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5월 4주 차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는데, 그때 MBTI는 개론에서 잠깐 언급되고 지나가는 수준이었다. 졸업한 지 10년이 다 되어 수업 내용은 대개 희미하다. 하지만 ‘I와 E의 진짜 차이’에 대한 교수의 말이 아직 기억난다.
납작하게 요약하면 I와 E의 차이는 사람 만날 때 에너지를 쓰느냐 채우냐이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I도 (나처럼) 있다. 다만 I는 사람 만날 때 에너지를 쓰고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채운다. 반면 진성 E는 힘들 때 에너지를 채우기 위해 사람을 만난다고 한다. 힘들어서 사람을 만나다니. 나로서는 상상조차 못 하겠다.
요즘 코로나로 인했던 격리 조치가 많이 풀리면서 약속이 잦아졌다. 그동안 소원했던 친구들의 얼굴을 보며 반갑게 인사하고, 새로운 소식에 놀라고, 축하하고, 위로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동시에 에너지가 점점 방전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이번 주말엔 집 밖에 안 나가고
저전력 모드로 지내야겠다.
요즘 광고업계에선 탈광고라는 말을 많이 쓴다. 신입을 채용할 여력이 안 되는 광고회사는 사람이 안 뽑혀서 걱정이다. 매출은 줄어가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인원도 줄어서 산소호흡기를 단 곳도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요즘 광고주는 광고회사에서 사람을 데려다 안에서 광고를 만든다. 재작년부터인가 슬슬 조짐이 보이더니 썰물 빠져나가듯 광고회사 사람들이 네이버, 카카오, 배달의 민족, 토스를 비롯해 소위 잘나가는 회사들로 옮겨갔다.
그런데도 광고회사에 오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말문이 막힌다. 내가 뭐라고 그 꿈을 막을 것인가. 사실 내가 취업 준비할 때도 광고업계 선배들은 오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래도 광고회사를 꿈꾼다면 한번 도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루지 못한 꿈은 후회가 되니까.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내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액션 영화다. 폭군을 피해 동쪽 오아시스를 찾아 도망쳤다가, 오아시스가 없다는 걸 깨닫고, 다시 돌아와 쿠데타에 성공하는 내용이다. 광고업계든 아니든 지금에 만족 못 하는 사람은 아마 매일같이 동쪽 오아시스를 꿈꿀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광고주로 이직한 선후배의 말을 들으면 거기도 정답은 아닌 모양이다. 물론 잘 맞아서 광고회사 쪽으로 돌아보지도 않겠다는 사람이 있다. 반면 얼마 못 버티고 광고회사로 돌아오는 사람도 있다. 친한 카피라이터 선배는 최근 한 광고를 소위 ‘대박’ 터트리고 핀테크 업계 최상위 회사로 이직했다. 그런 그에게 요즘 좀 어떠냐고 안부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여기도 지옥이야.
오늘도 각자의 지옥에서
힘겹게 싸우는 모든 이를 응원한다.
→ 다시 생각해야 한다 O
→ 생산성을 높이다 O
재고는 ‘두 번 재’가 들어있는데 ‘다시, 한 번 더’ 따위와 함께 잘못 쓰일 때가 많다. 게다가 재고(쌓아둔 물건)나 제고와 발음이 같아 헷갈린다. 그래서 안 쓰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제고'도 안 쓰는 게 좋다.
→ 오스카 상을 받다 O
→ 이번 경기에서 진 사람 O
한자는 다르지만 상을 주는 것도 수상이고 받는 것도 수상이다. '수상한 사람'처럼 의도치 않게 중의적인 표현이 될 수도 있다. 그냥 ‘상을 주다 또는 받다’로 쓰는 게 낫다고 본다. 비슷하게 '패자'도 두 가지 맞서는 뜻이 있어 안 쓰는 게 좋다.
→ 주식을 팔다 O
→ 코인을 사다 O
주식 앱에서 흔히 보이는 ‘매도와 매수’가 나만 헷갈리는지. 부디 바꿨으면 좋겠다. 이는 UX(사용자 경험)를 좋게 만드는 일이다. 글이라고, 특히 ‘문서’라고 어려운 단어를 쓸 때가 많다. 그냥 말 나오는 대로 써보자. 말을 닮은 글이 쉽고 깔끔하다.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휩쓸리듯 9급 공무원을 준비하는 편의점 알바, 작품이 안 나오면 절필하겠다는 배수진을 친 극작가, 깊은 술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영업사원,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려는 엄마와 아들, 그리고 레테 강물을 마신 듯 기억을 잃은 서울역 노숙자까지. 이 작은 줄기들이 모여 하나의 강이 된다.
우리 삶은 강처럼 때로는 깊고 차갑다. 하지만 그 강을 굽어보는 해의 따듯한 시선을 품고 강은 잔잔히 흘러간다. 어스름이 깔리기 전 해를 배웅하듯, 아쉬운 마음으로 마지막 장을 덮으면 덕분에 오늘을 살아낼 용기가 생긴다.
조용한 강의 윤슬처럼
반짝이는 소설.
인스타그램에서 매일 연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