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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22년 6월 5주 차

by 재홍

파친코 1권: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첫 문장부터 오바마 전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 잡았고,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가 됐고, 윤여정 배우가 출연하는 제작비 800억의 드라마까지 나왔다. 한국에서는 절판되어 중고 책 가격이 서너 배로 뛰었다. 그야말로 지금 가장 뜨거운 책, 파친코.


이민진 작가는 서울에서 태어나 일곱 살 때 미국으로 갔다. 명문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로 일하기도 했다. 파친코는 남편과 함께 일본에 살던 2007년 무렵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미국에서든 일본에서든 그는 평생을 이방인으로 살았다. 한국인이자, 일본인의 아내로서 일본에 대한 그의 감정은 서로 다른 기압의 충돌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게 몸소 겪은 현실이 태풍처럼 그의 문장을 밀어붙인다. 그래서 무겁고 슬픈 주제에도 그의 글은 빠르게 내달린다. 나로선 돛대를 부여잡고 등장인물의 고통이 끝나기를, 동시에 이 흥미로운 이야기가 벌써 끝나지 않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다. 부산 영도에서 출발해 오사카로 온 이 소설의 끝이 어디일지 못내 궁금하다.






토씨 하나

다를 뿐인데


토씨 하나 안 틀리다. 아마 익숙한 표현일 것이다. 토씨는 '은는이가' 같은 조사의 순우리말이다. 그런데 이 토씨 하나를 틀리면 말뜻이 완전히 달라져 버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소개팅하고 온 친구한테 이렇게 물었다. 그 사람 어때? 그러자 친구가 다음 네 가지 중 하나로 답했다.


(다 좋은데) 키도 커.

(다 좋은데) 키가 작아.

(다 별론데) 키는 커.

(다 별론데) 키도 작아.


네 가지 대답 모두 토씨가 핵심이다. 굳이 괄호까지 말하지 않아도 속내를 전달할 수 있다. 단 한 자의 토씨로 이처럼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게 우리말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라는

위로


사람은 누군가에게 이용할 수단이기도, 존재할 목적이기도 하다.


예고된 비였다. 그럼에도 어깨 끝이 축 젖었다. 퇴근 시간 지하철의 벙한 얼굴들. 그들도 누군가를 향해 돌아가는 길일까.


유난히 힘들었던 오늘. 이런 하루의 끝에 문득 고맙다. 우리만의 안식처를 열고 나를 활짝 반겨줄 당신이 있기에.






문장을 망치는

겹조사 표현 2


민주화로의 길목에 서다

→ 민주화의 길목에 서다


고향으로의 귀환을 했다

→ 고향으로 귀환했다


‘로의, 으로의, 에서의’ 같은 겹조사는 주로 글에서 볼 수 있다. 말까지 이렇게 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너무 어색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의 성과에 따라 보상한다

→ 현장의 성과에 따라 보상한다


사회주의 속에서의 개인의 자유

→ 사회주의 속에서 개인의 자유


국회에서의 연설을 통해

→ 국회 연설을 통해


대개 ‘에서’ 또는 ‘의’ 중 하나를 없애거나, 어떤 때는 ‘에서의’를 모두 없앨 수도 있다. 조사를 겹쳐 쓰면 글이 늘어지고 문장의 날카로움이 무뎌질 때가 많다. 겹친 조사 중 하나를 없애는 것만으로 문장이 간결해진다.




인스타그램에 매일 연재하고 있습니다.

@jaehong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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