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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자까 Sep 27. 2024

어떤 생존의 존립

생각 노트 #38

 삐그덕. 저어기 저, 삭막한 길 위에 회색들이 지나간다. 잠시 멋쩍은 듯, 누군가를 멈춰 세우자, 욕망을 일궜다. 무언가를 물어봐야만 할 것 같은, 갈망이자 운명론이 머리를 스쳤다. 결국에는, 아니. 결단코. 흐물거리는 누군가가 내 앞에 멈춰 선 듯했다.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단지 앞길을 막는 살덩이를 치워버리고자 함일까. 머뭇하다가.


 "당신의 생존에는 어떤 이유가 있고, 뜻이 담겨 있을까요?"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노이즈가 낀 것처럼 지직, 지지직. 하는 방해소리와 함께 고개가 삐그덕하니 돌아갔다.


 세차게 휘젓는 듯했다. 확실하게 조소를 머금은 얼굴이었다. 무안해하는 내가 이제는 귀찮다는 듯 그는 암울한 전경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헤드라이트, 번쩍이는 전광판, 화려한 시계, 깔끔한 옷가지, 굴러다니는 냉장고들, 고층의 시체탑들까지 모두가 회이자 흑이었다. 뒤돌아본 내 세상의 잔여물들이자 끝없는 욕망의 샘이었다.


 인터뷰한 회색의 생존만큼도 지니지 못하는 현실은 그 크기와 대비되게 안쓰러운 욕망을 지금도 건설하고 있다.




 시야가 멍울멍울이다. 가지각색으로 협소하고 파괴적인 동그라미들이 현실을 가린다. 방금 전의 공상은 어느 때의 내 세상이었을까. 음, 세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단지 무수한 욕망으로 점철되어 나를 보호하는 백혈구일지도 모른다. 언제 암세포로 둔갑할지 모르는.


 온몸에서 멍울이 내린다. 차라리 관찰되는 푸른 점들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끈적하게 나를 감싸며 끝없는 속삭임을 부추긴다. 나락으로 떨어지라고. 어떠한 감정의 부유든 너는 누릴 권리가 있다. 암흑이거나 바다이거나, 도리어 하늘이라도. 억지로 치켜세우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걸어온 고행길은 도저히 쓸모가 없어 보이니, 이제 내려놓아라.


 땀방울들이 세차게 낙하한다. 시건방진 웃음이 터졌다. 이제서는 도저히 들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던 저 시시덕거림이 몹시 야릇하고 반가운 인사로 느껴진다. 낙하하는 이들의 표정에 환희가 가득하다. 그들은 마치 광소한 천사들과 같다.


 지금 당장의 고행에 무게를 올렸다. 큽. 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팔이 후들거린다. 이어서 진실된 미소가 다시금 떠오른다.


 그리고 다시 한번 되뇐다. 욕망은 이루고 싶되, 생존을 가당케 하는 것은 나 하나의 떳떳한 존립이다. 녹은 솜사탕처럼 엮여오는 달큰한 불순물에 대한 철저한 배척은, 나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움이다.


 또 한 번의 참회에 회색 사진이 찢어진다. 흐물거리는 나는 결코 존재해서는 안된다. 설사 현란한 무지개의 도시가 다가온다고 한들, 비통함에 가치를 담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 인간밖에 안 되는 존재일 텐데, 욕망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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