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는 어린이, 학생분들께만 상용되는 질문인 줄 알았다. 하지만 요즘엔 다들 대학교에 졸업하고 괜찮은 회사, 직장에 들어가는, '일반적인' 루트가 꿈 아닌 꿈같았다. 그들의 진정한 꿈은 무엇이고, 무엇이었을까. 나도 대학교 졸업 후 당장의 백수가 두려워서 작은 회사에 '일반적으로' 입사했다. 내 꿈을 숨긴 채로 말이다.
"훈 씨는, 꿈이 어떻게 되세요?"
근무 중 다른 직원분이 호기심 가득한 눈치로 나에게 여쭤보았다.
꿈이라. 나는 어릴 적 워낙 소심했던 성격 탓에 가족의 따뜻한 보살핌 안에서 살았다. 그래서 진로라는 걸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중학교를 졸업할 나이가 되어 주위 친구들의 진학 결정을 보고선 큰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나와 항상 붙어 지내던 친구들이 각자 다른 전공의 고등학교를 지망한 것이다. 그들은 꽤나 열정을 가진 듯했다. 반짝이는 눈빛으로 꿈에 대한 얘기를 했고, 텅 빈 내 눈망울에 열기를 가져다 놓았다.
그래서 가져본 꿈이 작가였다. 난 성격이 소심하니까, 말은 잘 못해도 글로써 내 생각을 표현하자. 고등학생 때 수많은 공모전에 지원했고 생각보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주위 사람들의 인정과 함께 자존감은 격한 떨림으로 차올랐었다. 꿈을 위한 진로로 국문학을 설정했고 설레는 마음으로 대학교에 진학했다.
설레는 마음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캠퍼스 라이프에 대한 로망을 안 가져본 이가 있을까. 당장의 눈 앞에 두근거리는 사람들은 꿈을 잊어버리기에 충분했다. 내 마음에 꿈으로 향하는 문은 거미줄이 쳐졌고, 나는 스스로 자물쇠를 걸어 잠갔다. 당장의 캠퍼스 생활이 영원할 줄만 알았다. 그렇게 착각하고 싶었다.
어느덧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교 4학년이 되었다. 당시 세상을 덮친 불길하고 서린 파도에 나도 휩쓸렸었고 자택에서의 수강은 나에겐 백수나 다름없는 기분을 안겨다 주었다. 물론 다른 이들이 자택에서 수강한다고 하여 많은 활동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흔히 말하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라고 해야 할까. 1년만 있으면 대학교 졸업인데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 잡생각이 많아지자 머리는 아파왔고, 수렁에 점점 더 빠져들고 있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생각에 빠져 혼자 놀기가 일상이었던 나에게 간만의 외출이 생겼다.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한 입 물고는 친구와의 대화가 시작됐다. 친구는 꿈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다. 친구는 내가 생각하기에 지인 중에서 가장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대답은 나에 대한 근황으로 이어졌다.
"곧 졸업인데, 요즘 글 쓰는 건 어때?"
창피했다. 자신을 속이고 걸어 잠갔던 꿈이 나의 속을 바늘처럼 찔러왔다. 나는 머쓱하게 웃어넘겼다.
"그냥 그렇지, 뭐. 하하."
오랜만의 저녁 약속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 마음속, 소심하게 다가가 녹슨 꿈을 다시 열었다. 열띤 친구의 모습에서 동경을 느껴서일까, 아니면 대비되는 볼품없는 내 모습을 느껴서였을까. 아마 둘 다 일지도 모른다. 꿈은 초라한 모습이었지만 부둥켜안고 다시 해보겠단 다짐을 맹세했다.
그렇게 1년.
"저는 작가가 꿈이에요, 작가 지망생이죠. 대학교를 덜컥 졸업하고 작가 지망생이라고 하고 다니기엔 너무 불안했거든요. 솔직히 허울만 좋은 백수잖아요."
내 꿈을 전해 들은 직원분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하, 그래서 전공이 그쪽이시구나. 저는 바리스타가 꿈이에요. 사실 카페에서 일을 하는 게 제일 좋지만, 아직 공부할 것도 많아서 입사해서 겸사겸사 하고 있어요."
꿈에 대한 얘기가 나오니 서로 꽤나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평소 느꼈던 상대방의 분위기와 이미지, 그리고 꿈이 합쳐져서 그 사람에 대한 새로운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았다. 상대방도 나에게 비슷한 걸 느꼈던 걸까. 꽤 흥미로운 대화였다.
지금 내가 속한 회사뿐만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회사에서 열심히 근무하는 이들의 꿈은 무엇일까. 무표정하게 출근하고 하루하루 퇴근만을 바라보며 일하는 이들의 마음 한 켠에는 아직 식지 않은 꿈이 타오르고 있지 않을까.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은 명확히 다른 부류니까 말이다.
저번 주 금요일, 이미 두세 번 탈락하여 기대감이 극히 적었던 브런치에서 연락이 왔다. 점심시간 알람을 보고선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소중한 글 기대하겠습니다."
속에서 환호를 질렀다. 스스로 너무 불안정한 꿈이라고 생각했는데, 앞날에 출발선이 그인 것 같았다. 이제 달리기만 하면 돼.
평소 SNS 게시물을 거의 업로드 안 하는 나인데 오랜만에 소식을 전했다. 많은 이들의 축하와 응원을 받았고 그간 노력했던 것에 대한 보상을 받은 기분이었다. 그중 한 친구의 연락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이젠 진짜로 훈 작가님이네. 안녕하세요, 작가님."
장난기 담긴 짧은 문장이었지만 뭉클한 기분을 느꼈다. 친구도 내가 작가가 꿈이라는 걸 익히 알고 있었고, 작가라는 명칭을 듣고 싶어 하던 소망을 알고 있었기에 이렇게 보냈을 것이다. 행복한 기분을 감추지 못한 채 친구에게 팍팍 티를 냈다. 친구에게 만간에 밥 한 번 사겠다는 연락과 동시에 말이다.
작가가 선정된 이후 첫 글까지 꽤 여유가 있었는데, 먼저 다른 작가분들의 글을 만나보고 싶었다. 다양한 카테고리로 매거진을 형성하여 각자의 생각과 삶을 그려내는 모습이 정말로 아름답게 비쳤다. 작가, 나에게 가슴 두근거리는 직업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