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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남방 Dec 29. 2016

남는 건 사진

남아버린 탓에 괴롭히는 것도 결국 사진이더라




남는 건 사진뿐 이더라. 

남아버린 탓에 괴롭히는 것도 결국 사진이더라. 






함께였다는 추억을 더이상 떠 올지 않기로 다짐 한 이후로부터 나와 당신의 흔적이 남은 사진들만 골라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버렸다. 그곳의 아름다운 풍경은 죄가 없었으니깐 버리지는 않기로 멋대로 정하였다. 그러다 문제가 생겨버렸다. 어느 날 무심코 사진집을 열어 보았는데 그 사진들을 찍을 때의 시간이 여과없이 떠 오르는 것이었다. 그 시간이라는 것은 당시의 온도, 바람, 냄새, 촉감 같은 모든 것들을 일컬었다. 마음이 그 때 만큼은 어떠한 형태로 존재하는 듯 했다. 목 아래쯤 위치하던 게 심장 밑바닥까지 쿵하고 떨어졌다. 사진이란 게 더 이상 사각이라는 틀 안에 나타난 단순한 물리적 흔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원치 않는 감정들과도 덜컥 마주하게 하였다. 그렇게 나는 쉽게 지울 수 도 버릴 수도 없는 사진들을 찍고 있었다.


이런 생각이 든 이후로부터 쉽게 셔터를 누르기가 힘들어졌다. 셔터를 누르는 일초도 되지 않는 시간을 담는 일이 나에게는 문신 같은 것이 되어 영원히 남을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것은 행복이나 불행 혹은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선뜻 셔터를 누르기 힘들어졌다. 미칠 듯이 숨 막히는 풍경을 보더라도 그 순간이 불행한 기억으로 남아버린다면 나는 그 풍경을 쉽게 꺼내 볼 수 없는 입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다시 떠나게 되었다. 당신의 기억을 덮어버리기 위해 굳이 똑같은 여행길을 택하였다. 그리고 새로이 사진을 담았다. 같은 풍경 위로 다른 기억을 위해. 그것들은 마음의 멍을 덮기 위한 여행이었다. 같은 기억이라면 최근의 기억이 더 뚜렷하지 않을까 싶었다.


여행하는 동안에는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당신으로 새겨진 흩어진 조각들이 하나 둘씩 맞추어지면서 더욱 커져나갔다. 이상하리만큼 당신과의 기억들은 쉽게 무뎌지지 않으며 오히려 더 선명해지기 까지하였다. 나는 얼마나 더 선명해진 기억들 앞에 마주해야 기나긴 여행이 끝나는 것인지 무섭기만 했다. 나이가 들고 경험치가 쌓여가도 결국 이별 앞에서는 여전히 서툴고 촌스러운 나는 지금 파리의 마레지구어느 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아마 당신도 기억하고 있을 이 곳의 커피 맛은 여전히 쓰기만 하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여행이지만 당신의 기억을 조금씩 덮고 있지는 않을까라는 바람과 함께 카메라를 들고 다시 파리의 거리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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