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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자까 Oct 28. 2024

누구에게나 열매는 맺힌다

감수성이라는

 감수성은 열매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든 열매를 맺는다. 누구나 내면과 배경을 가지고 있고, 알맞은 형태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다. 열매의 모양은 오로지 자신만이 관찰할 수가 있어서, 어떤 생김새를 가졌든 간에 아름답고, 사랑스러울 것이다.


 조그마한 씨앗의 형태로 존재하던 것이, 어느 순간엔가 누구도 모르게 몸집의 크기를 부풀려간다. 자신을 심어준 그 사람의, 뿌리를 아껴준 세계가 무언가에게서 성찰을 얻었나 보다. 어느덧 싱그럽게 익은 열매 앞에는 그이가 서있다. 안타깝게도 열매를 먹지 않는 선택지는 없을 것이다.


 열매의 섭취는 온전한 감정의 흐름이다. 사람이기에 감정의 향유는 필수적이다. 한 입 베어문 표정이 알 수가 없다. 매 순간 반복되는 감정의 종착에서 누구든 행복을 찾는다. 맑은 하늘 아래 놀이동산의 한복판, 여기서 맛보는 솜사탕의 감성을 원할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번 건은 조금 떫은 듯하다. 표정이 찡그려지는 것을 보니.


 우물거리다 꿀꺽 삼키니 배가 조금 찼다. 솟아난 이 양분으로 나는 끄적이고, 또 스크래치를 낸다. 고고한 예술혼을 갈망하는 어린아이의 낙서처럼 말이다.




 나의 배경은 줄곧 밤하늘이라고 생각했다, 별이 잠들어 있는. 평소에는 껌껌하니 잠잠하다가, 한순간에 밝아져 빛이 모인다. 그러고는 뚝하고 떨어진다. 모양은 아마 사과를 닮은 것 같다. 은색을 띈 나의 열매는 양손 품에 안겨 인사를 건넨다. 내려다본 별빛이 참 둥글다.


 음미한 감정은 일순간에 나를 바닷가로 이끌었다. 항상 밤이라서 몰려오는 파도의 크기를 알 수가 없었다. 단지 쏴아하는 소리와 함께 급류에 몸을 맡길 뿐이었다. 똑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매번 크기와 횟수는 달랐던 것 같다. 방파제랍시고 옛 경험들을 여기저기 쌓아두었는데, 느낌에는 별반 차이가 없었던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이 무르기도, 감성적이기도 한 증거일까.


 바다를 다 삼킨 나는 눈을 떴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방금의 별빛은 사라져 다시 어둑함이 내려앉았다. 문득 밤하늘에 한 방향을 뒤쫓는 바람이 분다. 혼자만의 시간이 충족되어 이제는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나 보다. 막상 혼자 있어야만 열매를 맺으면서도, 이 녀석은 항상 다른 이의 세상을 궁금해했다. 열매의 양분은 확실한 호기심이었다.


 그렇게 또 한 번 방문을, 현관 밖을 나섰다.




 나는 사람을 관찰하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혹시 당신의 배경과 열매를 설명해 줄 수 있을까요?'라는 괴팍한 물음을 던질 수는 없었다. 급격히 썰렁한 분위기에 사회성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기는 꺼려지니 말이다.


 그래서 서로 간의 잔잔한 분위기와 대화를 즐겼다. 대화를 하면서 눈앞의 사람의 배경과 열매를 유추할 뿐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일은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가령 친한 지인 중 한 명은 단풍잎이 소복하게 쌓이는 가을 배경을 지녔다. 그런데 일반적인 선선함을 지닌 계절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다. '따뜻하고 포근한 가을'이어야만 했다. 내 눈에는 그렇게 비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지인은 천진난만하니 생글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또, 손에는 단풍색을 가진 붕어빵 모양의 열매를 쥐고 있을 것만 같았다. 어떤 앙금이 든 지 몹시 궁금해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지인을 쌀쌀한 겨울에 만났던 추억을 되네어도, 그때마다 따스한 가을의 조각이라고 착각을 하곤 한다.

 



 사람을 만나는 게 좋은 것은 달콤함이 깃든 열매가 탄생해서인가 보다. 특히 익숙하고 좋은 이는, 매번 나에게 맑은 감정을 선사해 준다. 그리하여 추억들은 밤하늘 아래의 숲에 액자로 걸린다. 그리고 감수성이 찾아와 울적함을 느낀다고 해도, 자연스레 나는 비친 액자를 상기시킨다.


 그래서 이렇게 글에 진득하니 담기나 싶다. 순수한 우울이 멀어지는 길에는 호기심이 있었고, 과육이 채워지는 곳에는 좋은 이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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