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밤하늘을 잘 바라보지 않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세밀하게 본 때가 아마 강원도에 있을 때였나. 당시는 지루함의 끝을 달래려고 별길을 찾았던 것 같다. 옆의 웃음기 많은 동료와 말이다. 그 장면만은 꽤 괜찮았는데.
빛과 먼지를 무분별하게 먹어치우면서, 어느 순간에 난 커졌더라. 그러더니 별이 거의 보이지 않더라. 한낱 깜깜하기만 할 뿐. 그때부터 고개를 드는 일이 자연스레 사라졌다. 어차피 보이지도 않으니, 볼 필요도 없지 않겠냐면서. 내가 빛나서인지, 아니면 먼지들로 가려진 내 몸뚱이인지, 혹은 빛공해나 대기오염일지도. 그 이유에 있어서.
어릴 때부터 사람의 눈에는 보석이 박혀있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색상이 있고, 모양도 다르며, 바라볼 때의 깊이와 무게도 다르다. 정말 그럴싸하지 않은가. 마치 별처럼 말이다.
이를테면 보석은 우리에게 별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단면이지 않았을까. 그 시기에만 보여줄 수 있고, 바라볼 수 있는. 어느 순간에 휙 하고 꺼져버려서, 다시는 볼 수 없는 별빛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마치 지금의 별들이 사라진 하늘처럼 말이다.
아직까지 내게 담겨있는, 강렬한 별빛을 바라본다. 어떤 때이든 그 빛은 나를 이끌어주는 구원이 된다. 절망의 끝에 내몰려 먼지더미에 스러지기 직전에도 당연한 듯 손을 잡아주고, 틈틈이 행복한 때에는 더 큰 밝음과 고마움을 그 별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당연한 듯이. 그리고 그 별은, 지금의 하늘에도 찬란히 빛나고 있다.
그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별이었더라. 난 뿜어대는 줄도 몰랐는데, 스스로 먼지에 갇힌 때였다고 회상하는 순간에도. 자신에게 빛을 보여줘서 고맙다고 하더라. 그게 그렇게 큰 고마움이었을까. 사실 난 정말 상세히까지는 기억이 나진 않는데도. 그만큼 소소한 격려였다고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를 비췄으나, 당도하지 못했던 수많은 별빛을 생각한다. 실제로 할 수 있는 게 없었음에도. 내가 그러지 않고 싶었음에도. 비춰준 것에 감사한들, 눈을 피했을 때도. 안타까움이 남는다.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후회가 가능하게 된 것이지만, 앙금과 여운을 두려워한 그때의 나에게 조소를 남긴다.
물론 나 또한, '별이었던.'이 아니라 별이 되고 싶었던 수많은 기억들이, 갑작스럽게 범람한다. 처음부터 닿지도 않을 것이었거나, 오히려 그 사람의 눈을 멀게 했을지도. 화끈한 부끄러움이 치민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그랬었기에 더 맑아진 현재가 있는 것이니.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역설에 욕심과 안타까움이 잔존하는 것에는, 그 이유가 있는 것일까. 확정을 할 수도, 잡히지 않는 허상이자 완벽으로도 치부할 수 있겠다.
먼지 한 톨의 빛줄기를 흘리지 않을 수는 없으니. 지금은 그저 조금 더 아름답게 비추고, 더 차분히 바라볼 수밖에. 지금 흐릿해지고 어둠에 숨은 수많은 별들이, 또 어느 순간에 밝아질지 모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