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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움은 보잘것없음의 집합이다

22년 6월 1주 차

by 재홍

놀라움은

보잘것없음의 집합이다

아내가 목단이라는 꽃을 집에 들였다. 탁구공만 한 녹색 봉오리. 그 속에 어떤 가능성이 숨어 있을지 좀처럼 가늠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하얀 꽃이 활짝 터져 있었다. 아침의 고요함을 펑 하고 터뜨린 소리 없는 폭발. 피었다기보다 터졌다는 말이 맞았다.


사람이 보기에 꽃은 폭발적이다. 그 놀라움의 절정에만 우리 시선을 허락한다. 하지만 꽃에는 시속 5밀리미터의 속도로 자신의 한계를 열어젖히는 보잘것없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의 오늘도 이런 놀라움을 향하는 과정이리라.


놀라움은 보잘것없는 시간의

집합이기에.






2년 4개월 만의

관람

며칠 전에 동생 공연을 보러 합정을 다녀왔다. 코로나 때문에 2년 4개월 만에 하는 공연이라고 했다. 오랜만에 라이브를 들으니 노래 실력이 늘었다. 이전에 못 불렀다는 말이 아니다. 가사 한 줄마다 아티스트로서 신향이 느껴졌다.


노래와 글쓰기는 비슷하다. 사는 만큼 쓴다는 말이 있다. 잘 쓰게 된다는 건 기교가 는다는 뜻이 아니다. 자기 삶을 닮은 문장을 쓰게 된다는 뜻이다. 삶의 기쁨과 슬픔, 높고 낮음, 거칠고 부드러움, 예쁘고 못난 부분까지. 신향의 목소리는 그의 삶을 닮아 가고 있다.






적은

적을수록 좋다


습관적이다

-> 습관이다


대체적으로 그렇다

-> 대체로 그렇다


'-적'이라는 말을 쓰면서 무슨 뜻일까 고민해본 적 있는가. '적'이 원래 한글 표현이 아니며 절대 쓰지 말아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고민 없는 '적'은 문장의 군살이라고 생각한다. 뺄 수 있으면 빼는 게 좋다.


정신적 문제, 수평적 관계, 전통적 문화, 근대적 사회, 반정부적 사상


정신 문제, 수평 관계, 전통 문화, 근대 사회, 반정부 사상


'-적'이 들어가면 뜻이 뭉뚱그려진다. 마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반정부 사상이 아니야, 반정부적 사상이야'라고 발뺌하는 느낌이다. '적'을 되도록 적게 써야 문장이 간결해진다.






가짜라도

괜찮아


가짜와 거짓은 흔히 함께 온다. 예컨대 게맛살은 가짜다. 그리고 게맛살에 게살이 들어있는 것처럼 교묘하게 광고하는 게 거짓이다. 하지만 이런 거짓을 걷어내면 가짜는 진짜만큼 순수하다. 기분 좋게 비릿하면서 탱글탱글하고 촉촉한 편의점 안주 게맛살. 가짜인 게맛살에도 진짜 게살이 줄 수 없는 나름의 맛이 있다.


사실 우리가 사랑하는 것 중 많은 게 가짜다. 로마인이 만든 그리스 석상부터 드라마 속 캐릭터, 메타버스에 이르기까지. 진짜보다 가짜가 좋다면, 진짜의 의미는 무엇일까. 인공지능과 인간의 사랑을 그린 영화 "그녀"에서 인공지능 사만다는 말한다.


최소한, 당신의 감정은 진짜예요.




인스타그램에서 매일 연재하고 있습니다.

@jaehong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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