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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 작가 Sep 17. 2023

여정이거나, 혹은 과정이거나

생각 노트 #28

 '인생은 하나의 치열한 경주다.'


 많이 들었고, 실제로 끈적하게 체감한 것이기도 했다. 소위, '스펙업'을 위한 공부를 열심히 한 것은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하기 싫은 건 도저히 잡지 못하는 성격이었기에. 천성을 거부하고 아집을 부리면 온몸이 저렸고, 부정적이고 짙은 회색의 것들이 순식간에 나를 속수무책으로 만들었다.




 비록 싫은 것을 감추고 노력하는 재능은 없었지만, 나에게는 다른 이들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었다. 그들의 일렁이는 형상은 서로를 존경하고 시기하며 자신의 몸집을 키우려고 세상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설사 같은 사람까지도 말이다. 


 우직한 한계를 위한 어려운 길보다는 등 뒤를 찌르는 쉬운 길을 택한 이는 길게 울면서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딘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하나의 인간성이 저무는 모습이 이어졌다. 그때부터 그 존재는 나에게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니 끝없이 늘어선 순례자들의 길이 보였다. 가장 혹독한 산등성이를 향한 여정임에도 질서 정연하게 한 발짝씩 떼어가는 이들이었다. 마치 기계공정처럼 무심한 듯 뜨거운 보폭이었다.


 저렇게 힘들고 숭고한 길인데도 빽빽한 과포화를 자랑했다. 끝없이 팽창하나 절대 터지지는 않는, 마치 공경을 받으려면 이 정도의 부피가 적당하다고 모두가 용납하는 경이로운 집단 같았다.


 하지만 저 길로는 갈 수가 없었다. 두 팔이 저릿한 게, 가다간 또 '하기 싫어.'라는 구차한 생각만 입력될 테니 등을 돌렸다.




 대신 가장 넓고 가장 많은 이들이 있는 산책로를 달리기로 했다. 마치 바다 같은 이곳은 수많은 개성 있는 이들이 지금도 지나치며 달려가고 있다.


 산등성이처럼 한눈에 담기는 꼭짓점이 존재하지는 않았다. 좁아지는 길이 보이지 않기에 더 마음 놓고 달릴 수 있는 것이지 않을까. 불확실이 가져다주는 불안감은 미지의 영역에 대한 기대감도 동반했다.


 그렇게 낮밤을 머리로 외다가 까먹었을 때를 지나 반복에 시간이 무뎌졌을 무렵이 되었다.




 이제는 적당한 선에서 뛰는 게 일상이 되어 숨쉬기가 한결 편해졌다.


 이 생활에서 슬로라이프라는 이야기도 참 많이 들었다. 그러다가 한 미디어에서 나를 관통하는 문장이 있었다.


 '레드불만 넘쳐나는 시대에 캐모마일 차 같은.'


 참으로 이 시대적인 비유가 아닌가 싶었다. 절대적인 관념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비교할 수 있으니 또 한 번 관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의 내 생활이 누군가에겐 경주이고 또 다른 이에겐 슬로라이프지 않을까. 하루마다 방출하는 일정량의 수분은 미적지근한 물일까 카페인과 타우린의 집합체일까.




 날고 싶고 빠르고 싶지만 위험하여 무섭다. 느리고 뒹굴거리고 싶지만 그 공허함이 무섭다. 하지만 차근하게 보폭이 넓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어쩔 땐 날기도, 또 한순간엔 겨울잠을 자기도. 모래알처럼 소집되는 사람의 과정이니까.


 특별하려고 노력하는 평범한 사람의 여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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