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혹시 저 공기 음영은 머지? 설마 천공인가?’ 내시경 시술을 하는 나는 당황해서 방사선사님한테 물어보았다. “샘! 저 담관 옆의 공기는 머죠? 천공인가요?” 방사선사님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아무래도 천공이 맞는 거 같습니다….”라고 하였고, 나는 가슴이 답답해서 숨을 쉬기 어려워졌다.
위 대화는 Endoscopic retrograde cholangiopancreatography, 줄여서 ERCP, 한국말로 내시경역행담췌관조영술이라는 어려운 이름의 시술을 하던 중 발생한 사건에 대한 내용이다. 췌담도 내시경이라고 줄여서 말하는 이 시술을 통해 담관 또는 췌관에 있는 병을 치료할 수 있다. 담관은 간에서 만들어진 담즙을 십이지장으로 흘려보내는, 수도관과 같은 역할을 하는 기관이다. 담관에 돌이나 암이 생기는 경우 눈과 몸이 노래지는 황달이 발생할 수 있는 데, 이 경우 췌담도 내시경을 통해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췌담도 내시경은 전문의를 따고도 최소한 2년간의 수련 (전임의 과정이라고 한다) 이 더 필요하며, 전문가들의 평균 성공률도 100% 가 아닌 95% 정도 되는 시술이다. 다시 말해 100명 중 5명은 내시경 치료가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환자, 보호자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왜 위내시경, 대장내시경과 다르게 실패하냐고 되묻는 경우가 종종 있다. (참고로 위내시경, 대장내시경도 모두 성공하는 시술은 아니다.)
이때 시술했던 환자분은 40대 초반의 여성분으로, 우리가 흔히 쓸개라고 부르는 담낭 내의 돌이 담낭관을 통해 담도로 내려와 담관에 돌이 생긴 경우였다. 십이지장은 1부부터 4부까지 4군데로 나뉘며, 2부에 유두부라고 불리는 담관의 입구가 위치한다.
췌담도 내시경은 일반 내시경과 달리 렌즈가 내시경 앞이 아닌 내시경 옆에 위치하여, 십이지장으로의 내시경 삽입 또한 일반 내시경보다 어려운 내시경이다. 처음 1년간 전임의를 하면서 위내시경과 대장내시경을 배우고, 지원자에 한해서 2년째에 췌담도 내시경을 배우게 된다. 렌즈가 옆에 있기 때문에 내시경을 삽입한 후에도 초보자는 전후좌우를 파악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췌담도 내시경으로 유두부를 관찰한 후 담관 입구로 생각되는 부위에 카테터 (catheter)라고 불리는 얇은 관을 집어넣은 후 관 내부에 유도철선 (가이드와이어, guidewire)을 삽입하여 담관에 유도철선을 삽입하면 영어로 cannulation, 한국말로 삽관이라고 하는 과정이 끝나게 되며, 삽관이 되면 췌담도 내시경은 대부분 성공하게 된다. 쉽게 말해서 환자를 치료할 때 그 환자의 질병을 진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유두부는 담관뿐만 아니고 췌장의 소화액이 내려오는 췌관의 입구도 위치하는 곳이며, 담관과 췌관의 입구는 불과 몇 mm 만 떨어져 있는 경우도 많아 담관으로의 선택적 삽관이 잘 안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때는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교수님들의 시술을 열심히 참관하며 배우고, 논문을 준비하다가 밤늦게 집에 갔던 전임의 시절을 마치고, 혼자 시술을 집도한 지 얼마 안 되던 시절이었다. 담석에 의한 담도 통증은, 여자가 분만할 때의 통증과 비슷하다고 표현하는 분들도 있을 정도로 극심한 통증을 호소한다. 이 환자분 또한 심한 통증을 호소하였고, 빨리 치료해 드려야겠다..라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마음을 갖고 시술을 시작하였다. 유두부는 매우 작았고, 조심스럽게 담관으로의 삽관을 시도하였으나, 췌관으로만 수차례 삽관이 되었다. 이런 경우는 needle knife라고 불리는 침형 절개도를 사용해 유두부 지붕에 구멍을 내어 담관 접근을 시도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고, 나를 가르치셨던 교수님 중에 이 침형 절개도의 고수가 계셨다. 교수님들의 시술을 수백 차례 참관하였으나 혼자 시술을 하는 건 또 다른 상황이었다. 신중하게 유두부 위쪽에 구멍을 내었으나 담관의 입구는 찾기 어려웠고, 시술 도중에 보였던 건 담관이 아닌 작은 구멍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작은 구멍에 조영제 (조영제는 영상을 사용한 진단, 검사 시에 조직, 혈관 등의 구조물이 잘 보이도록 인체에 투여하는 의약품입니다.)를 주입하였을 때, 내가 간절히 원하던 담관이 아닌, 담관 주변으로 액체가 퍼져나가는 양상이 관찰되었다. 천공이 의심된 것이었다.
