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서울여행 #6
적적한 이동수단에서 내렸다. 수 차례 생각들이 부대낀 탓인지, 피곤한 감이 크다. 그래도 혼자서 조용히 해봐야겠다는 게 있었어서, 일단은 숙소 앞 마트로 향했다. 대목을 맞이한 그곳의 분위기는, 육류 코너에 있는 고기들이 열기로 익어버릴까 걱정될 정도였다. 무척이나, 시끄러웠다. 그렇다고 소음이라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단지 귀가 좀 아팠을 뿐. 얼른 서두르겠다는 회피적인 무언가는 없었다.
싸다. 평소에 먹던 가격과 비교해도 확실히. 기분 좋게 두 끼 분량을 샀다. 구이용 소고기 400g이었던가. 소소하지만 가니쉬도 딸려있어서 꽤 만족스러웠다. 이것도 쓸데없는 물질적 허영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 자연스레 들었다. 가치에 대한 기준은 본인이 매겨야만 하는 것인데. 적당한 맛인가, 가격인가, 아니면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은 외관인가. 전부 다 오답이다. 오늘의 정답은, 영양소다. 그나마 죄책감을 줄이면서도, 조금이나마 기분을 내고 싶어서. 그렇다고 고요 찾으러 온 마당에, 같은 값을 주고 닭가슴살을 뜯는 게 더 보여주기식일 것 같은데. 쉽게 납득을 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피로가 몰려왔다. 꽤나 기름방울을 튀길 예정이니, 무거운 몸을 토닥이며 고기를 구웠다. 그냥저냥, 구워진 것 같다. 지금이라면 먹고 바로 누워도 속 안의 것들이 흔쾌히 용서해 줄 것 같았다. 씹는 감도 모른 채 넘기고, 씻고, 누웠다.
아, 너무나도 고요하다. 적막한 암막커튼 덕에 낭떠러지 잠이 들었나 보다. 다섯 시. 토요일 아침이다.
어제는 뒤따라온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문밖에 있을까? 날이 좀 추울 것 같은데. 모르겠다. 포근함에 일단 더 몸을 파고들었다.
좋다. 불과 하루 전에 느낀 가치관의 복잡함과, 이틀 전의 쓸쓸함이 어느덧 요원해진 것 같다. 시계조차 없어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이곳이 너무나도 마음에 든다. '이곳'은 물리적이기보단, 단지 조건적인 면에서 처음으로 충족한 것이니까. 서늘한 행복감이다. 그간 뜨겁고 매캐한 것들로 막혀 있었던 것 같은데, 뚫리는 느낌이 예사롭지 않다.
가장 익숙하면서도 미안한 이들의 대화소리가, 뜨거운 소음으로 다가왔을 때가 스쳐간다. 단적인 불쾌함과 울컥함이 동시에 몰려왔던. 지금은 들리지 않아서 좋다.
보고 싶었던 이에 대한 기대감과 친절을 기억한다. 그러면서 불쑥 내가 건넨 것들을 생각하고, 쪼잔해지기 직전에 필름을 끊는다. 통제 없이 둥둥 떠다니는 것들엔 순수함이 가득이다. 아직까지, 많이 어리다. 그러면서 더 성장하겠지 하는, 속 좁은 주먹을 양껏 쥔다.
혼자서 단순히 걸으면서 듣고, 먹고, 보았던 것들에게서 느낀 희망적인 면들도 지나간다. 알맹이만 남겨두고 인사할 수는 없나. 입맛을 다신다. 멀어지는 것도 익숙하다.
이제는 거의 다 갔나 보다. 모든 소리가 메아리의 클라이맥스에 다다른 것 같았다. 끝무렵인데도 난 급한 등을 떠민다. 들리지 않아도 좋다. 지금은, 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