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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모어책방 Mar 19. 2020

영국이 코로나에 대처하는 법

좋은 기업, 나쁜 정부, 이상한 시민사회

영국 살면서 한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연락받을 일이 몇 없는데 그 모두가 지난주에 있었다. 아직까지는 큰 일 없다 보니 연락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했는데, 이번 주부터는 돌아가는 상황이 조금은 심상치 않다. 프리미어리그가 중단됐고, 영국 총리가 delayed phase로 넘어간다고 선언했다. 몇 무리의 과학자들은 delayed phase에 대한 우려를 표했고, 결국 Imperial College의 연구팀이 이러다 25만이 죽는다 보고하자 부랴부랴 정부는 적극적인 확진자 검사에 응하는 모습이다. 약 2주간 영국은 그렇게 우왕좌왕하는 분위기 속에 오늘은 사망자가 한국을 넘어선 104명이 됐다. 일일 확진자는 650명을 넘어서며 런던 락다운이 논의되는 등 분위기가 급격히 바뀌는 모습이다.


나쁜 정부


(출처: Guardian)

브렉시트를 사실상 국민들의 마음속에 심었고, 최종 완성하겠다는 보리스 존슨 총리는 많은 이들에게 처칠과 같은 이미지로 비친다. 상대적으로 전임 총리였던 테레사 메이가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보였고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보리스 존슨은 벼랑 끝 협상 전술로 EU (특히 독일)과 싸우며 브렉시트 완성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의 반응도 결국 존슨의 협상 전술이 통할 거라 예측하며 파운드 환율도 작년에 비해 많이 올랐다. FTSE 100 지수도 12월 선거를 기점으로 상승하며 기대심리를 보여줬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는 이런 존슨 정부에 대한 평가를 바꿔놓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주 화요일만 (10일) 하더라도 총리는 프랑스, 스페인이 락 다운된 상황에서 손만 잘 씻으면 된다 했다. 이런 분위기가 반전되기 시작한 것은 금요일 (13일)이었는데 프리미어리그 아스널의 아르테타 감독이 확진됐고 레스터시티의 선수들도 확진 판정을 받으며 리그 지속을 하려던 프리미어리그가 중단되어 버린 것이었다. 이어 보리스 존슨은 기자회견을 통해 손 씻기, 외출 자제를 권장하는 공공보건 캠페인 등을 통해 정점을 여름으로 미루겠다는 계획을 발표한다. 문제는 발표 당일 이미 일일 확진자가 200명을 넘어서며 급증하는 추세였다는 점이다.


결국 Imperial College의 Neil Ferguson 연구팀은 적극적 대처가 없이는 25만이 사망할 수 있다는 모델링 결과를 발표한다. 이에 충격을 받은(?) 정부는 적극적으로 억압 전략을 펴겠다는 발표를 내놓는다. 이처럼 영국 정부의 대처는 한 발 늦고 일관성이 없다. Guardian에서 평가했듯이 이런 위기를 관리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국 정부와 대조되는 부분인데, 더 강한 봉쇄를 했어야 한다는 점은 개인의 견해에 따라 평가가 다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각국 언론과 정부에서 롤모델로 삼고 있는 실정이다. 강경화 장관의 BBC 인터뷰는 좋은 반향을 일으켰고 정부의 투명하고 즉각적인 대처는 중국과는 대비되는 사례로 조명되는 편이다. 영국은 그 사이 뒤늦게 학교들을 폐쇄했다.


특이한 것은 시민들이 이러한 정부를 딱히 크게 비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뭐랄까. '그래, 너희는 너희 할 것을 하고 우리는 우리 할 것을 할게' 랄까. 기대치가 높지 않다기 보다는 한국처럼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더 강한 것 같다. 일종의 공동운명체처럼 정부의 권고안을 잘 수용하고, 공유하고, 업데이트 되는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각자의 자리에서 필요로 할 경우 더 적극적인 액션을 취한다. 야당도 딱히 이 국면을 활용해 정권을 바꾸려 하거나 이득을 보려 하지 않는다. 한국의 정치권과 다소 대비되는 모습이다.


좋은 기업


개인적인 경험으로 생각되긴 하지만 영국 기업들의 대처는 흥미롭다. 우리 회사는 정부가 delayed phase로 들어가기 전에 지난 금요일부터 유럽 대부분의 오피스를 폐쇄했다. 2주 전에는 희망자에 한해 집에서 일할 수 있도록 했고, 1주 전부터는 집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의 환경과 회사에서 지원할 항목들에 대해 조사했다. 이는 건축 쪽에서 일하는 아내나 다른 회사들도 비슷했다. 덕분에 나도 2주 전부터는 집에서 2일 정도는 일해왔고 위험에 상대적으로 덜 노출될 수 있었다.


Waitrose, Tesco, Sainsbury 등을 비롯한 유통업계는 식료품의 안정적 공급을 위한 협의를 정부와 가진 후 이를 실행에 옮기고 있고, 손세정제의 수급에 문제가 생기자 Brewdog 같은 맥주 만들던 회사들은 손세정제를 만들어 공급을 시작했다. Pret a Manger 국립 의료기관인 NHS 스탭들에게 무료 음료와 50% 할인을 제공하겠다고 했다.


