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보통날
‘원문에서 이탤릭체로 강조된 부분은 방점으로,
대문자로 강조된 부분은 고딕체로 구분했다.’
해가 바뀐 후의 첫 다짐은 책을 꾸준히 읽는 습관을 가지는 것. 대학원에서 논문을 쓸 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양이 많지 않은 것 같았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권. 한 달에 4권의 책을 읽기로 다짐했다. 책을 평소 많이 읽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권수는 아닐지 몰라도 평소의 읽는 양의 갑절을 늘리는 것이니 우선 이 정도로 시작하기로 한다.
연말이 되면 자연스레 약속이 늘어난다. 그런 종류의 핑계를 대고서야 겨우 시간을 내 보는 친구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누군가는 결혼을 했고, 또 누구는 직장을 옮겼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 속으로 다짐한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었다. 누군가 앞에서 내뱉아야 새해 다짐을 지키기 위한 강제성이 생긴다. 이야기를 들은 지인들은 다짐이 며칠이나 가겠나 핀잔을 주면서도 그 후 몇 권의 책을 선물로 보내었다.
그중 프랑스 인이며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앙투안 볼로딘'의 ‘미미한 천사들'. 들고 다니며 보기 좋은 크기의 이 책의 서두는 ‘일러두기’ 항목이 있다. 별 내용은 아니지만 책을 읽기 시작하는 사람에게 이해를 돕고자 친절히 적어둔 고작 몇 개의 단어, 짧은 2줄의 문장이었다. 오랜만에 본 ‘일러두기’라는 페이지가 새삼 따스하다 생각들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단 한줄의 문장이라도 누군가의 고뇌가 고스란히 녹아져 있다는 것을 공감하게 되었다. 짧은 한 문장을 밤새 고민하다 겨우 마침표를 둔 사람이 있을 것이며 수십 장의 원고지임에도 몇 시간 만에 거침없이 적어 내려 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글이라는 게 그 사람을 꽤나 닮아 무심히도 종이 위로 새겨지는구나 라는 것을 종종 느낀다.
우리가 시작할 때.
‘일러두기’라는 페이지가 있었더라면 어떠하였을까.
전화를 하고선 먼저 끊지 말 것.
나란히 걸을 때는 항상 오른쪽에서 걸을 것.
바쁘더라도 전화할 때는 집중할 것.
밤늦게 일이 있으면 일이 있다고 말할 것.
지친 하루의 일과를 잘 들을 것.
부모님께 안부 자주 드릴 것.
이기적으로 생각하지 말 것.
사람들 앞에서 감정관리.
휴대폰 충전 잘할 것.
마음을 자주 표현할 것.
이런 것을 알아가는 시간 속에서 행복했으니 되었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결국은 아니었던 것 같다. 과거의 후회는 그에게 떠났던 마음의 여행 같은, 흐릿해진 기록 같은 것이지만 이 맘 때가 되면 떠오르는 것 같다. 기나긴 겨울이 지나 해가 머무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지면서 따스해지는 계절. 이제 고작 하나의 계절을 보냈으니.
조금의 계절이 더 지나면
천천히 서로를 이해하고
잊고, 잊혀 가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