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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 작가 Oct 01. 2022

행복을 찾아서

생각 노트 #21

 더위와 선선함이 고집스러운 줄다리기를 하는 건지, 정겨운 일상을 바라서 일상을 길게 늘어뜨리는 건지 모르는 날이 찾아왔다.


 별다른 사건이 없어도 생각은 멈추지 않는 내 시계는 어떤 케이스에 담겨있는 걸까.




 원초적인 독립을 원했으나 혼자서 살아본 적이 없는 나에게 부모님이 계신 집은 항상 부담감이 끼어있는 안식처였다. 혼자일 수 있었으나 익숙하게 받아온 것을 뿌리치지 못했고, 그럴 용기조차 없었다. 무엇보다 방탕하고 무책임한 즐거움만 쫒은 어린 날들은 마치 명색만 가득한 내 자존심과 다름없었다.


 그런데 요즘 어깨를 짓누르던 돌덩이가 바스러진 듯했다. 무거운 느낌은 사라지고, 검붉은 흉터만이 남아있는 것 같다. 부모님의 웃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어서, 좋으며 편안하다. 그리고 부쩍 나에게 의지하시고 신뢰를 많이 주시는 듯하다. 이제야 철이 좀 든 것일까. 아니면 항상 외면해왔기에 지금에서라도 깨달은 나인가.




 물 한 잔 하기도 바쁘고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의 지독하게 바쁜 업무가 나를 잠기게 했다. 눈을 제대로 뜨기도 힘든 짠 알갱이들에 정신이 혼미했었다. 같은 상황에 놓인 사무실 사람들의 장난기 섞인 푸념 한 술에 풉하며 공감 가득한 웃음을 흘렸다.


 그래, 처음의 불안감은 많이 사라졌구나. 근무 시간에 있어 항상 나를 의심하는 동시에 확실한 신뢰를 세우려는 노력이 뒷받침했다. 이것도 조금은, 아니 부쩍 편안해졌나 보다.




 제일 친한 친구는 거의 무휴일에 가깝게 일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 분기의 바쁜 기간이라서, 공휴일이건 주말이건 '아마도 일을 할 것 같다.'는 문장만을 반복해서 말하는 게 안쓰러웠다.


 동시에 나는 다행이라는 이기적인 생각과 동정심이 함께 찾아왔다. 연달아 일주일에 한 번은 만나 술잔을 기울였던 때가 떠올랐다. 뒤돌아보면 다 추억이라지만, 그때는 확실하게 조금 행복했었다. 그래 왔었고 항상 그럴 것이라고 소망했었으니까. 물론 지금 또한 그리움을 꽉 쥐고 다시 그리고 싶어 한다.




 이전보다 많이 여유가 생겼다. 안정적이기도 하다. 순탄하게 흘러가는 게 어색한 느낌을 가져다준다. 일상이 편안한 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느 누구는 그게 돌이켜보면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행복했던 장면을 뽑으라면 세 손가락을 피기도 힘든 난 욕심이 그득한 걸까.




 여유가 생기니 무엇보다 행복하고 싶다. 무의미하게 흘러갔던 때에도 출렁이며 나를 옥죄였던 갈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때는 약과에 불과했다.


 내가 행복하려고 생각했던 최소한의 조건들이 갖춰지니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는 것 같다. 끊임없이 속에서는 행복을 위해서 움직이라고 부담 가득한 지시를 내린다.


 그만큼 이성을 꾹 다잡고 인간관계에 대한 욕심을 공허한 저 바다에 내던지게 됐다. 어차피 돌아올 것이 뻔하지만 일단은 내던져야 하지 않겠는가.




 미치도록 행복하고 싶다. 불행을 표상으로 세워 음울한 기운만 가득한 내 감성의 구덩이가 한층 더 깊어졌다. 


 우울하고 허탈한 포장도로를 덤덤하고 무표정하게 끝까지 달리면 그곳에는 바라는 것이 있을까. 행복이 나를 반겨줄까.


 인생, 실은 행복을 감싸 가시덤불 가득한 불행처럼 보이는 이야기일까, 아니면 평탄하고 가벼워 보이지만 불행이라는 제목을 가진 영화일까.


 두 가지 다 섞여 제대로 무엇하나 정립할 수 없는 흩뿌려진 조각들이라 해도, 애초부터 맛볼 수 없는 과육에 눈짓만 지독하게 흘깃하는 소설이라고 해도.


 나는 행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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