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서울여행 #09 (完)
스스로를 관철할 수 있는 친구와의 만남을 마친 뒤의 숙소에는 아쉬움들이 가득했다. 떠날 시간만이 남았으니까. 깔끔하게 걸린 옷가지를 마음에 들어 하는 하얀 옷장도, 생필품이 정돈된 테이블도, 포근한 매트리스도, 그리고 나를 따스하게 감싸주는 이 소중한 공간까지 모두. 내일이 되면 작별을 해야만 한다.
시야에 잡히는 곳곳의 아쉬움들과 짧은 나날의 회포를 풀다 보니, 나도 모르게 미련 많은 잠에 들었다.
마지막 날의 아침은 비슷하게 눈이 떠졌다. 원래의 복귀 일정은 점심을 먹고 여유롭게 돌아가는 것이었다. 만족스러운 숙소에서 가장 달콤한 때의 고요를 즐기고자 했었는데. 어제저녁부터 서울에는 폭설 주의보가 내렸다. 한두 번 안내 문자를 받다 보니 덜컥 걱정이 앞섰다. 복귀 후 당장 중요한 가족 일정이 있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급한 제동을 걸었다. 그렇게 부랴부랴 변경한 아침 10시 복귀 버스, 어쩔 수 없는 것을 알지만 무척 아쉬운 것도 당연한 마음이었다.
짐을 챙기는 것은 물론이고, 방의 대부분을 신경 써서 청소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잔잔하게 머물었던 만족감과 고요에 깔끔한 마무리를 짓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렇게 분리수거와 모든 정리를 마치고, 덤덤하게 숙소를 나섰다. 아쉽다. 다음에도 홀로 서울을 만끽할 일정이 생긴다면, 또 오고 싶은 그런 곳이라고. 후한 평가를 뒤로 한 채 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숙소 너무 좋았어요, 조용히 잘 머무르다 갑니다.'
호스트에게 체크아웃 메시지를 남기고는 역을 향해 걸어갔다. 눈이 내린다. 길거리에 쌓이진 않았어도, 꽤 꾸준한 기세로 나에게 하얀 풍경을 보여줬다. 고향에서는 내리는 눈을 생생하게 본다는 건 정말 귀한 광경이라서. 돌아가는 마음이 더욱 허무해졌다. 마치 이러한 내 마음과, 떠나지 말라는 이곳의 붙잡음이 펑펑 내리는 것 같았다.
터미널에 도착하는 건 또 왜 이렇게 빠른지. 쓸쓸한 짐을 싣고, 의자에 허탈한 몸을 묻었다.
모든 불확실과 일상의 예민함이 싫증이 되어 다가온다는 건, 지쳤다는 뜻이었겠지. 상경할 때 당시의 마음은 복귀 후 내 모든 감정과 생각을 다 기록하겠다고 굳게 다짐했었다.
막상 지금에서는 그러고 싶지가 않다. 그때에 느꼈던 감정과 사유는 고유하지만, 복기한다고 한들 절대로 다시 느낄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무엇보다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몹시도 그립다, 그 짧은 비행이. 그래서 이 아련한 한 구석은 잘 간직하려고 한다. 언젠가 내 낭만과 갈망이 모두 충족되어, 그때의 기억에 미련 한 톨 남지 않았을 때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