나는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 환자는 나한테 모든 것을 맡기고 있고, 나는 이 환자의 의사였다. 이런 상황에서 시술을 더 하는 것은 위험하므로, 시술을 중단하고, 복부 전산화 단층촬영 (CT)을 찍었다. CT에서 천공이 확인되었다. 울고 싶었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이 환자를 위해 꾹 참아야 했다. 환자와 보호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침착하게 설명을 드렸다. “췌담도 내시경을 하던 도중에 천공이 발생한 것 같습니다. ERCP를 할 때 약 0.1-0.6 % 정도의 확률로 발생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 천공은 심하진 않아서 금식하면 좋아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런 경우 췌담도 내시경을 더 할 수 없어서 고속도로가 막히면, 우회도로를 이용하듯이, 피부를 통해서 간내의 담관에 관을 넣어 담즙을 배출해주는 시술을 해야 합니다. 이 시술의 이름은 경피적 경간 담즙 배액술, 영어로 PTBD라고 합니다. 이후 천공이 회복되면, 이 관을 통해 담도의 돌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담낭에 돌이 있어서, 담낭의 돌은 내시경적으로 제거가 안 되므로 추후에 담낭 수술을 하시면 됩니다.”
환자 보호자는 나의 설명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천공에 대해서 이해를 못하는 표정이었지만, 나의 진정성을 이해했는지 아니면, 원래 점잖은 분이셨는지, 나를 책망하지 않았다.
사실 그날은 내가 병원에 온 것을 축하하는 회식 날이었는데,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모를 정도였고, 집에 돌아와서도 힘이 빠지고 가슴이 먹먹한 느낌이 지속되었다. 하지만 나는 의사이기에 이불속에 숨어 있을 수는 없었다. 췌담도 내시경 책을 뒤적이면서 삽관법을 다시 한번 공부하고, 삽관하는 동영상을 여러 시간 청취한 후 머릿속으로 삽관하는 것을 상상하면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오전에 회진을 돌았고, 환자분의 원망의 시선이 느껴졌다. 환자분에게 차근차근 설명을 드리고 위로를 해드렸다. 환자분은 더 이상 나를 책망하지는 않았지만 나의 마음속은 복잡했다.
사실 췌담도 내시경은 소화기내과 의사들이 잘 선택하지 않는 시술이다. 우선 방사선을 쬐야 하고, 시술의 난이도가 높고, 최근에는 시술이 잘못되면 소송을 거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그만두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때 내 마음속에선, ‘왜 이렇게 어려운 시술을 선택해서 이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거니, 그냥 그만둘까? 평생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수십 번도 더 들었다. 이때 전화기가 울려왔고, 전화를 무심결에 받았다. “교수님! 55세 남자 환자가 담도염이 의심되어 내원하였습니다. 환자 활력징후는……”
ERCP를 해야 할 환자가 있다고 응급실 당직 전공의를 통해 연락이 온 것이다. 나의 마음속은 방금 전 회진으로 인해 두려움이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ERCP를 혼자서 했던 환자가 퇴원하고 외래를 왔을 때, ‘정말 아팠는 데 시술 후에 안 아파서 너무 좋았어요, 고맙습니다.’라고 했던 그 순간을 떠올리며 힘을 내기로 하였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환자 마지막 식사 시간은? 먹는 약은 있나요? 금식이 충분히 되어 있다면 ERCP를 오후에 하겠습니다.”
오전 외래가 끝난 후, 점심을 간단히 먹고 다시 한번 췌담도 내시경 책을 열심히 보았다. 머릿속으로 수차례 되뇌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잘할 수 있다.’
오후 시술이 시작되었고, 나는 조심스럽게 유두부에 내시경을 접근시켰고, 담관의 입구 및 각도를 예측한 후 담관 삽관을 시도하였다. 담관이 의심되는 부위에 카테터를 위치시킨 후 간호사한테 말하였다. ‘가이드와이어를 올려보세요.’ 내 마음을 하늘이 알아준 걸까. 열심히 공부한 내 노력이 통한 걸까. 내가 예상되는 방향으로 가이드와이어가 올라갔고,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 다행이다.....”라고 탄식을 내뱉었다. 아마 이 시술이 실패했다면 내가 췌담도 내시경을 계속하였을까 하는 생각이 지금도 든다. 이 환자분의 담도에 약 1cm 정도 되는 큰 돌이 있어 제거를 하였고, 환자분은 다음 날 웃는 얼굴로 고맙다고 해주셨다.
수술을 받기 전까지 약 1달간 천공이 생긴 환자를 매일 회진 돌면서, 이 환자분의 마음 또한 의사로서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위로해드리고, 안심시켜드리고, 공감하려고 노력하였다.
췌담도 내시경을 시작한 지 3년이 지난 지금, 이전보다 더 시술에 능숙해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100%의 선택적 삽관 성공은 안타깝게도 불가능하다. 다만, 이제는 실패할 거 같을 때 무리하지 않고, 다음날에 다시 시행하거나, 그게 어렵다면 경피적 경간 담즙 배액술을 고려하기도 한다. (경피적 경간 담즙 배액술은 피부를 뚫어야 돼서 환자의 고통이 심하며, 간내의 담관이 늘어나 있지 않을 경우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오늘은 91세 환자분이 외래로 오셨다. 이 환자분은 지난주에 담도염으로 입원하여 담도의 담석을 제거하였던 분이다. 위내시경도 잘 안 하는 나이인 91 세지만, 담석을 제거하지 않으면, 담도염으로 환자분이 사망할 수도 있다. 배가 아파서 누워 있던 환자분이 퇴원 후에 외래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것을 보면서 나는 다시금 되뇌어본다. ‘그래. 나는 평생 이 길을 가겠어. 나는 췌담도 내시경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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