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이라는 한 단어 속에는 외로움이라는 의미가 나란히 적히게 된다. 단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항시 같이 다니는 단어들이다. 어딘가에 떠 오르지 않고 꾸준히 검색되는 나의 글 중 하나는 유학과 외로움의 상관관계를 적은 글이다. 그리하여, 일월의 파리라고 하기엔 햇살이 거리 위로 넘쳐흐르는 오늘 같은 날에도 외로움 속에 파묻혀 헤어나지 못하는 당신을 위한 글을 조금 적어보려 한다.
이제 햇수로 8년. 짙은 노을이 지던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파리로 와 살기 시작한 뒤로 지나친 해의 숫자. 그러다 보니 이제는 유학이라는 단어를 마냥 쓰기에는 어색해진 나이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처음에는 이곳의 말을 잘 모르던 탓에 길거리의 간판을 읽는 것이 수고스러운 일이 되었고 슈퍼에서 콜라 하나 사는 것도 심호흡을 크게 한 뒤 계산을 하곤 하였다. 비행기라고는 제주도 갈 때 타본 일이 고작이었던 사람이 처음 국제 편을 탄 것이 십여 년간 살게 될 나라로 떠나는 기나긴 여행이었으니 당연했던 것일 수도 있겠다. 떠나기 전 날. 어머니는 혹시 모르니 다리미를 챙겨가라 하셨다. 먼 나라까지 가서 옷까지 구깃구깃 입고 다니면 체면이 안 설 수도 있으니 깔끔하게 옷을 다려 입고 다녀라며 어디선가 가지고 오신 뒤 나의 이민가방 한 편에 넣어주셨다. 더 놀라웠던 사실은 나조차 프랑스에 물을 넣어 사용하는 스팀 다미리가 있을까 생각하며 어머니의 생각에 수긍하였던 것이었다. 이 정도로 타지의 삶에 대하여 등한시하였던 그때의 내가 경유하는 아부다비에서 환승은 또 무사히 한 것이 새삼 놀랍기도 하다.
우여곡절로 시작하게 된 프랑스에서의 유학이 8년 차가 되었다. 언제 10년이란 시간을 꼬박 채우고 한국으로 돌아갈까 생각했었는데 고작 2년 채 남지 않았다. 그 많아 보이던 나의 시간들이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모르겠다. 유학의 이야기는 너무나 광범위하여 한 글에 다 적을 수 없으니 천천히 적어 내려 가려한다.
가장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지금도 가끔 문제가 되곤 하는 외로움이다. 오래 살면 주위에 사람도 많지 않으냐 하지만, 불쑥 찾아오는 그것은 어쩔 수 없다. 도시나 나라마다, 또 개인마다 차이는 있지만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에 유학을 오게 되면 아무래도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문제는 그 길어진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까 많이 생각했었다.
처음에는 취미를 가졌다. 나에게는 조깅과 사진이 취미가 되었다. 넉넉하지 않은 주머니 사정을 알면서도 덜컥, 카메라 하나를 인터넷으로 주문하였다. 프랑스 중부의 비시라는 도시에 살 때였는데 주변에 있는 것이라고는 넓고 넓은 공원과 또 자연이었다. 도시 중심가를 다 누비는데 나의 걸음으로 십 분이면 충분할 정도로 작은 도시였다. 그러다 보니 도심보다는 공원에 가는 시간이 더 많았으며, 집에 있는 시간은 더 길었다. 규칙적인 산책이란 것을 시작하면서 그 길 위의 풍경을 담기 위한 카메라를 샀다. 카메라를 사니 그걸 사용하기 위해 공부를 하였고, 그러다 보니 사진에 대하여 관심이 많아져 언어를 공부하고 남은 시간을 이용해 사진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찍은 풍경사진을 인화하여 나누어 주었고 누군가와 소통하기 위한 매개체가 되어주었다.
조금 더 큰 도시로 가니 확실히 자그마한 도시보다는 할 수 있는 활동이 많았다. 비시에서 살 던 몇 달이라는 시간 동안은 사진을 공부하는 것으로 취미 생활을 하였다면 큰 도시로 가면서 좋았던 것 중 하나는 교통편이었다. 기차역에서 선택할 수 있는 목적지가 더욱 많아졌다는 것. 아마 이때쯤인 것 같다. 내가 글을 적기 시작한 것은. 목적지를 두거나, 두지 않은 여행들을 다니면서 사진과 글을 적어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하였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나 생산적인 활동은 아니었지만 공부하고 남는 시간을 할애하기에 썩 괜찮은 일 들이었다. 한동안 노란색의 카페에 노트북과 책을 들고 간 뒤 차이 티 라떼를 마시며 글을 적고 풍경을 바라보는 시간을 소소한 취미로 두었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큰 도시로 가는 것이 해결책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파리에 처음에 오고 나서도 새로운 도시에서 적응하기 위한 것은 늘 같았다. 여전히 새로운 곳에서 나는 혼자가 되었다. 파리는 수많은 관계가 공존하는 곳이다. 파리로 온 뒤 조금만 노력하면 그 관계 속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많이 움직였다. 모임을 나간다던지 지인들이 하는 수와레(파티)에 가서 새로운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기도 하였다. 파리가 사람들이 여행을 많이 오는 곳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하였다.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많이 생기는 곳. 재미있는 일이 많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름 있는 학교에 들어가는 것도, 유급 없이 학년을 진급하는 것도, 좋은 회사에 취직하여 경력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하였던 일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었다. 나도 모르게 쌓여버리는 음울한 감정들을 어떻게 해결할지 모를 때가 순간순간 찾아오게 된다. 누가 알려주지 않았으니 어떻게 할지 몰라 이것저것 시도해본다. 취미를 가지거나, 모임을 나가거나, 여행을 떠나거나, 운동을 하거나.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조금씩 힘을 뺏기다 보면 머나먼 나라까지 유학을 오게 된 이유와 열정까지 퇴색해 버리게 된다. 그러한 종류의 어려움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람을 종종 보고는 하였다.
누군가가 유학에 대하여 묻거나 혹은 파리에서의 삶을 궁금해할 때. 나는 외롭다는 걸 견딜 수 있다면 뭐든지 잘할 수 있을 거라 말해준다. 그리고 파리에 오게 된다면 화창한 날 예쁜 꽃과 풀로 덮인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자며 미래의 시간에 대하여 응원한다. 당신의 손을 이유 없이 잡아 줄 이 하나 없는 그곳에서 구글 검색창에 외로움과 유학이란 단어를 적은 뒤 검색을 눌러본다. 이미 수많은 글을 읽고 난 뒤 이 글에 도달하게 된 당신의 감정을 나는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나 또한 그러하였고, 나 또한 수 없이 검색해본 단어 이기 때문이다. 겪는 모든 감정에 대한 묘사를 조심스레 적어 내려가는 것을 좋아하지만 거기에 반하는 모든 치료법을 알지는 못한다. 적어도 머나먼 타지에서 외로움을 미리 겪어보고, 겪는 사람으로 당신에게 자그마한 위로와 오늘의 안부를 이렇게나마 글을 통해 전한다.
다 괜찮을 거라 토닥거리는 안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