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발모어책방 Feb 21. 2020

윤리적인 일

내가 하는 일과 이를 둘러싼 단상


지난 1월은 이례적으로 매우 바빴다. 한국에서 돌아오자마자 일거리들이 휘몰아치기 시작했고, 급기야 Canada로 이동한 Senior의 클라이언트들까지 받게 되며 일은 폭주했다. 물론 나는 오후 4시 15분이면 퇴근하지만...


"저도 종종 뭐한다고 설명을 듣는데 잘 모르겠더라구요"


아내가 나의 일에 대해 묻는 사람들에 대해 주로 하는 첨언이다. Digital Analyst는 아직 한국에서는 생소한 포지션인 데다 아내의 말처럼 정확히 뭘 하는지 알기 어려운 면이 있다. 쉽게는 데이터 분석가라 할 수 있지만 또 Data Analyst가 영국에서 의미하는 바와는 조금 다르다. 그래서 주로는 이렇게 풀어서 설명한다.

 

웹사이트나 앱에 들어오는 사용자가
무엇을 하는 지를 분석해서
그들이 더 쉽게,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하는 일을 합니다


흔히 업계에서는 'Funnel'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사용자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최종적으로 상품을 구매하는가. 이 깔때기 같은 것을 통과해서 사용자가 상품을 사거나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관련 데이터를 visualisation 하고 분석하는데 많은 공을 들인다.



우리 팀 Director인 Doug은 그런 생각에 반대한다. (내가 좋아하는 그의 생각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사용자는 우리가 가라고 한 곳으로 가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 마음대로 웹사이트를 다닌다.
그래서 정형화된 Funnel이 아니라
어떤 다양한 Touchpoint를 통해
그들이 하고자 했던 바를
달성하는 지를 봐야 한다


실제로 사용자의 데이터를 분석하면 정형화된 패턴을 가지기 어려울 때가 많다. 사용자가 정의된 Funnel만 통과하면 좋겠지만 다양한 동기에 의해 touchpoints들에 반응하고 각자의 목적을 달성한다. 그래서 많은 경우 데이터는 위와 같은 Funnel보다는 Sunburst 같은 형태로 표현하기가 더 쉽다. 그 이유는 이 곳을 방문한 동기와 그 정도, 이성적인 이유, 잠재적 무의식 등의 혼합된 양태가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일은 그들의 근본적인 동기를 바꾸는 게 아니라 더 쉽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이유와 동기를 추가 및 강화해주는 일이 된다.


윤리적인 데이터, 그리고 일


글이 너무 긴 것 같아 따로 뗐지만, 중요한 것은 이 데이터는 어쨌든 그 사용자의 privacy이다. GDPR, ITP, Chromium80, IDFA 등 올해를 뒤엎은 키워드는 그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최대한 사용자의 privacy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마켓이 가고 있음을 말한다. 작년에 관련해서 진행한 프로젝트 하나를 HQ에 소개하는 슬라이드를 만들 때였다. 제목을 한참 고민하다 이렇게 지었다.


"How to collect ethical data in Google Marketing Platform"


어떻게 구글 마케팅 플랫폼에서 '윤리적인'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을까. 도덕책에서나 볼 법한 제목이지만 이것이 내가 발표한 자료의 제목이 되었다. Machine Learning, AI 등 사람 냄새나지 않는 것 같은 업계 속에 살고 있지만 우습게도 우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윤리- 오늘날 추상적이고 상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 단어는 흥미롭게도 Doug이 Super Week에서 GDPR과 Cambridge Analytica에 대해 발표할 때 한번 썼던 개념이기도 하다. 그는 발표 전에 회사에서 먼저 공유하면서 동료들의 피드백을 받았는데, 아무도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영국 특유의 문화도 있겠지만..) 오히려 자기 학부 때 부전공이 윤리였다는 둥, 이제 업계가 옳은 방향으로 간다는 둥. 사실 자신들이 하는 일에는 분명히 불편한 점들이 더 생기는 것인데 다들 싫어하지 않고 오히려 약간은 반기는 것을 보며 흥미로운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은 그렇게 보편적인 개념들에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과 권위를 부여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그래도 어떤 경계선을 늘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이 조금 더 가치 있었으면 하고, 때로는 나의 이익과 다르더라도 그것을 추구하려 한다. 그러나 그것은 종종 현실이라는 것과 충돌한다. 학부 때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살고 싶었다. 내가 가진 지식이 조금 더 낮은 곳을 향했으면 했고, 그것은 그래도 그 시골 학교의 가르침 중에 몇 안 되는 진실된 것 중 하나였다. 그래서 나뿐만 아니라 많은 졸업생들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윤리적인 일'을 하고 싶어 했던 다수는 그런 것과 무관하게 생각되는 '돈을 버는' 직업을 얻고 사내 경쟁에 내몰리며, GA Client ID처럼 익명화된 숫자 및 문자로 회사 내에서 인식되는 허무함을 경험한다. 그렇다면 NGO는 나을까. 내가 그랬듯이 가치가 수단이 되는 합리화를 경험할 수도 있고, 낮은 연봉에 좌절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이제야 조금 윤리적인 일을 하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아니, 정확히는 그런 환경에 놓은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크게 모두가 우와할 만큼 이타적인 삶은 아니지만, 내 목소리를 내며 말이다. 한 번은 회사에서 엄청난 트래픽과 매출이 발생하는 성인 웹사이트를 클라이언트로 삼을 기회가 있었는데, 모두에게 투표를 받았다. 사실 그 회사에서 우리에게 나올 매출을 생각하면 무조건 받아야 했는지 모르지만, 회사는 모두에게 조금 다를 수 있는 윤리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줬고 나의 의견도 그 안에서 받아들여졌다. 이 윤리적인 데이터가 자신이 좀 불편해지고 힘들어졌어도, 그게 옳은 것이라며 믿는 사람들 속에서.


* 이 글은 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 MightyHive Inc. 및 ConversionWorks Ltd. 의 의견이 아님을 밝힙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