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서울여행 #08
포근했던 하루가 다 지나갔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순식간이었다. 하지만 빠른 만큼 완연한 고요의 시간이었다.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잠깐 머무르다 떠날 공간이라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어느덧 이 공간에서의 생활도 끝이 다가오고 있다. 끝이 정해져 있다면, 밀려올 감정에 대비는 하되 후회는 남김 없도록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자는 가치관이 손을 흔든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일요일을 등에 업고 일찍이 숙소를 나섰다. 오늘은 거의 10년 만에 보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고등학교 이후로 항상 서울에 있었기에, 가끔 연락만 닿을 뿐 만나지는 못 했었다.
그나저나 서울역도 처음 가보는구나. 매일 버스로만 다녀서, 역에 들릴 일이 하나도 없었다.
역 근처의 버거집에 도착해서 잠깐 기다리다 보니 친구가 도착했다. 오랜만에 봐도 변함이 없다. 아니, 인물이 더 좋아진 거 같기도 하고.
어색하지 않은 인사 뒤에 시킨 메뉴가 나왔다. 대학교와 군대가 비슷한 노선이라고 한다면. 그 이후의 5년은 각자만의 색다른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게 서로의 보따리를 풀었다.
친구는 대학교 졸업 후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간간이 들리던 소식에도 정말 열심히 달리던 친구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경외감이 들었다. 사업이라니. 한 번도 꿈꾸지 않은 영역이라서, 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번엔 내 이야기였다. 졸업 후 아울렛에서 시작해서 브런치 작가도 되고, 인턴 생활에 이전의 직장까지. 참, 정말 긴 시간 같았는데 이렇게 나열하니 볼품없어 보인다.
친구도 나랑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까. 손사래 치며 이야기한 것에 비해서 친구는 자신이 부끄러워진다고 했다. 너 되게 열심히 살았다는 말을 건네받았다. 흠칫하는 기분이 들었다. 분명히 칭찬인데, 좋은 기분으로 이어가기 싫었다. 왜일까. 그만한 칭찬을 들을만한 일이라고는 정말 느껴지지가 않아서. 괜한 우쭐함은 결국 독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도 칭찬에 대한 산뜻함이 밀려왔다.
자기가 살아보지 못한 길에 대해서는 디폴트가 존중인 것 같다고, 내가 말을 이었다. 친구가 걸어온 길은 경외감이 든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태한 예술가의 길을 걷고자 하나, 현실에서 끊임없이 타협점을 찾는 내 경우에서는. 그 책임감과 열정이 멋있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친구는 내 말에 깊은 공감을 하는 듯했다. 특히 내가 가지고 있는 문과적 감성이 부럽다고 했다. 현실에서의 타협점 말고도, 그건 네가 가진 장점이자 무기이니까. 자기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참 부럽다고, 요즘 들어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서로의 눈에 비치는 길에는 자신만의 경탄이 담겨 있어서 그런가. 오랜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그렇게 다음 일정이 아쉬울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를 떠나보내고 돌아가는 길에, 역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글작가가 꿈이라고 했을 때, 좋은 소리만을 들었던 것 같다. 이 점이 참으로 좋기도 하고,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더욱 갈증이 일었다.
그때마다 똑같은 사색이 찾아왔지만, 지금은 꽤 가볍게 털어 넘겼다. 또 잠겨봤자 바뀌는 건 없으니 말이다. 아까 더욱 성공해서 높은 곳에서 보자고 했던 서로의 다짐이 스친다. 그러곤 진중한 웃음을 흘겼다.
그래. 어차피 이룰 단순한 고요보다는, 높은 곳에서 만끽하는 적적한 공기가 훨씬 달콤할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