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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흐르는 속도

22년 6월 3주 차

by 재홍

산이

흐르는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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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나는 한강이 보이는 집에 사는 게 꿈이었다. 그래서 신혼집을 구할 때 한강이 한 뼘이라도 보이는 집을 보러 다녔다. 그러다 생각지도 못하게 북한산을 마주 보는 집에 살게 되었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까지 버스로 30분, 소위 ‘강남 접근성’이 경기도 보다 나빴다.


게다가 강과 바다를 좋아하는 우리는 매일 산을 보는 게 지겨워질까 걱정했다. 섣부른 걱정이었다. 나도 몰랐다. 산은 그저 멈춰 있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지켜보는 사람 앞에서 비로소 산은 흘러갔다. 느리지만 더 장엄한 아름다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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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강 같던 여름 산은 어느새 울긋불긋한 해 질 녘 노을빛으로, 적란운 같은 설산으로 바뀌었다. 산의 흐름은 강보다 느릴 뿐이었다.


외투 두께로만 느끼던 계절을 이제 눈으로 보며 감탄하게 됐다. 아침마다 보는 풍경이 바뀌자 심경도 바뀌었다. 산의 속도는 빠른데 익숙한 내 속도를 늦춰줬다. 오늘을 강처럼 떠나보내기보다 산처럼 이 순간에 조금 더 머무르고 싶어졌다.






의미없는

의를 의심하라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 내가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이오덕 작가에 따르면 이 문장은 노랫말을 쓴 이원수 작사가도 잘못을 인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일종의 시적 허용이 아닐까 한다.



그 가게의 과일의 맛은 좋다

→ 그 가게의 과일은 맛있다


우리 집 뒤의 그의 집

→ 우리 집 뒤에 있는 그의 집


직원의 주인 된 회사 문화

→ 직원이 주인 된 회사 문화


이처럼 ’은·는·이·가’를 쓰면 문장이 더 간결하다. 마지막 문장은 ‘직원의 주인이 된 회사’라고 잘못 읽히기도 한다.



문제의 해결은 그 다음의 일

→ 문제 해결은 그 다음 일


빠져도 되는 자리에 의미없이 ‘의’를 넣을 때도 많다.






그의 주먹에서

총소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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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범죄도시 2”를 봤다. 그런데 마동석 배우가 주먹을 휘두를 때 나는 소리가 이상했다. 뼈와 살이 부딪히는 소리가 아니라 공이치기가 화약을 폭발시키는 소리가 났다. 총과 칼을 든 적들은 꼼짝도 못 하고 그 주먹에 쓰러졌다. 과연 K-슈퍼히어로 영화였다.


예상대로 “범죄도시 2”는 천만 관객을 넘겼다. “기생충” 이후 3년 만의 천만 영화다. 이는 마동석 유니버스의 시작일까, 아니면 우리를 골방에서 극장으로 해방하는 소리일까. 무엇이든 간에 그 주먹에서 나던 소리가 신호탄이기를.




인스타그램에 매일 연재하고 있습니다.

@jaehong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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