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던져진 주사위의 순간

by 훈자까

어느 순간에나 나는 주사위를 던진다.


다각도로 회전하며 연이은 충돌을 대비하는 모습은 나와 똑 닮아있다. 그의 고통은 당연한 것이지만, 이제는 아랑곳 않고 높은 숫자가 나오기를 기도한다.


어느새 손금은 다 닳아있다. 하지만 난 매 순간 끊임없이 점을 친다고 할 수 있다. 빙그르르 도는 그의 모습에서 어두운 표정을 본 것 같다. 지금에서야 겉으로 티는 나지 않겠지만, 최상의 결과를 바라는 마음 아래에는 항상 죄책감이 자리하고 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측은한 눈동자였다. 그의 시선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동정받는 기분에 울컥해 다시 힘껏 그것을 움켜쥐었다. 다양한 모서리가 갈라진 손금을 파고든다.


따끔한 기분이 몰아친다. 주먹 안이 부르르 떨린다. 그의 눈빛에는, 안쓰러움이 더욱 서린다. 나는 어김없이 좋은 결과를 향해 발버둥을 쳐야만 하는 걸까.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의존이니 숭배니 하는 건 끌리지 않는다. 그러면 처절하고 나약한 나 자신이 단단해지고 강해질 수 없을 것 같아서.


따닥. 소리와 함께 정지했다. 그도 함께 시선을 멈췄다.


나는 세뇌된 듯이 숨을 헐떡거렸다. 어떤 숫자가 나온 것일까. 흐리멍덩한 시야에서 확인된 것은 소소한 기둥이었다.


깊은 곳에서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나를 가로막는 저 기둥이 혐오스럽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어떤 숫자에 관계없이 나오는 감정은 결국 인위적인 것이라고. 그래서 나는 그를 미워하지 않는다. 초연하게 대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나 자신일 테니.


그는 나를 처음부터 응원했을 것이다. 왠지 아련해진다. 고개를 들어 마주한 그의 모습에 눈앞이 차츰 흐려진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무르익은 아쉬움만을 남긴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