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2월
하루하루 살아내기란 무수히 생겨나는 미세한 상처를 견디는 일 같다. 다시금 깨닫는다. 그대와 나누는 시답잖은 대화와 마주 앉아 때우는 끼니가 나의 회복력이란 걸. 나도 모르게 내 상처를 아물게 하는 힘이란 걸. 지금 메시지를 보내자. 생각나는 그대에게.
아내는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에 앞서 떨리고 심장이 빨리 뛸 때 '떨리는 게 아니라 설레는 거야'라고 되뇐다고 한다. 최선을 다해 준비한 멋진 결과물을 얼른 선보이고 싶어 너무 설렌다고 말이다. 아내는 내가 아는 사람 중 프레젠테이션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다.
이처럼 면접이나 발표뿐만 아니라 일상에도 떨리는 순간이 있다. 예컨대 고백 같은 일이 그렇다. 너무 떨린다면 그다음 찾아올 멋진 결과에 설렌다고 생각해보자.
모쪼록 설레는 발렌타인 보내시길.
퇴근은 없지만
출근은 칼이고
자신은 없지만
할수 있다 외치고
단합이 중요하지만
경쟁은 당연하고
용기 내면 무모한 사람
생각하면 멍때리는 사람
끼니도 놓치고
밤잠도 설치고
힘들거나
무지 힘들거나
죽도록 힘들거나
어쩌면 이 나라에 태어난 순간
속쓰림은 우리 운명
하지만 분명 있지
속쓰림과 바꾼 것들
꿈, 사랑, 미래, 행복
그래 그렇게 멋진 것들이
그냥 얻어질 리 없잖아
행복하라 대한민국
2013년에 온에어한 내 경력보다 오래된 카피. 그럼에도 촌스럽지 않은, 10년의 세월을 꼿꼿이 견딘 카피. 어쩌면 좋은 카피의 위력은 카피라이터를 두근거리게 하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의 인생만 놓고 따지자면 주위의 인정이 필요한 영웅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의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따지고 보면 세상에는 위선적인 영웅, 가짜 영웅, 세속에 영합하는 영웅이 넘쳐난다. 그러나 스스로의 영웅에는 가식도 허구도 없다. 그 어떤 남의 눈치나 의식 없이 순수하게 자기와의 싸움, 자신과 약속한 결과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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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넘어 외국어를 시작해 4개 국어를 통달하고, 예순 넘어서도 바디프로필을 찍는 서울대 의대 교수. 본인은 겸손하게 '스스로의 영웅'일 뿐이라 자신을 낮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작게나마 용기를 줄 수 있는 것만으로 그는 영웅적이다.
인스타그램 @jaehongse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