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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는 한 작별하지 않는다

22년 6월 4주 차

by 재홍

잊지 않는 한

작별하지 않는다


제주도가 고향인 한 지인은 해산물을 절대 안 먹는다고 했다. 처음 그 말을 듣고 나는 웃었다. 제주도 사람이 어떻게 해산물을 안 먹냐. 그는 담담히 말했다. 4.3 사건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 시신이 바다에 버려졌다고. 물고기가 시신을 뜯어먹었을지도 모르니, 그래서 자기네는 회를 안 먹는다고.


1948년 겨울, 사망자 삼만 명

이듬해 여름, 사망자 이십만 명

그중 열 살 미만 사망자 천오백 명


숫자는 비극을 덮는다. 이는 잊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이 비극의 맨얼굴을 보게 만든다. 아니, 비극을 내 일처럼 절감하게 한다. 나는 책을 읽으며 젖니 난 다섯 살배기 막내의 턱과 배를 뚫은 총알 자국을 확인해야만 했다.


눈을 돌리고 싶었다. 잊고 사는 게 편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만 한다. 잊지 않는 한 우리는 작별하지 않기에. 충혈된 눈으로 책장을 넘길수록 하얀 눈이 서서히 섬을 덮어간다. 마치 죽은 이의 얼굴을 덮는 새하얀 멱목처럼.






나는 것과

내는 것의 차이


1995년, 우리말 ‘화병(hwa-byung)’을 미국 정신의학회가 공식 질환명으로 등재했던 적이 있다. 작년 옥스퍼드 사전에 등재된 ‘한류(hallyu)’ 보다 거의 30년을 앞선 일이었다.


요즘은 화병보다 '분노조절장애'라는 말이 흔히 보인다. 그런데 살면서 진짜 분노조절장애를 앓는 사람은 만나기 어렵다고 한다. 보통 약자한테 마음껏 화내고, 강자 앞에서 화를 잘 조절하는 인간이 대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분노조절장애 대신 ‘분노조절잘해’라고 부르고 싶다.


사람은 운전할 때 성격이 나오고, 약자를 대할 때 인격이 나온다. 살다 보면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화를 다스려서 관계를 잘 이끄는 사람이 있는 반면, 화가 나는 대로 내버리고 관계까지 내버리는 사람도 많다. 나는 것과 내는 것에는 이런 격의 차이가 있다.






문장을 망치는

겹조사 표현 1


스타트업은 자본에의 의지라기보다는 오히려 조직에의 의지이다.

→ 스타트업은 자본 의지하기보다는 오히려 조직 의지한다.


‘에+의’, 이렇게 조사를 겹쳐 쓰면 읽기 어렵고 뜻도 모호해진다. 불필요한 조사를 덜어내는 것만으로 문장이 간결해진다.



음악에의 길로 초대합니다.

→ 음악 길로 초대합니다.


상대와의 협력 / 팀장과의 면담

→ 상대 협력 / 팀장 면담


’에’를 뺄 수도 있다. 간결한 문장을 쓰고 싶다면 '에의, 와의, 과의’ 처럼 조사를 겹쳐 쓰는 습관이 있는지 점검해보자.






Too much love

will kill you


에스프레소처럼 새까만 흑맥주도 가끔은 괜찮다. 하지만 나는 맥주에 대해서만큼은 어쩔 수 없는 배금주의자다. 샛노란 라거야말로 진정 액체로 된 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Too much love will kill you'는 진리랄까. 지난 건강 검진에서 위험음주상태 판정을 받았다.


그래서 알콜 섭취를 줄이기 위해 집에서는 되도록 논알콜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알콜은 없지만 라거를 마시는 감각만큼은 더할 나위 없다. 얼음을 넣은 잔에 따라 마시면 그 쾌감은 곱절이다. 차가운 노란 불꽃이 입술, 혀, 목젖을 지지며 식도로 넘어간다. 긴 하루 끝에 금빛 한 잔, 이 사랑은 나를 죽이지 않기를.




인스타그램에 매일 연재하고 있습니다.

@jaehong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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