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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모어책방 May 11. 2020

참회록

락다운 속에서 아이와 시간 보내기

아이를 키우는 일은 매일 참회록을 한 줄씩 늘리는 것과 같다. 좋은 아빠이고 싶은 내적 갈망은 게으름과 나태함과 끝없는 갈등관계이다. 요즘 같은 때는 더욱 그렇다. 영국에서 락다운이 시작된 이래로 우리의 일상도 더욱 분주해졌다. 아내와 나 모두 일이 바쁜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덕분에 아직 두 살이 되지 못한 아들을 일을 하며 보기는 쉽지 않아 졌다. 그래서 하루를 반 나누어 교대하듯 일과 육아를 병행한다. 다행히 회사에서 이해를 해주긴 하지만 일이 바쁠 때는 조금 버거울 때가 있다. 아내는 요 몇 주 새벽에도 일어나 일을 했다. 아이가 뒤척거리면 깼다가 바로 잠들지 못하고 밀려있는 일을 했다. 나도 오전에 아이를 보다 보면 슬랙과 이메일에 이런저런 메시지들이 쌓여간다. 그 메시지를 보느라 핸드폰을 보다 보면, 아이는 내 앞으로 달려와 자신에게 소홀한 아빠에게 뭐라뭐라 잔소리를 한다. (이제는 아이가 그런 나이가 됐다.) 그런 아이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우면서도 미안함이 커진다. 덕분에 나는 어느 것 하나 그리 집중하지 못하는 것 같아 또 미안해진다.


아이가 일찍 일어나는 경우는 정말 하루가 길다. 6시부터 아직 졸린 눈을 비비고 아이와 거실에 내려와서 앉으면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 누웠다가 아이가 놀자고 해서 일어났다가. 겨우 아침으로 빵과 커피를 먹고 좀 정신을 차렸다가.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전화를 했다가. 또 아이랑 책 보다가 그림 그리다가. 겨우 점심 즈음 아내가 내려오면 일하러 올라가서 점심도 안 먹고 일하다가. 저녁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를 씻기고 내려와서 청소하고 나도 좀 씻고 하면 밤 10시. 아빠로서 육아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영국에 사는 큰 혜택 중 하나이지만, 한국에서 일도 열심히 하면서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아이들과 놀아주는 친구들이 대단하다고 느낄 때도 많다.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반복이다.


아이는 이제 우리의 말도 조금씩 알아듣고 스스로 말을 하려는 노력을 많이 한다. 요즘은 동물, 자동차, 공룡 스티커를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데, 당연히 아직 상호작용이 잘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정확히는 내가 이런저런 소리를 내며 인형극을 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한다. (약간 관객 모드다.) 소리를 내는 것에는 나름 자신이 있지만 그것을 꾸준히, 반복적으로 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하루에 핑크퐁 소방차 스티커를 갖고 불이 나고 끄고를 40번쯤 반복하다 보면 내 눈에 불이 나서 타는 듯하다. 아이는 반복적으로 하는 것을 덜 지겨워 하지만, 아이보다 35살 많은 나는 연신 하품으로 반복을 대한다. 대학 때 선생님은 반복이 내공을 기른다고 하셨는데. 나의 반복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이다.


다른 것을 시도해보려 하루에 하나 이상씩 새로운 놀이도 시도해 보지만, 우리 아들은 너무 창의적이라 아빠가 정해주는 룰 따위는 관심이 없다. 스스로 해석해 잠시 놀다가 사라진다. 그것이 뭔가 박스를 자르고 붙이고 나름 공을 들인 일이라면 힘이 빠져 드러눕게 된다. 그리고 누워서 저 멀리 혼자 쓸쓸하게 앉아 놀고 있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면 또 마음이 안쓰러워진다. 아마 일하는 아빠 엄마라면 공감할 것이, 세상에 가장 슬픈 풍경 중 하나는 아빠 엄마가 일하러 나간 뒤 낯선 아이들 사이에서 혼자 놀고 있는 우리 아이의 뒷모습이다. 나는 하릴없이 바로 일어나 슬픈 뒷모습을 한 아이에게 다가가 다시 반복이 주는 침묵 사이로 빠져든다.


(영화: 어바웃 타임의 한 장면)


그렇게 참회록을 쓰던 어느 저녁, 익숙한 그림이 떠올랐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어바웃 타임'의 어떤 장면. 시간을 거슬러 돌아갈 능력을 얻은 아들과의 마지막 조우에서, 아버지는 자신의 마지막 남은 큰 비밀 하나를 이야기해준다.

오늘 하루를 다시 똑같이 살아보는 것


쉽지 않았던 오늘 하루를 다시 살아보는 것. 그리고 찬찬히 내가 놓쳤던 순간들을 다시 돌아보는 것. 주인공 Tim은 후에 시간을 거슬러 가지 않아도 매 순간을 소중하게 다시 보내게 됐노라고 고백한다. 그것은 분명 특이한 경험이다. 반복되는 일상임에도 굳이 다시 돌아갔을 때 같은 풍경이 달라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나 역시 영화에서의 그 조언을 따라 가끔 시간을 돌아간 것처럼 살 때 훨씬 더 여유 있어지고 조금 더 웃게 될 때가 있었다. 모두에게 즐거울 수 없는 오늘 하루를 다시 사는 이 반복이 왜 그런 여유를 가져다줬을까. 심지어 시간을 거슬러 갈 능력이 없는 우리에게도 말이다.


그것은 반복이 아니라 회고였기 때문이다. 반복을 위해 인내했던 것이 아니라 회고하기 위해 한 템포 멈춰 섰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아이를 볼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었다. 아이와 보내는 오늘은 내가 반복해야 하는 무언가가 아니라, 다시 찬찬히 살펴볼 아이의 볼에 떨어지는 햇살과 꺅꺅하는 웃음소리를 붙잡아야 할 회고적 순간임을. 너무나 부드러운 아이의 살결에 입 맞출 수 있는 더없이 좋은 나날임을. 내 목소리에 아이가 집중할 인생에 몇 없는 순간임을. 아내가 종종 말하듯 이렇게 이쁘고 고운 아이의 지금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기에. 나는 다시 나의 롤모델이기도 한 영화 속 아버지의 조언을 따라간다. 언젠가 아이가 Tim처럼 이런 아빠와 함께 했던 순간들을 너무나 그리워하길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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