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내일 당장 이별하게 된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롱디(Long distance) :
해외 취업이나 유학, 지방 근무 따위로 서로 멀리 떨어져 살면서 하는 연애.
롱디의 사전적 의미. 오랫동안 해외에 머무는 이들에게 ‘롱디’는 언제나 친근한 주제가 아닐까. 그러니 이렇게 사전에 롱디라는 말이 정의가 내려져 있겠지. 단순한 지역과 지역의 개념이 아니라 나라와 나라. 대륙과 대륙. 그리고 다른 시간 속에서, 계절 속에서 서로를 붙잡아가며 살아 가는 것은 어떤 것일까.
배낭여행을 하다 보면 새로운 곳에 대한 ‘앎’을 채워 나아가는 것이 꽤나 중독성 있다. 새로운 ‘앎’의 대한 범위는 꽤나 포괄적이다. 그리고 그 범위를 넓혀나가는 과정을 여행을 통하여 경험하는 것 같다. 어느 날,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던 중 숙소에서 알게 된 Y는 저녁자리의 대화에서 외국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과 연애를 해보고 싶다 나에게 말했다.
Y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혹은 새로운 ‘앎’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말 정도일 테다. 그 말 뒤에 숨어있는 것들이 얼마나 무거운지 그때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경험자인 나는 그 무게를 어느 정도 가늠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나 역시 그것에 관해 무지함과 다를 바가 없었다. ‘롱디’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그 사랑의 무게는 당사자들이 결정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쉬이 날아가는 깃털 같은 존재가 될 수도, 거친 태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바위가 될 수 있다. 결국 그 무게는 그들이 결정할 테다.
간혹 파리에서 롱디로 힘들어하는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는 누군가에게 늘 죄인이었다. 꿈이라는 이유로 선택한 삶이었지만 그 길 위에 서있는 날 만나게 된 상대방에게는 선택 아닌 선택이 되어버렸다. 주변에서 결국 본인이 선택한 일이니 서로 잘 감내하라는 말을 들으며 속상해하는 그에겐, 나는 늘 미안하고 죄 많은 사람이었다.
퇴근하고 마중을 나가는 일. 그 손을 잡고 거하지 않는 저녁식사를 하며 하루의 소소한 일들을 묻는 일. 그리고 소화할 겸 동네의 공원을 산책하고 주말에는 사람이 많아 못 가는 카페에 들려 차가운 아메리카노와 라테를 한 잔씩 놓고 서로를 바라보는 일. 그리고 너의 집 앞까지 조심히 데려다주는 그런 사소한 것들을 특별한 일처럼, 기념일처럼 해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작아지게 만들었다. 그래서 365일 주어진 상황에서 늘 최선을 다하였다. 거친 태풍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무겁게 사랑을 나누었다. 그 탓에 이별 후 그 무게는 여전히 나의 한편을 짓누르고 있다.
롱디라는 것 에 거창한 것은 없다. 서로 사랑하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적어도 누군가의 롱디에 반대하지 않는다. 나머지 문제들은 그들이 겪어나가며 성장하는 거름으로 삼을 수 있으면 되었다. 그걸로 충분하였다. 여전히 그렇게 생각한다. 롱디가 무엇보다 힘든 것은 이별을 늘 염두해두고 호흡하며 살아가야 한다. 당장 내일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니 서로의 마음을 잘 품어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지. 그렇지 않으면 본인들이 결정해 둔 무게는 곧장 그들을 짓누르게 될 테다. 그러니 적어도 그 무게 정도는 견뎌낼 마음의 근력이 다른 시간 속에서 서로를 붙잡으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