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서울여행 #5
흠칫 떠올린 다음 목적지를 되뇌며 버스를 탔다. '3호선 매봉역.' 정말 좋은 노래지. 귓가에 멜로디가 흘렀다. 어릴 적부터 떠내려온 내 시간을 지켜준, 소중한 노래다. 조만간 적합한 다른 글에서 다룰 노래이긴 하나. 매봉역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장소로 먼저 다가오지 않는다. 즐겨 듣는 노래 중 하나, 곡 명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그간 서울을 꽤나 왔음에도, 가본 적이 없으니. 덜컥하는 몇 번의 정차 후에 버스에서 내렸다. 아직 다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는데, 어느새 도착해 버렸다. 실제 장소를 두 눈에 담으면 무언가 보이겠지. 흐트러진 생각이 그곳을 바라본 뒤에는 색다르게 바뀔 수 있으니까.
별다른 감정이 들진 않았다. 오히려 다른 역보다 협소한 전통을 가진 것처럼 느껴지는 공간에, 헛헛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무척이나 평범했다. 난 무엇을 기대한 걸까. 어릴 적부터 가져온 그 감성이 녹아든 장소를 방문하면, 특별한 무언가를 느낄 것만 같았나 보다. 이것 또한 하나의 보상심리인데.
얼마 전 지인에게 3호선 매봉역 노래를 추천해 줬다. 노래가 너무 좋다며, 즐겨 듣겠다는 답장이 돌아왔다. 그러고선 나는 오늘 처음으로 매봉역에 방문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오, 하는 감탄사와 함께 어떤 느낌인지 알려달라는 궁금증이 돌아왔다.
'낭만을 따라서 왔는데, 별다른 느낌은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좁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역이네요.'
이런 느낌으로 답장을 한 것 같다. 그 이후로는 더 이상 매봉역에 대한 이야기는 나누지 않은 것 같다. 단지 서로의 플레이리스트에, 즐겨 듣는 곡으로만 남아 있을 뿐.
역 구경을 마치고, 여기서 저녁이라도 해결하자는 심산이었다. 버스에서 봐 둔 꽤나 만족스러운 후기의 중식당을 방문하기로 했다. 이런, 오늘이 날이긴 날인가 보다. 인터넷상 영업 중이라는 표시와는 다르게, 문이 닫혀 있었다. 섭섭한 안내문구도 없이.
작은 한숨과 함께 다시 발길을 돌렸다. 더 어질러진 생각이었지만, 정리하기에는 더욱 열의가 솟았다.
보상심리. 평소에 가장 경계하려고 했다. 으르렁대는 어제의 허무감이, 아직까지 나를 따라오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결과는 내 감정과 마음을 해치게 되니까. 그렇다고 맞닥뜨려야만 하는 장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감정적 회피는 아니었다.
단지 어느 것을 기대하면, 어떠한 결과든 담담하게 받아들이자는 태도였다. 꼭 만나 뵙고 싶던 사람을 볼 수 없었어도. 기대했던 풍경이 너무나 평범해도. 쌓은 설렘보다 더 흥미로운 미식 경험이었어도. 한쪽만을 기대한 고요가 아님에도. 너무 들뜨지도 말고, 더욱 괴로워하지도 말자고. 다시 내려오고 올라갈 것이기에, 감정의 변화는 당연한 것이고 영원할 수 없으니까. 무겁게 싣는 기대감과 패배감은 더욱 짙은 후유증을 남기는 법이기에.
그렇지만 나는 꽤나 섭섭했고, 들뜸에 흥얼거리지 않았는가. 처음 맞는 고요라서 일시적으로 감정의 벽이 얇아진 걸까. 아니면 두터운 마음을 소유한 나라고, 착각한 내 오만인 걸까.
그래도, 즐겁다. 흥겨움이 떠오른다. 깊게 신뢰하던 내 가치관에 의문을 가진다는 건 항상 재밌는 일이다. 똑같은 상황을 경험해도 그때마다 기분이 달라진다. 그런데 고대했던 장면에 뛰어든 나에게 새로운 물음이 던져졌다. 항상 긍정의 결과를 바라는 욕심과, 절대 다 이뤄질 수 없다는 사실을 모두 인지하는 사람인데도. 아, 얼마나 크게 휘청거릴까? 이에 대한 답은 지금의 내가 만들어내고 있으니.
알면서도 겪으면 새롭다. 돌아가는 발길은, 무척이나 어두웠다. 실제로 눈을 감고 있었다. 수 차례의 덜컹거림에도 흔들림은 없었다. 그 시간만큼은 밤하늘을 정면으로 바라보고자 했다. 내 감정은 어디로 흘러가고 싶은 걸까. 이미 내놓아진 기대 이하의 결과에서, 등에 업은 시간과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