약간의 지난 글에 대해 업데이트를 하자면 우리 회사의 WFH 문화에도 작은 변화들이 생겼다. 매일 stand up meeting을 통해 개인 별로 간단히 자신의 업무를 브리핑한다. Project Management tool인 Asana도 더 열심히 관리할 것을 요구받고 Slack 채널도 더 활발해졌다. 다만 학교가 이제 폐쇄되기 때문에 모든 집이 육아와 일을 병행해야 해서 어려움이 생기고 있다. 다만 사회적으로 모두가 같기 때문에 이를 용인하는 분위기가 있다. 다음은 아내의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아내: (재택근무와 관련한 회의 중) "근데 집에서 일하면 아이를 봐야 하는데 어떡하지?"


대표: "어쩔 수 없지 뭐..." (자기도 똑같음)


해본 놈이 제일 잘 안다.


이상한 시민들


영국 살면서 가장 어려운 질문 중 하나는 "영국 사람들 어때?"이다.


하아...어렵다. 왜냐하면 한국 사람들과 다르게 스펙트럼이 매우 넓기 때문이다. 비교적 한 언어와 민족 구성을 지켜온 한국과 다르게 영국은 이민자들을 대거 만들기도 했고 (i.e. 미국, 호주) 이민자들을 대거 받아들이기도 했다 (i.e. 인도, 식민지). 따라서 '대학 가서 좋은 회사 취업해야지'라는 식의 한국의 stereo type이 영국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각자의 삶이 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이 사태를 향한 반응도 각양각색인 것 같다. 유럽의 다른 지역이 그렇듯 사재기는 심각한 문제이다. 우리 동네는 상대적으로 덜 심한 것 같은데 런던만 하더라도 휴지, 세정제뿐만 아니라 식료품까지 사재기가 극심하다. 우리 동네도 세정제는 진작 동이 났고, 휴지 > 밀가루 > 달걀 순으로 동이 났다. 사람들의 공포가 심해지면 아마 냉동식품도 곧 다 동이 나지 않을까 싶다. (*업데이트. 3월 20일(금) 기준으로 우리 동네 Waitrose도 신선제품이 동이 났다. 야채는 없고 닭고기도 다 나간 상황. 흥미롭게도 휴지는 재고가 들어왔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인종차별이다. 나 역시 처음 중국에서 문제가 시작될 때 공항에 장모님을 모시러 갔다가 내 앞에서 기침하며 지나가는 아이들을 본 적이 있고, 몇 번 기차역에서도 그랬다. 돌아보니 이것은 정말 약과였던 듯 싶다. 런던 Oxford Circus에서는 폭행을 당한 싱가포르 학생이 있었고 내 지인들도 출퇴근 길에 여러 불편한 시선들과 위협을 감당해야 했던 것 같다. 무지는 종종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무지를 빙자한 천박한 인격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흥미롭게도 거리는 그다지 한산하지 않다. 여전히 나이 드신 분들은 카페에서 커피와 차를 마시고 있고 동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즐기시는 분들도 있다. 지난 주말 경마 이벤트 (영국은 Racing이 매우 고급스러운 취미이다)가 열린 Cheltenham Festival에는 6만이라는 사람이 몰렸다. 동네 펍이 문을 닫아서 슬프다는 프랑스 사람이나 햇살이 좋으니 나와야 한다는 독일 사람이나. 마스크도 쓰지 않고 돌아다니는 이 동네 사람들을 한국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출처: MBC screenshot)


나의 관찰자로서의 시점은 이들에게는 특이한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좋은 말로는 여유, 나쁜 말로는 허세. 이들은 곧 죽어도 그 여유를 즐겨야 한다. 이 바이러스가 창궐한 시점에 밖에서 즐기는 여유가 근거가 없지는 않다. 실외 공기 중에 전파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고, 오히려 실외 활동은 면역력 차원에서 권장된다. 아파트 문화가 아니기 때문에 외출 시 복도나 엘리베이터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마스크는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것에는 효과적이지만 방어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마스크는 환자만 쓰는 것이란 문화적 기제도 작용한다. 그래서 동네에 마스크를 하고 돌아다니는 사람은 중국 유학생들 뿐이다. 남들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 같은 이들에게도 그들만의 지키고 싶은 이미지가 있다. 다만 그것이 우리의 것과 다를 뿐이다.


반면 어떤 이들은 바이러스 대처와 관련한 최근 뉴스들과 대처법을 공유한다. 정부의 늑장대응과 관련한 BBC 기사를 공유하고 사람들의 경각심을 환기시킨다. 페이스북에 그룹을 만들어 동네에 있는 사회적 약자, 노약자들을 위한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 우리 동네에도 새로 생긴 이 그룹엔 수많은 사람들이 가입하여 자신이 도울 수 있는 범위와 지역을 공유하고 있다. 이 그룹에서는 기본적으로 노약자분들이 외출하여하기 힘든 쇼핑부터 처방전 수령 및 의약품 구매까지 지원하고 있다. 우리 아이의 가정 어린이집 선생님 (childminder)의 경우에는 아이들의 픽업이나 방과 후 활동을 돕겠다고 올렸다. 바이러스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마을 내 상점들을 지원하자는 목소리를 내고, 개인 사업자들을 소개한다. 더 개인적으로는 자신에게 남는 화장지를 필요로 한 사람에게 flowing 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 동네 그룹의 경우 관리자가 이탈리아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런 영국 사람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기로 결심했다. 또는 잘 모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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