룩 장군의 부대는 1876 6 17 로즈버드강 (Rosebud Creek) 인근에서, 인디언들과 6시간 동안이나 이어진 격전 끝에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내고 후퇴하고 만다.  전투에 인디언 측에서는 여성도 참여했는데, 그녀가 부상을 입은 오라버니를 직접 나서서 구출함으로써 인디언들에게  전투는 ‘여동생이 오라버니를 구한 전투 불리고 있다고 한다.

미군의 진격 경로

로즈버드 전투에서 양측 모두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미군이 후퇴를 했다는 면에서 이는 인디언의 승리라고   있다. 또한 로즈버드 전투는 리틀빅혼에서 인디언들의 승리를 가능하게 만든 주요한 요인으로 거론된다.  이유는 크룩장군의 부대가 리틀빅혼에서 커스터의 부대와  때에 합류할  없게 되었고, 그리고  많은 인디언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전투를 이끈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 따라 미국에 대한 항전에 가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로즈버드 전투 8 후인 6 25, 커스터가 이끄는  7기병대가 수우, 쉐이엔, 아라파호족 등이 대규모로 모여 지내고 있는 리틀빅혼으로 진출한다. 당시 커스터가 이끌고 있던 기병대 병력은 600여명 규모였고, 여기에 아리카라 (Arikara)족과 크로우(Crow) 인디언들이 정찰병으로 함께 했다. 이들 부족은 자신들과 적대관계에 있던 수우족에게 타격을 입히고, 또한 미국으로부터 지원받는 급여  전리품(주로 말과 ) 얻기 위해 미군에 가담했다.

 

같은 인디언들끼리 단결하지 못하고 미군의 편을 들어 갈라져 서로 싸우는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는데, 가만 생각해보면, 당시에는 이들 부족들이 서로를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간에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오랜 기간 적대적인 관계였다면, 이들을 하나의 민족으로 단순화하는 것은 다소 무리한 접근일 수도 있겠다 싶다. 오래 전에 동양을 방문한 유럽인이 조선인과 일본인을 같은 동양인으로 단순화하고 접근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 아닐까?

 

정찰대가 대규모 인디언 마을을 확인하자 커스터는 부대를 셋으로 나눈다. 리노(Reno) 부대는 가장 아래쪽에 있는 인디언 마을을 정면에서 공격하고, 벤틴(Benteen) 부대는 측면으로 진출하며, 커스터의 본대는 능선을 따라 인디언 마을의 반대편 끝으로 이동해서 배후를 치는 작전이었다. 이러한 작전을 세웠을  커스터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은 당시 인디언 캠프의 규모였다. 미국의 최후 통첩에 맞서기 위해 리틀빅혼에 캠핑하고 있던 인디언은 대략 7천명 정도이고   전사들의 수는 1.5-2천명 정도로 추정된다.

제7 기병대의 공격 경로

능선을 따라 이동하면서 커스터 부대와 함께 했던 인디언 정찰병은, 자신이 이제껏 보았던  중에 가장 대규모의 캠프라며, 커스터의 병력으로, 더구나 셋으로 나뉜 상태에서 공격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커스터는 정면 돌격을 감행하는데, 이는 이전에 인디언들과의 전쟁을 통해 얻은 그의 경험에 따른 것이었다.

인디언 캠프를 향한 리노부대의 정면돌격

하지만, 리틀빅혼에 모여 있던 인디언들은 이전에 그가 상대했던 인디언들과 달랐다. 이들은 며칠 전의 로즈버드 전투를 통해 미군을 상대로도 승리를 거둘  있다는 자신감에  있었고, 또한 총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전선을 휘젓는 크레이지 호스와 같은 전투 추장이 있었다. 당시 수적으로 열세였던 커스터가 병력을 셋으로 나눈 것이 리틀빅혼 전투에서 끔찍한 패전을 기록한 원인 중의 하나인가에 대한 논란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리노부대의 퇴각과 인디언 전사들의 추격

본대를 이끌고 능선을 따라 이동하던 커스터는 예상을 능가하는 인디언 캠프의 규모를 확인한 , 전령을 보내 벤틴에게 탄약을 가지고 빨리 자신에게 오라는 메모를 보낸다. 하지만 벤틴은 인디언 캠프 정면을 공격했다가 인디언들의 반격으로 수세에 몰린 리노의 부대를 지원하고 있던 중이었다.

당시 리노와 벤틴은 커스터와 사이가 좋지 못했고, 특히 과거의 전투에서 커스터가 인디언들을 쫓기 바빠 곤경에 처한 동료들을 돕지 않았던 것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고 한다. 결국 벤틴은 커스터 대신 리노를 지원하고, 커스터의 부대원 210명은 다수의 인디언들에게 겹겹이 포위당한  전멸하게 된다.

커스커부대의 최후

리노와 벤틴의 부대도 인디언들에게 포위된 상태에서 버티던 중에  다음날 테리와 깁슨의 지원군이 도착하면서 목숨을 구하게 되는데, 이들 부대도 53명이 전사하는 피해를 입는다. 인디언들의 피해는 100 미만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리틀빅혼 전투지는 리노와 벤틴 그리고 커스터의 부대가 전투를 치른 위치를 시간 순으로 따라가며 살펴볼  있도록 도로상에 안내판이 마련되어 있다.

이들 부대의 위치에서 내려다보는 리틀빅혼강의 경치는 무척 아름답다. 건조한 초원 구릉지대 밑으로 강이 구불구불 흘러가고 강을 따라 푸른 나무들이 우거져 있다. 당시에  강을 따라 1.5마일에 걸쳐 인디언 캠프가 세워져 있었다고 하니 엄청난 광경이었을 것이다. 커스터의 부대가 이동했던 능선 지형은 매우 굴곡진 곳이 많아서, 고지를 확보하고 있다 하더라도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접근하는 상대방을 제압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커스터의 부대는 인디언들의 공격에 쫓기며 능선 고지 위로 몰리면서 전멸당하는데, 이곳에는 ‘마지막 항전 언덕(Last Stand Hill)’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당시 전사자들 대부분의 유해는 이곳에 세워져 있는 기념비 주위에 묻혀있고, 커스터의 경우는 웨스트포인트에 있는 미국 육군사관학교에 묻혀있다고 한다.

리틀빅혼 전투에서는 인디언들이 승리했지만, 결과적으로 대대적인 미군의 보복 공격을 불러오고, 결국 수우족 등은 라라미조약으로 인정받았던 영토의 상당 부분을 빼앗기고 제한된 보호구역 안에 갇혀서 미국의 보급품에 의존해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하지만,  결과와 상관없이  전투는 인디언 전사들의 용맹함과 뛰어남을 미국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커스터는 목숨을 바친 헌신적인 지휘관으로, 크레이지호스는 승리를 거둔 위대한 지휘관으로  같이 기억된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블랙힐즈에 만들어지고 있는 크레이지호스 기념동상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의 이름이 커스터라는 점이다.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겠지만, 이들 영웅간의 인연은  질긴  같다.

 

리틀빅혼 전투 이야기로 어제 있었던 Serendipity 소개하지 못했다.  부분은 내일 마저 하려 한다.

 

내일은 옐로스톤을   둘러보고 시애틀을 향해 출발할 계획이다. 옐로스톤부터 시애틀까지는 800마일(1300km) 거리이니 1 2일의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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